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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

예(禮)란 무엇인가?    

예절이란 일정한 생활문화권에서 오랜 생활관습을 통해 하나의 공통된 생활방법으로 정립되어 관습적으로 행해지는 사회계약적인 샐활규범이다.

사람은 사회생활을 하는 바, 높은 산이나 깊은 물에 막혀 수월하게 무리를 지어 하나의 문화를 형성하며 사는 일정한 지역을 생활문화권이라 하고, 그 문화권에 사는 사람들이 가장 편리하고 바람직한 방법이라 여겨 모두 그렇게 행하는 생활방법이 예절이다.

때문에 예절은 언어문화권과 밀접한 관계를 갖는다. 민족과 나라에 따라 언어가 다르듯이 예절도 국가와 겨례에 따라 달라진다. 같은 언어문화권이라도 산과 강을 경계로 해 사투리가 있듯이 예절도 지방에 따라 약간씩 다를 수 있다.

그러나 같은 나라에서 표준어를 정해 그것이 통용되기를 바라는 것과 같이 예절도 한 나라에서는 통일되어야 그 국민으로서 생활하기가 수월한 것이다. 그런 까닭으로 우리는 공통적으로 행해지는 가장 바람직한 생활방법을 익혀 어울려 사는데 지장이 없도록 통일된 바른 예절을 알아야 하겠다.

  1. 한복

한복

우리 민족의 의식구조와 기후풍토에 맞게 정착된 한복은 그 기능성 못지않게 선과 색의 조화를 추구하여 한국 미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다. 한복의 곡선은 지극히 단순함에 그 멋이 있다. 한줄기 바람에도 춤을 추듯 율동하는 우아함의 멋이다.

한복의 색은 화려하다. 그러나 은은한 기품이 흐른다.

단순하나, 무미건조하지 않고, 화려하나 사치스럽지 않은 옷! 그것이 우리고유의 한복이다. 옛 선조들은 한복 한 자락에도 풍류를 감추어 두었다. 드러날 듯 드러나지 않는 은은함의 멋, 한복에는 자연을 동경의 대상으로 삼았던 우리의 정서가 배어있다.

옷감을 직선으로 재단한 후에 몸에 맞추어 곡선으로 바느질하는 것이 우리 한복의 재단법이다. 이를 평면적 재단방식을 통해 한복 자체의 풍만한 곡선미를 드러낼 수 있었다. 또한 특별히 입는 법이 필요해서 그 입는 법에 따라 다양하고 독특한 맵시를 낼 수 있는 특징이 있다.

한복의 색은 그 자체만으로 아름답지만 저고리, 치마, 옷고름, 깃 등의 서로 다른 색이 조화를 이루었을 때 비로서 그 아름다움이 더하게 된다. 은근하면서도 화려한 한복 고유의 멋은 바로 이색의 조화, 즉 배색의 미에 있는 것이다. 여기에 순수하면서도 은은한 화려함의 진수가 배어 나오는 것이다.

부드러운 곡선미는 우리 고유의 아름다움이다. 바로 그 곡선미를 한복에서 찾아 볼 수 있는 것이다. 자연의 색, 자연스러운 곡선미를 추구했던 한복은 자연의 순응함을 미덕으로 삼아 왔던 우리 삶의 미학인 것이다.

우리의 고유한 전통 복식은 고려시대에 도입된 몽고 풍의 영향을 소화하였으며 저고리의 길이가 짧아지면서 고름이 생겼다. 이때에 근세 한복의 전통 양식이 성립되었다고 할 수 있겠다.

한복은 중국의 기포, 일본의 기노모와는 전혀 다른 양식으로 삼국시대의 고유한 양식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남자의 저고리는 오른편 깃이 속으로 들어가고 왼편 깃이 위를 덮는다. 곧 좌임(左임)이다. 그런데 여자의 저고리는 이와 정반대로 오른편 깃이 위로 가는 우임(右임)이다.

 

  1. 조선 시대의 복식

조선 시대의 복식

조선 시대의 복식 문화는 사회 제도의 발전과 더불어 크게 발달하였다. 왕복, 왕비목, 백관복, 선비복, 서민복, 천인복이 정해지고 관혼상제복, 승복 같은 특수복이 제정되기도 하였으며 임금이 바뀔 때마다 복식 금제가 바뀌었다.

우리의 고유의 전통 복식은 고려 시대에 도입된 몽고풍의 영향을 소화하였으며 저고리의 길이가 짤아지면서 고름이 생겼다. 이 때에 근세 한복의 전통 양식이 성립 되었다고 할 수 있겠다.

영조와 정조 때에 이르러서는 양반과 상민의 질서가 혼란해진 데다가 사치 풍조가 겹쳐 우리 옷의 미적인 특징이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그래서 권위와 여유가 있어 보이는 갓과 도포, 꼭 끼는 짧은 저고리와 풍만한 치마, 거창한 머리 모양 따위가 등장하였다.

한복은 중국의 기포(기袍), 일본의 기노모(着物)와는 전혀 다른 양식으로 삼국 시대의 고유한 양식을 기본으로 간직하고 있다. 이것이 개화기에 합리화와 간소화의 과정을 겪으면서 오늘의 한복으로 이어졌다.

성인복과 아동복, 기녀복과 관혼상제복으로 나눌 수 있다. 어른과 아이들의 옷은 조선 시대의 전반적인 복식의 흐름을 알 수 있게 하며 기녀복과 관혼상제복은 모두 조선 시대의 유교 사상이 들어옴으로써 파생된 특성을 반영한다.

유교로 내외법이 심하던 조선 사회에서 생활이 비교적 자유로웠던 기녀들은 나름대로 복식미를 창출해 냈으며 이것은 일반 부녀와 반가의 부녀에게도 영향을 끼쳤다. 그리고 관혼상제의 복식과 절차를 알아봄으로써 조선 사회의 특성과 복식의 흐름을 살필 수 있다.

관혼상제복은 관혼상제를 보면 알 수가 있고 여기에서는 성인복과 아동복을 다루고자 한다.

조선조의 머리 모양은 다양하였는데 미혼 남녀의 땋은 머리와 상투가 삼국 시대부터 이어 왔고 특히 부인의 얹은머리 모양은 대표적인 머리 형식이었다. 모발 관리를 위해 도구로는 얼레빗, 참빗, 빗, 빗치개(가리매), 솔빗, 살적밀이, 족집개, 빗접 같은 다양한 도구가 있고 머리의 형태도 큰머리, 더구지머리, 어여머리, 낭자두, 땋은머리, 쌍상투, 사양머리, 종종머리처럼 다양하다. 또 장식을 위해 댕기, 떨잠, 첩지, 비녀, 뒤꽂이, 족두리, 화관 같은 다양한 종류가 있었다.

자식이 부모를 섬길 때는 반드시 빗질하고 댕기와 비녀와 상투를 틀어야 했으며 미성년자는 첫 닭이 울면 목용하고 세수, 양치질을 하고 머리 빗고 댕기 드리는 것이 기본 예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