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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禮)란 무엇인가?    

예절이란 일정한 생활문화권에서 오랜 생활관습을 통해 하나의 공통된 생활방법으로 정립되어 관습적으로 행해지는 사회계약적인 샐활규범이다.

사람은 사회생활을 하는 바, 높은 산이나 깊은 물에 막혀 수월하게 무리를 지어 하나의 문화를 형성하며 사는 일정한 지역을 생활문화권이라 하고, 그 문화권에 사는 사람들이 가장 편리하고 바람직한 방법이라 여겨 모두 그렇게 행하는 생활방법이 예절이다.

때문에 예절은 언어문화권과 밀접한 관계를 갖는다. 민족과 나라에 따라 언어가 다르듯이 예절도 국가와 겨례에 따라 달라진다. 같은 언어문화권이라도 산과 강을 경계로 해 사투리가 있듯이 예절도 지방에 따라 약간씩 다를 수 있다.

그러나 같은 나라에서 표준어를 정해 그것이 통용되기를 바라는 것과 같이 예절도 한 나라에서는 통일되어야 그 국민으로서 생활하기가 수월한 것이다. 그런 까닭으로 우리는 공통적으로 행해지는 가장 바람직한 생활방법을 익혀 어울려 사는데 지장이 없도록 통일된 바른 예절을 알아야 하겠다.

  1. 예절의 필요성

사회생활 이란 혼자 살지 않고 남과 어울려 사는 것이고, 어울린다는 것은 대인관계를 갖는다는 말이다. 대인관계가 원만하려면 서로 상대방의 생활방법을 이해하든지 아니면 생활방법이 같아야 한다.

관습적으 로 행해지는 사회계약적 생활규범인 예절은 사람이 인간으로서 자기관리 (自己管理)와 사회인으로서의 대인관계(對人關係)를 원만히 하기 위해서 있어야 하는 것이다.

  1. 예절의 기능과 본질

예절은 두 가지의 기능을 갖고 있으며 기능에 따라 본질을 다로 생각할 수 있다. 자기가 사람다움을 지니기 위해 자기관리를 할 때의 예절은 예절이 자기의 안에 있으면서 자기 자신에게 작용하며 예절의 본질은 정성스러운 마음이다. 정성(誠)이란 스스로를 속임이 없이 정직해야 되고, 정성스럽게 예절의 작용을 받아들이는 요령은 홀로 있을 때도 바르게 되도록 조심하고 삼가는 것이다. 남과 원만하게 어울리기 위해 대인관계를 가질 때의 예절은 자기에게 작용하던 예절을 밖으로 표출해서 남에게 활용하는 것이다. 예절을 활용하는 요령은 상대방을 편안하게 해야 하고, 예절이 활용될 때의 본질은 상대를 공경(敬)하는 것과 사랑(愛)하는 것이다. 웃어른을 공경하고 아랫사람을 사랑하기를 거짓없이 정성으로 하는 것이 예절이다.

  1. 예절의 실제와 격식

예절에는 실제와 격식이 있다. 예절의 실제 뿐 아니라 모든 실제는 아믐속에 의사의 형태로 숨겨져 있다. 부모님에게 효도하고 웃어른을 공경하며 아랫사람을 사랑해야겠다는 마음이 곧 예절의 실제이다. 

행동에 있어서도 격식을 중요하다. 약속된 행동방식, 그것이 행동의 격식이다.

이렇듯 모든 언어와 행동이 격식에 따르지 않으면 성립되지 않는 것과 같이 예절도 격식이 까다롭더라도 정해진 대로 하지 않으면 상식에 어긋나는 것이다

마음속에  의사의 형태로 있는 예절의 실제를 우리 모두가 알아차릴 수 있는 언어와 행동의 격식으로 표현해서 상대에게 인식시킴으로써 예의바른 생활을 해야겠다.

  1. 예절의 종류

예절의 종류는 어떤 기준에 의해 구분하느냐에 따라 수없이 갈라질 수 있다.

①   예절의 본질에 다라 구분하면 정성(誠)•공경(敬)•사랑(愛)으로 나뉜다.

②  예절의 목적에 따라 분류하면 자기를 바르게(修己)하는 자기관리(自己管理)와 남을 상대(治人)하는 대인관계(對人關係)로 나누어 진다.

③  예절의 성격을 중심으로 나누면 자신의 마음을 바르게 하고 몸을 닦아 (正心修身) 스스로를 규율하는 법도(自律的法度), 사람노릇 하며 사는데 지키는 (生活倫理) 사람으로서의 의식예절(倫理적의례), 조식단체국가를 유지경영하기 위해 강제되는 (他律强要) 법률이나 정치제도(政治的法制) 등으로 구분된다.

④  예절이 행해지는 범위영역을 기준으로 나누면 개인의 예절이랄 수 있는 수신예절(修身禮節), 가정생활의 가정예절(家庭禮節), 사회예절(社會禮節), 국민으로서의 의식절차인 국민의례(國民儀禮), 국가간의 예절인 국제의전 (國際 儀典)이 있다.

⑤  예절을 행하는 방법과 상태를 중심으로 구분하면 정신(心), 몸차림(身), 의사소통(言), 기거동작(動) 위계질서(止)등에 관한 종류가 있다.

⑥  예절의 기능면에서 보면 홀로를 삼가는 작용과 상대를 편안하게 하는 활용이 있다.

⑦  예절의 형질로 가름하면 의사의 형태로 마음속에 내제하는 실제(實際)와 일정한 약속방식에 따라 상대에게 인식시키는 수단인 격식(格式)이 있다.

오늘날, 세계는 한 집안이 되었다. 앞으로의 세상은 더욱 더 이런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다. 따라서 자라나는 세대는 언제 어디에서, 세계의 어떤 나라 민족과 함께 어울리어 숙식을 같이 하며 지내게 될지 모르게 되었다. 우리들도 국제인이 되었으면, 여기에 맞게 우리의 인격도 훌륭히 닦아야 하고, 세계의 어느 누구와 한자리에 앉아도 조금도 손색이 없을 만한 품위를 지니도록 해야 될 것이다.

품위를 유지하는 일이란,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라고 생각한다. 적어도 남에게 불쾌감을 주는 언행을 삼가면 될 것이다. 이름난 세계적인 도시의 식당에 앉아서 연방 이를 쑤시고 앉아 있다든지, 초특급열차를 타고서 두 다리를 높이 쳐들고 벌렁 드러눕는다든지 하는 일이, 모두 부끄러운 행동이라는 것쯤 알면 될 것이다.

옛날에는 이런 생활규범을 마을의 훈장들께서 가르쳐 주셨다. 사람이 염치를 알아야 하고, 걸음걸이는 천천히, 말씨는 점잖게, 얼굴 빛은 언제나 곱게 가지라는 식으로, 다섯 살때부터 열심히 바로잡아 주셨다. 그런데, 지금은 훈장이 안 계신 탓인지, 너무 세속에 물들어서 그런지, 학식(學識)만큼, 옷값만큼 몸가짐을 제대로 갖는 사람이 드물다.

사람이 사랍답게 살며, 사람노릇을 제대로 하면서 산다는 것은, 결국 사람이 짐승과 다르게 산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다. 그러기에 사람들은 예로부터 짐승의 삶과 구별하기 위하여 예의범절(禮儀範節)이라는 격식을 만들고, 특히 관혼상제 (冠婚喪祭)를 엄숙히 치러왔다.

사람을 만나 우리말을 제대로 쓸 줄 알고 높임말도 올바르게 쓸 줄 안다는 것은, 그만큼 듣는쪽 사람을 어려워 할 줄 알고 존중할 줄 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남을 내몸처럼 위할 줄 모르고, 말 듣는이를 ‘나’처럼 대접할 줄 모를 때 높임말 하나 제대로 쓸 줄 모르게 되는 것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가까우면서도 어려운 존재인 배우자 하나 존중할 줄 모르고, 은혜가 바다보다도 깊은 부모님을 옳게 모실 줄 모르는 마음 가짐을 가지고, 사회에 나가 남의 인격을 존중하면서 원만히 살아간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사람이 살아가는데 있어서 이러한 마음 가짐은 모든 행동으로 나타난다. 한 집안에서 서로 공경하고 서로 아끼며 살아갈 때 말씨도 부드러워지고 모든 행동도 공손하게 될 것이다. 어른을 공경하고 전통적인 큰절 하나라도 제대로 할 줄 아는 것이, 결코 봉건적인 생활습관이 몸에 배어서 이렇게 되는 것이 아니다. 생활습관이 다르고 사고방식이 다른 여러 나라 사람들을 보더라도 이러한 근본 태도에는 다를 바가 없다. 다르다는 것은 표현방식이 다를 뿐이다. 우리는 이러한 마음가짐이나 표현방식을 집안 어른들한테서 배우고, 알지 못하는 사이에 자손들에게 전수(傳 授)한다. 이래서 가정이라는 것이 중요하고 가풍(家風)이라는 말이 생겨나는 것이다. 집안에서 보고 들은 일이 없는 사람들은 상장(喪章)을 달거나 검은 넥타이를 매고 다니는 사람을 보아도 무슨 까닭으로 그런 복장을 하게 되었는지 위안의 인사말 한마디 할 줄 모르고, 잠옷바람이나 마고자바람으로 큰길을 활개치며 다니면서도 무엇이 잘못된 일인지조차 모른다. 이런 사망든은 모처럼 두루마기끼지 제대로 갖추어 입고 세배를 갔으면서도 외투를 벗어 놓듯이 두루마기를 벗어들고 큰절을 하기도 한다. 친상을 당한 며느리들 가운데는 부엌일은 사람을 사다가 시키고 자기네들은 무슨 소풍이나 온듯이 흰옷만 입었을뿐 입술이 빨갛게 화장까지 하고서도 태연자약한 사람들이 많다.

도시 집안에서 보고 들어서 배운 일이 없는데다가 집안 어른들이 하는 모습을 그대로 한 것뿐이니까, 무엇이 제대로 된 격식과 어긋나는 일인지 모른는 것이다.

우리는 항상 새롭게 살아야 한다. 그러나 새롭게 산다는 것과 사람이 가정을 꾸미고 사회를 구성하면서 살아 나갈때 최소한으로 지켜야 될 격식, 즐 예의범절을 완전히 잊어버려도 좋다는 것과는 구별해야 될 것이다.

사람이 교양이 있느니 없느니 하는 것은, 주로 그 사람의 어휘사용을 보고 하는 말이다. 그러므로 아무리 언어는 사회상을 반영한다고 하더라도, 우리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각 개인 하나하나가 항상 고유어에 관한 실력을 풍부히 갖추도록 노력하면서 품위 향상에 힘쓴다면, 우리의 언어생활도 저절로 향상되고, 오늘날과 같은 필요 이상의 속어외래서한자어외국어도 줄어들 것이며, 이에 따라 이를 본받고 자라날 다음 세대들도 품위있는 언어생활을 영위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앞으로 우리는 정확한 발음, 풍부한 어휘, 올바른 문장생활의 교육에 힘써야 한다.




Written by 정인숙

Published on Wednesday, 29 February 2012 12: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