Cultural Assets

Seungjeongwon Ilgi


Diaries written in the late 19th century and the early 20th century show how Western influence opened the door of the closed Joseon Dynasty. A vast amount of records from close observation of the king was kept by royal secretaries and scribes.

Some portions of the diaries have been restored after wars and fires. Still, they have an importance of their own in showing how our ancestors collected authentic data and restored records, while reminding us of the importance of preserving historic recordings.

  1. Korean

승정원 일기

승정원은 조선 정종대에 창설된 기관으로서 국가의 모든 기밀을 취급하던 국왕의 비서실이라 할 수 있는 곳으로, 1623년(인조1) 3월부터 1894년(고종31) 6월까지 272년간 승정원에서 처리한 국정 기록과 승선원, 궁내부, 비서감, 규장각으로 명칭이 바뀌면서 1910년(융희 4)까지 총 3,243책의 기록이 남아 있다.

「승정원일기」는 조선왕조 최대의 기밀 기록인 동시에 사료적 가치에 있어서 조선왕조실록, 일성록, 비변사등록과 같이 우리의 역사와 문화를 세계에 자랑할 만한 자료이며, 또한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조선왕조실록"을 편찬할 때 기본 자료로 이용하였기 때문에 실록보다 오히려 가치있는 자료로 평가되고 있음은 물론, 원본 1부밖에 없는 귀중한 자료로 국보 제 303호(1999.4.9)로 지정되어 있다. 이는 세계 최대 및 1차 사료로서의 가치를 인정받아 2001년 9월 유네스코세계기록유산으로 등록되었다.

내용을 보면 국정 전반에 걸친 광범위한 사실의 기록으로 啓稟, 傳旨, 請牌, 請推, 呈辭, 上疏, 宣諭, 傳敎 등에 관한 것이다. 이책의 기재 방식을 보면 한 달을 기준으로 책머리에 월간 경연상황, 內殿의 동향을 기록하고 다음으로 승정원의 관리 및 당직자의 표시와 출근실태를 표시하고 마지막에 승정원의 업무현황, 왕 및 내전의 문안, 승정원의 人事關係 등의 내용을 실었다.

「승정원일기」는 일기식으로 한달에 1책씩 작성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였으나 후기로 올수록 내용이 많아져 한 달에 2책 이상이 되는 경우도 있다. 또한 조선 건국 초부터 정리되었으나 朝鮮前期分은 임진왜란 등의 兵火로 대부분 소실되었고 현재는 3,243책만이 남아 있으며, 國史연구에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한국의 정치, 경제, 사회, 외교, 문화, 군사 등 모든 학문 연구에 필수적인 자료이다.

그 사료적 가치는 중국의 「중국 25사」(3,386책, 약 4,000만자) 및 우리나라 「조선왕조실록」(888책, 5,400만자)보다 더 방대한 세계 최대의 연대 기록물(총 3,243책, 글자수 2억4천250만자)이며,「조선왕조실록」이 국왕 사후 사관들에 의해 편집된 2차 자료라면「승정원 일기」는 당시의 정치?경제?국방?사회?문화등에 대한 생생한 역사를 그대로 기록한 조선시대 1차 사료인 것이다. 고종 31년 갑오경장 이후의 일기 내용은 일제에 의한 내정 간섭기 궁중기록이므로 조선왕(황제)의 결제를 요하는 사건과 기타 궁중의 비화를 기록한 것이므로 근대사 연구의 1차 기본 사료가 된다.

또한 17세기부터 20세기 초까지 일기로 300년간의 국문학의 변천과정을 확인할 수 있는 국문학적 가치가 인정되고 있으며, 288년간 매일의 날씨 정보를 기록한 것으로서 특히「조선왕조실록」의 날자는 60갑자로만 표기되어 있어 오늘날 우리가 쓰는 태양력으로 환산하는 데 많은 혼란을 겪고 있으나 「승정원 일기」는 60갑자와 수시력역법의 일자를 동시에 표기하고 있어 역사의 기초자료가 되고 있다. 또한 전통적인 유교사회 내부로부터 자생적인 천주교 수용이 민중들 사이에 어떻게 전개되었으며 이에 대한 정치권의 대응 등을 자세히 살필 수 있다.

서울대학교 규장각에 소장되어 있는 「승정원일기」 원본은 보존을 위하여 공개하지 않고 있으나, 「영인본 승정원일기」(국사편찬위원회 1961∼1977 간행)와 정신문화연구원에서 철종2년(1851)부터 순종융희4년(1910)까지의 일기 필사본은 인터넷으로 제공하고 있으며, 향후 국사편찬위원회에서는 영인본 전체를 디지털화하여 인터넷으로 제공할 예정이다.

  1. English

Historical Description

Seungjeongwon Ilgi, The Diaries of the Royal Secretariat of the Joseon Dynasty, recorded for the 271 years of the dynasty from March 1623 (the 1st year of King Injo) to June 1894 (the 31st year of King Gojong) the daily royal accounts, administrative affairs, and court ceremonies which were in the purview of the Royal Secretariat. The keeping of diaries began in the founding year of the Joseon Dynasty, but those of the kings before King Injo were burned to ashes during the Japanese invasions of Korea and by palace fires. The extant 3,045 diaries are preserved in the Gyujanggak Library. (The library originally had 3,047, but Nos. 2,454 and 2,465 have been lost over the years).

On general principle, the daily records were supposed to be compiled into one diary every month. But most diaries recording the earlier period of a king were rather roughly written, so that two to five months were compiled into one diary. Later in a reign the content tended to increase, so that two diaries might be needed for one month. The diaries of kings before the reign of King Injo all vanished into smoke from the Japanese invasion of Korea in 1592, the Revolt of Yi Gwal, and palace fires. Of the extant 3,045 diaries, 934 were restored: 548 diaries from the 1st year (1623) of King Injo to the 1st year (1721) of King Gyeongjong, 3 diaries in the 22nd year (1822) and 4 diaries in the 34th year (1834) of King Sunjo, 361 diaries from the 2nd year (1851) of King Cheoljong to the 25th (1888) year of King Gojong, and 18 diaries of the 11th year (1873) of King Gojong.

The historical value of these restored diaries is less than that of the original ones in Seungjeongwon Ilgi. But the restorations were based on authentic references, including Jobo, or The Court Gazette, Sacho, or Draft Histories, Ilseongnok, or Royal Utterances, Seungjeongwon Deungnok, or Recordings of Court Precedents by the Royal Secretariat, and Danghu Ilgi, or The Diaries of the Scribes. The source of every item in the restored diaries quoted from other references is indicated, with the name of the person making the entry, in order to heighten responsibility for data restoration and secure authenticity.

On the other hand, many of the original references quoted in the restored diaries have not been handed down, which gives historic value to the restored diaries. The diaries from the reign of King Yeongjo to the reign of King Jeongjo, the period often referred to as the Korean Renaissance, are of particular value in the way they reveal the intriguing historic background of those fast-changing times. Their vivid reflection of the new civil libertarianism emerging from the soil of feudalism in the 19th century is a rare historic treasu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