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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

예(禮)란 무엇인가?    

예절이란 일정한 생활문화권에서 오랜 생활관습을 통해 하나의 공통된 생활방법으로 정립되어 관습적으로 행해지는 사회계약적인 샐활규범이다.

사람은 사회생활을 하는 바, 높은 산이나 깊은 물에 막혀 수월하게 무리를 지어 하나의 문화를 형성하며 사는 일정한 지역을 생활문화권이라 하고, 그 문화권에 사는 사람들이 가장 편리하고 바람직한 방법이라 여겨 모두 그렇게 행하는 생활방법이 예절이다.

때문에 예절은 언어문화권과 밀접한 관계를 갖는다. 민족과 나라에 따라 언어가 다르듯이 예절도 국가와 겨례에 따라 달라진다. 같은 언어문화권이라도 산과 강을 경계로 해 사투리가 있듯이 예절도 지방에 따라 약간씩 다를 수 있다.

그러나 같은 나라에서 표준어를 정해 그것이 통용되기를 바라는 것과 같이 예절도 한 나라에서는 통일되어야 그 국민으로서 생활하기가 수월한 것이다. 그런 까닭으로 우리는 공통적으로 행해지는 가장 바람직한 생활방법을 익혀 어울려 사는데 지장이 없도록 통일된 바른 예절을 알아야 하겠다.

한복의 여유(餘裕) 구조

한복의 여유(餘裕) 구조

우리 한국의 전통적 생활패턴의 고유한 동일성 가운데 하나로 ‘여분’ 혹은 ‘여유’를 들 수 있다. 꼭 남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꼭 맞게끔 하는 적당한 양의 합리성보다 항상 적당한 양보다는 남게 하는 여분과 여유의 가치를 두는 비합리성에서 생활의 본원적인 동일성을 찾아볼 수가 있다.

한국의 옷은 꼭 들어맞게 만드는 법이 없다. 항상 체형보다 여유를 두어 푼푼하게 짓는다.

“옷이 몸에 붙으면 복(福)이 들어갈 틈이 없다”는 속담도 있듯이 곧 옷에 있어 여유는 복이 드나드는 공간이다.

이 여분과 여유의 가치 때문에 한복은 한복나름의 구조적 특성을 갖는다. 이를테면 바지 허리통이나 바지의 가래통을 보면 지체가 전혀 옷에 닿진 않게도 입을 수 있게끔 여유가 있다. 그러기에 웬만한 연령층의 차이없이 누구나가 다 입을 수가 있다. 특히 어른 옷은 아무에게도 품이 맞게 되어 있는 것이 한복이다.

치마의 평면성은 더욱 그렇다. 아무리 복부가 큰 임부가 입었던 치마도 치마깃만 더 올리면 아무리 날씬한 여인에게도 맞게 되어 있다. 곧 아무나 입을 수 있다는 점에서 양복과 다른 동일성이 깃든다.

또한 허리를 매는 허리띠와 치마끈, 옷고름으로 대표되는 의복의 결속 패턴도 그 여유와 여분을 위해 그같은 형태를 갖게 된 것이다 몸이 큰 사람은 큰 사람대로 작은 사람은 작은 사람대로 자유자재로 맬 수 있게 되어 있다. 이 한복의 여유 구조는 양복의 비여유 구조에 비해 여러 가지 장단점을 갖는다.

장점은 이 세상의 옷 가운데 육체에 가장 구속력을 적게 주는 육체 본위의 옷이란 점이다. 몸에는 허리, 발, 팔, 목 등 굴절 부분이 많다. 이 굴절 부분과 옷과의 마찰을 가장 극소화한 구조란 점도 장점 가운도 하나랄 것이다. 그리고 성장에 구애받지 않고 가장 장기간 입을 수 있다는 점과 여러 사람이 한 옷을 입을 수 있다는 집단성에서도 경제적 장점을 창아 볼 수가 있겠다. 반면에 양복에 비해 민활(敏活)한 활동을 하는데는 지장을 준다는 점, 그리고 그 여유가 개성을 중화시키기에 육체미 등 의상의 미감을 죽인다는 점이 단점이랄 것이다.

식생활에서의 동질화가 ‘한솥밥’이라면 의생활에서의 동질화가 곧 ‘동포(同袍)다.

‘동포’란 한 옷을 서로가 같이 입는 그런 동질 인간을 의미한다. 한 옷을 서로 입을 수 있는 사이란 한솥밥을 먹는 사이보다 더 친밀하고 동질화된 사이인 것이다.

‘동포(同袍)’가 ‘동포(同胞)’란 말로 발전했 듯이 한 옷을 더불어 입는다는 것은 한국인에게 이같은 주술적이고 의식적인 의미가 있는 것이다.

한 옷을 여러 사람이 입기 위해서는 그 옷에 여유가 있어야 한다. 어느 한 사람의 체격에 꼭 맞으면 그것은 어디까지나 그사람 옷이다. 어느 한 사람의 체격에 꼭 맞지 않고 여유를 둔다는 것은 그사람 이외의 다른 사람들도 입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의 집이 아니고 ‘우리’ 집이듯이 나의 아버지가 아니고 ‘우리’ 아버지이듯, 나의 옷이 아니고 ‘우리’는 동심동체의 동질 인간일 때 또는 동질 인간이 되려할 때 그 복수의 사람끼리가 ‘우리’인 것이다.

우리 옛 민속에 서로 결의를 한다던가 굳은 약속을 할 때, 결심을 서로 보장할 때 저고리를 바꿔입었던 것이다. ‘옷을 바꿔입는 사이’면 굉장히 친밀한 사이인 것이다.

과거를 보기 위해 절방에서 공부하는 서생끼리 열심히 공부를 해서 뜻을 이루자고 결의를 할 때 옷을 곧장 바꿔 입었던 것이다.

역대 임금이 중신(重臣)이나 총신(寵臣)에게 그 신임이나 사람을 표할 때 어의(御衣)를 반드시 내렸다. 곧 신하로서 임금님의 옷을 물려 받는다는 것은 최고의 영광이요, 영예였던 것이다. 벼슬이 정이품으로 오른 것보다 임금님의 사의(賜衣)를 몇 곱절 더한 영광으로 알았으며, 임금님이 옷을 내리면 그 가문은 물론 그 고을에서도 큰 잔치를 베풀었던 것이다.

옷이 없어서 옷이 하나 생긴 것이 그토록 영광일 수는 없을 것이다. 옷이라는 효용성 이상의, 임금과 같은 옷을 입음으로써 형성되는 임금과 신하와의 밀착된 사이, 곧 신임이란 플러스 알파 때문에 사의는 지상(至上)의 영광이 된 것이다.

갓난아이를 낳으면 돌 때까지 새옷을 해 입혀서는 안 되는 것으로 되어 있었다. 병귀가 새것을 좋아 하기에 그것들이 붙는 것을 막기 위한 것으로 새옷은 금기의 민속이 전해 내려 왔다. 그같은 주술적 의미 이외에 새옷은 섬유가 부드럽지 않기에 무른 아기살에 알맞지 않다는 체험적 지식에도 의미를 찾아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복합적 이유 가운데 하나로, 헌 옷으로 신생아의 옷을 해 입히는 이유는 신생아에게 식구의 옷을 입힘으로써 동질화시키려는 주술적 의미가 내포되었다고 본다. 주로 할아버지의 헌 옷을 뜯어 신생아의 옷을 해 입히는 이유도 이 할아버지와 손자 강의 동질화를 시도하는 동포의 사고방식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특히 ‘옷물림’이라 하여 아버지 옷을 맏형이, 그 옷을 다시 둘째, 셋째로 물려 입는 ‘옷물림’의 전통도 반드시 가난해서만은 아니었다.

딸이 시집갈 때 어머니의 누비 바지를 옷물림하는 습속도 그것이다. 딸에게 새로 누비 바지를 해주는 일이 있더라도 반드시 그 바지를 어머니가 먼저 입어보는 습속도 이 ‘동포’의 슬기 때문인 것이다.

‘동포(동포)’하기 위한 옷은 넉넉하고 푼푼하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 한복이 그토록 푼푼하고 도 속옷고름만 조이고 허리때만 조이면 아무에게나 맞게 되어 있는 여유구조는 바로 공동체를 영위하기 위한 동질화의 필요에 의한 것으로 해석될 수 있는 것이다.

1961년 펄벅 여사가 한국에 와서 절하는 한국 여성을 보고 다음과 같이 말했다.

“ 이 세상의 절 가운데 한국 여성의 절처럼 공경도가 높은 절은 없을 것이다. 치마를 약간 들어올려 만든 용기 속에 경의가 가득 싸인 것(wrap)같은 그 과정이 그렇게 공경도를 크게 하고 있다. 한국의 치마는 정말 정신적인 의상이다.”

한국의 치마는 어떤 외국의 치마와는 달리 ‘입는’ 옷이 아니라 ‘싸는’ 옷이다. 곧 구조적으로 하체를 싸게 되어 있다는 데서 동일성(identity)을 지닌다. 외국의 치마는 입는 옷이지만 한국의 치마는 입지 않고 펴놓으면 평면화된 하나의 보자기다. 보자기를 하체에 감싸는 것이 치마다.

양복은 한 번 맞춰 입으면 그 옷이 낼 수 있는 작태와 매력은 하나밖에 없다. 한데 한국의 치마는 하나 갖고서 그 감싸는 양식, 감싸는 치마깃의 고저, 또는 감싸 조이는 강도에 따라 서른 여섯 가지 멋을 낼 수가 있었던 것이다.

우리말에 여자의 미나 매력을 표현하는 것으로 ‘감칠맛이 있다’는 말이 있다. 사전에 보면 ‘감칠맛’이란 입에 당기는 맛, 일이나 물건이 사람의 마음을 끌어당기는 힘을 감칠맛이라 한다. 그 어원은 바로 ‘감치다’요, ‘감치다’는 동사는 곧 옷 가장자리나 솔기를 안으로 접어 용수철 감기는 모양으로 ‘감는다’는 데서 비롯되고 있다. ‘감침질’하면 단을 접어 넣고 감아 꿰메는 바느질이다. 곧 뭣인가를 쌀 때 감는데서 우러나는 미요, 매력을 감칠맛이라고 한다. 싸는 문화권에서만 형성될 수 있는 미요 매력이다. 치마의 감침새, 곧 하체에 감돌리는 그 많은 매무새에서 우러나는 은근한 미와 매력도 감칠맛인 것이다.

북풍이나 눈보라가 치는 추운 겨울날 아이를 안거나 또 아이와 손을 잡고 걷는 어머니가 있다 하자, 예외없이 치마로 감싸 안거나 또는 치마로 감싸 한몸이 되어 걷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싸는 문화의 동일성인 치마는 이처럼 사람의 옷뿐만 아니라 공경도 싸고 사랑도 싸는 그야말로 정신적 의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