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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

예(禮)란 무엇인가?    

예절이란 일정한 생활문화권에서 오랜 생활관습을 통해 하나의 공통된 생활방법으로 정립되어 관습적으로 행해지는 사회계약적인 샐활규범이다.

사람은 사회생활을 하는 바, 높은 산이나 깊은 물에 막혀 수월하게 무리를 지어 하나의 문화를 형성하며 사는 일정한 지역을 생활문화권이라 하고, 그 문화권에 사는 사람들이 가장 편리하고 바람직한 방법이라 여겨 모두 그렇게 행하는 생활방법이 예절이다.

때문에 예절은 언어문화권과 밀접한 관계를 갖는다. 민족과 나라에 따라 언어가 다르듯이 예절도 국가와 겨례에 따라 달라진다. 같은 언어문화권이라도 산과 강을 경계로 해 사투리가 있듯이 예절도 지방에 따라 약간씩 다를 수 있다.

그러나 같은 나라에서 표준어를 정해 그것이 통용되기를 바라는 것과 같이 예절도 한 나라에서는 통일되어야 그 국민으로서 생활하기가 수월한 것이다. 그런 까닭으로 우리는 공통적으로 행해지는 가장 바람직한 생활방법을 익혀 어울려 사는데 지장이 없도록 통일된 바른 예절을 알아야 하겠다.

  1. 문화 배경

Cultural Background: 제사날

우리가 자랄 때에는 돌에는 흰무리•수수팥떡 쯤을 장만했고 보통 생일에는 기껏해야 미역국에 콩버무리가 나왔다. 그것도 나는 거의 못 얻어 먹었다. 돌날이라고 해서 어린애 손가락에 금반지를 끼워주는 것은 복을 아낄 줄 모르는 무엄한 짓이다.

어른 생신만 해도 그렇다. 일년 내내 잘 모시지 못하다가 그 날만은 산더미같이 음식을 차리고 나들이 때나 입으실 옷을 해 드리고 뭐나 잘한 줄 아는 버릇은 고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당신이 늘 쓰시는 것 중에 아쉬워 하시는 걸 사 드리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 돈이 도는 대로 날짜를 바꾸어 생신을 차려드린 어느 효자 어른을 안다. 어른의 마음을 편하게 해 드리는 것이 효성이다. 꾸어다 억지로 해 드리는 생신 잔치가 어른의 마음을 편케 해 드릴 턱이 없다. 그저 날마다 끼마다 웃는 얼굴로 대해 드리는 것이 번드르르한 잔치상보다 나을 듯 하다.

요즈음 생활이 바쁘다 보니 여유가 없다. 그러니 제사날과 생일이 돌아와도 집안이 모이기도 힘들다. 바쁜 사람을 오라기도 어렵고 오라 해도 오지도 않는다. 오지 않으니 가게도 안 된다. 그러니 점점 서먹서먹해지고 어려워지고 이렇게 해서 자꾸 멀어지는 것이다. 이유야 대려면 많다. 옛날에는 우리같이 이렇게 쪼들려 살지 않았고 이렇게 얽매여 살지도 않았다. 그러기에 온 집안이 생일만 되어도 모일 수가 있고 제사가 되면 전날부터 모여 들었다. 일을 같이 하면서 일손도 보태려니와 그 동안의 그리움도 궁금증도 풀고 친목도 도왔다. 같이 밤을 새워 제사를 지내며 그 신비스러운 어둠 속에 가물거리는 촛불 아래서 시공을 초월한 조상과의 교응을 느낄 수가 있었다. 제사밥을 친척•이웃과 나누면서 도 정이 오갔던 것이다. 아무리 집이 좁다 해도 툇마루에 나가 지낼망정 질서있게 항렬에 따라 잘도 지냈던 듯하다. 그런데 요즈음엔 내일 학교에도 가야하고 회사에도 나가야 한다면서 초저녁에 와서 제사도 지레 지내고 한술 떠먹고는 그냥 가버리고 만다. 이게 요즈음의 서울이다.

그런데 지금도 시골은 이렇지가 않다. 정도 없이 돈 한 장 봉투에 넣어다 들이뜨리는 게 하니다. 나물을 길러서 가지고 온다, 묵을 쑤어 온다, 그들의 선물은 종이 한 장의 냉정함이 아니다. 며칠을 물 주고 기른 나물, 따다가 갈아 수비한 다음 쑤고 떠서 식힌 애정이 어린 묵이다.

「얘! 내일 너의 친구 온대지? 청요리 시켜다 주마. 아니 부페로 할까?」하는 것이 오늘의 도시 어머니임을 생각하면, 하다못해 콩버무리라도 어머니가 손수 쪄서 주셨고 미역국 하나라도 앙그러지게 손수 끓여 주신 걸 생각하면 우리는 행복한 아이였다고 여겨진다. 그래서 비록 생일 케익의 관념에는 익숙해졌을망정, 나는 일부러라도 희무리를 쪄 준다. 대추나 건포도로 아이들에 대한 덕담이나 축하의 말을 박아서. 그러고는 그저 미역국이나 끓여 준다. 아침 있을 때는 너비아니를 구워주고, 돈으로 휘감는 값싼 애정이 좋아 뵈지 않는다. 그들도 그들의 자녀를 형식으로 대하고 남들과의 관계도 형식으로 대할까봐 걱정이 되어서이다.

우리가 어릴 때만 해도 이웃에 초상이 나면 아버지는 라디오도 틀지 못하게 하셨다. 노래도 물론 못 부르는 걸로 알았다. 그것이 사람의 도리라는 것이었다. 속으로 「알지는 못하오나 저 분의 넋이 가고 싶은 어느 곳에 편히 가 쉬시게 하여 주소서」하고 빌게 되는 게 보통 사람의 상정이기 때문이다.

요즈음 사람들은 너무도 상복의 내력에 마음을 안 쓴다. 우리가 오줌을 가리고 수저로 밥이라도 떠먹게 되기까지 지극한 부모의 사랑을 줄곧 받게 되니 삼 년의 상은 바로 그래서 생겼다는 것이다. 실제도 상제가 되면 아무리 험한 옷을 입는다 해도 우리 마음의 슬픔을 그 옷으로 따를 수 없는 것인데 어디 감히 보석 반지에 부로치를 단단 말이냐.

향수를 겉으로 뿌리지 않고 창포물에 머리를 감고 유자물에 목욕한 아낙네들, 노리개를 속고름에 차던 아낙네들의 참멋이 우리네 여자에게 이어지고, 어떠한 권력 앞에서도 자기의 옳음을 옳게 여기고 굽히지 않고 의젓하고 떳떳하게 처신하던 우리네 남자의 참사람다움이 오늘의 남자에게 이어지기를, 그래서 저마다의 특성을 살리면서도 뚜렷한 보름달 같은 하나의 우리가 되어지기를 비는 마음만이 간절하다.

가정의례준칙에는 조부까지 제사를 모시게 되어 있다. 제사 준비는 약과를 한다, 강정을 튀긴다, 다식을 박는다고 해서 바쁘게 준비한다. 제기를 닦고 밤을 모양있게 치면서 설날 새벽에 차례를 지낼 준비를 한다. 며느리들의 정성으로 제수는 푸짐하게 마련하여 진설이 끝나면 여자들은 화려하지 않은 제사날 복장(옥색치마 저고리)으로 갈아 입고 모두 제사상 앞으로 늘어선다. 제사 지내는 순서도 집집마다 약간씩 다르다. 그래서 이런 일에는 크게 마음을 쓰지 않고, 제수 장만할 때의 정성, 제사를 모실 때의 경건한 마음, 그리고 조상을 욕되게 해드리지 않기로 다짐하는 일에 더 마음을 쓰는 것이 중요하다.

  1. 한가위 다례상

한가위 다례상

팔월 한가위는 겨례의 명절이다. 갈고, 씨뿌리고, 가꾸고, 힘들여 지은 열매를 조상의 넋 앞에 맛 보십사 올리는 감사의 다례인 것이다. 제 철 음식이 제물로 잡수어짐은 으례 원칙이지만 가을걷이 한 첫 햇곡으로 술 빚고 송편 빚어 풋대추•풋밤에 햅쌀 식혜•조청•포 같은 조상께 감사하는 다례의 음식 하나 하나에 정성이 소복이 담기는 것이다. 

자연 색소인 쑥•송기를 곁들이면 삼색이 되고 햇밤•햇콩 소에 더러는 깨소금에 계피가루와 설탕을 섞기도 하고, 밤에 계피가루•잣가루•생강가루•설탕을 섞어 소를 넣기도 한다. 바탕과 소뿐만 아니라 빚는 모양도 지방에 따라 한입에 쏙 들고 말 어예쁜 알송편에 한 개만 먹어도 애벌 요기는 될 큼직한 것도 있다. 예전엔 통통하고 둥근 송편은 야하다 하여 갸름한 버들잎 모양을 세웠음을 『규합총서』에서 볼 수 있다. 익반죽을 하여 꽤 치대어 터지지 않게 빚는 것이 가장 귀한 요령이다.

바쁜 시대라 해서 제수인 송편도 사다 쓰는 경우가 많지만 집에서 빚어서 쓰는 것이 원칙이다.

냉수라도 정성이 제일이라는 어머님의 주장이다.

「어머님, 이것 제사지내도 되어요?」
「물건이 문제냐? 네 정성이 제일이지. 냉수라도 상관없다.」

어머님의 이 말씀은 다례의 기본 정신은 어디까지나 공경에서 우러나는 정성이기 때문이다.

본디 추석 다례는 한식 때와 마찬가지로 산소에 가서 지내는 것이지만 요즘에는 집에서 다례를 잡숫고 추석이 지난 다음에 사람들의 왕래가 뜸한 하루를 잡아 성묘를 다니기도 한다. 
「올 가을걷이 고맙습니다. 저희의 노력에 넘치게 은혜하심 정말 고맙습니다. 저희의 잘못를 보시지 마시고 부디 이 겨례 위레 화해의 은총을 내려 주옵소서.」엎디어 절하면서 이렇게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