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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

예(禮)란 무엇인가?    

예절이란 일정한 생활문화권에서 오랜 생활관습을 통해 하나의 공통된 생활방법으로 정립되어 관습적으로 행해지는 사회계약적인 샐활규범이다.

사람은 사회생활을 하는 바, 높은 산이나 깊은 물에 막혀 수월하게 무리를 지어 하나의 문화를 형성하며 사는 일정한 지역을 생활문화권이라 하고, 그 문화권에 사는 사람들이 가장 편리하고 바람직한 방법이라 여겨 모두 그렇게 행하는 생활방법이 예절이다.

때문에 예절은 언어문화권과 밀접한 관계를 갖는다. 민족과 나라에 따라 언어가 다르듯이 예절도 국가와 겨례에 따라 달라진다. 같은 언어문화권이라도 산과 강을 경계로 해 사투리가 있듯이 예절도 지방에 따라 약간씩 다를 수 있다.

그러나 같은 나라에서 표준어를 정해 그것이 통용되기를 바라는 것과 같이 예절도 한 나라에서는 통일되어야 그 국민으로서 생활하기가 수월한 것이다. 그런 까닭으로 우리는 공통적으로 행해지는 가장 바람직한 생활방법을 익혀 어울려 사는데 지장이 없도록 통일된 바른 예절을 알아야 하겠다.

  1. 우리의 옛집

우리의 옛집

조선 시대의 상류 계층이었던 양반들이 유학(儒學)을 공부하여 관직(官職)에 나감으 로써 지위나 재산을 얻고, 유교의 가르침에 따라 학문과 덕행(德行)을 쌓는 것이 생할의 원칙이었다면, 하류 계층이었던 일반 백성들은 농업이나 수공업, 어업 등 직접적인 생산 활동으로 생계를 유지하였다. 그 중의 대부분은 양반의 토지를 빌려 농사를 짓던 농민들이 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낮은 지위에 속하였으며, 경제적으로 궁핍한 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이들에게는 유교의 가르침에 따르는 의례적인 생활보다는 생산 활동을 도와 줄 수 있는 실용적인 주택이 필요하였고,주변 환경에 잘 적응할 수 잇는 주택을 쉽게 지을 수 있는 방법이 요구되었다. 고려 시대에 이르기까지 농민 계층은 농노적(農奴的)인 신분과 경제력에서 벗어나기 어려웠기 때문에, 그들의 주택도 주거 공간이 분화(分化)되지 않은 원초형 주거에서 크게 발전할 수 없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조선 초기부터 농업 기술의 발달과 아울러, 농민 계층의 경제력이 높아지고 자영농(自營農) 계층이 많아짐에 따라 더욱 향상된 주택을 마련하게 되었고, 생산력을 높일 수 있는 다양한 주거 공간이 만들어질 수 있었던 것이다.

조선 후기에 이르러 봉건적인 신분 질서가 약해지고, 농업 생산을 통하여 재산을 모은 농민들이 중농(中農), 또는 부농(富農) 계층으로 성장하게 되었다. 이 같은 경제력을 기반으로 이들은 지역적인 주택 형식에 상류 계층 주택의 부분적인 요소를 가미하여 주택을 건설함으로써 같은 지역 안에서도 경제력에 따라 여러 유형의 주택들이 만들어질 수 있었다.

이들의 주택은 지역의 자연 환경에도 적응해야 했기 때문에 그 지역의 기후나 토지, 취락 구조(聚落構造) 등과 같은 주변의 여건에 대응하여 독특한 주택 형식으로 발전시켜 나갔을 것이다. 이 중에서도 특히 기후는 주택의 형태를 결정하는 요인 중에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추위와 더위를 피하는 방법이 다를 뿐 아니라, 바람이 거센 지역에서는 바람을 막을 수 있는 장치가 있어야 하고, 눈비가 많은 지역에서는 이에 대응하는 방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 박에도 맹수(猛獸)나 외적(外敵)의 피해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이나, 읍성과 같은 밀집 지역에서의 사생활 보호, 각 지역의 생활 양식의 차이, 종교나 신앙 등 사회적 조건에도 주거 문화의 지역적 특성을 만드는 배경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1Korean Housing development by regions

여하튼, 지역마다 독특한 환경에 대응해 가는 과정 속에서 저마다 주택에 대한 요구가 달랐을 것이며, 이에 따라 주거 공간을 결합하는 방법이나 주택 내•외부의 재료 및 설비에 이르기까지 각기 다른 방법을 사용함으로써 독특한 주택 형태를 만들어 나갔을 것이다 이들의 주택은 각 지역에서 활동하던 지방 대목(大木)들이 반복하여 건설함으로써 지역적인 주거 유형으로 자리잡게 했던 것이다. 조선 시대 서민 주택을 지역 주거 문화의 발생 과정을 기준으로 하여 다음과 같이 분류할 수 있다.

Types of Korean Housing

우리의 서민 주택의 모습은 이처럼 다양하였다.

 

  1. 집중형 주거의 발생 과정

집중형 주거의 발생 과정

우리 나라의 북부 지역은 남부에 비해 겨울이 길고 추운 기후의 특성을 가지고 있으며, 평야보다는 산지가 많은 지역적 특성을 가지고 있다. 길고 추운 겨울을 보내기 위해서는 적은 연료로 오랫동안 난방할 수 있는 방법이 필요했으며, 고구려 시대부터 북부 지역에서 온돌 난방법이 발달한 것도 이와 같은 이유에서였을 것이다.

이 지역에서는 혹독한 기후로 바깥에서 활동하는 것이 어렵기 때문에, 가급적 모든 생활이 집 안에서 이루어지도록 하기 위해 하나의 건물 안에 모든 주거 공간을 모으는 방법이 개발되었다. 또, 이렇게 해야만 적은 연료로 많은 공간을 데울 수 있었을 것이다. 또 각 공간이 외부와 닿는 면적이 크면 난방으로 얻은 집 안의 열기가 쉽게 바깥으로 빠져 나가기 때문에 각 공간이 외부와 닿는 면적을 최소로 줄이기 위해서도 공간을 모으는 일이 필요했을 것이다.

주거 공간을 한 건물에 집중시키는 방법은 외부의 적으로부터 인명(人命)이나 재산을 보호하는 데에도 효과를 거둘 수 있었다. 산지(山地)가 많은 북부 지역에는 산에 불을 놓아 농사를 짓는 화전민(火田民)이 많았고, 따라서 산 속 여기저기에 흩어져서 살았기 때문에 산짐승이나 도적들의 피해를 많이 경험하게 되는데, 이것들을 방어하기 위해서도 주거 공간을 여러 채의 건물로 분산시키는 것보다는 하나의 건물 안에 집중시키는 것이 효율적이란 사실을 알았을 것이다.

‘집중형 주거’란 모든 주거 공간을 한 건물에 모아서 만든 집을 말하는데, 앞서 말한 바와 같이 혹독한 추위에 잘 견딜 수 있도록 열효율을 높이고, 외부의 적으로부터 쉽게 보호될 수 있도록 폐쇄적인 형태로 지어진 것이다. 따라서 그 특징은 부속 건물이 없이 살림채 하나에 거의 모든 주거 공간이 들어가게 되어, 살림채의 규모가 크며, 내무에서 모든 공간이 연결될 수 있도록 만들어진다. 이 때 살림채 앞의 마당은 집 밖이 되기 때문에 높은 담장이나 대문을 설치할 필요가 없는 ‘바깥 마당’이 되는 한편, 살림채의 뒷마당은 가재 도구(家財道具)나 식품을 저장하기 위해 높은 담장과 문을 주어 폐쇄적인 공간이 된다. 또 열효율을 놓이기 위해서는 외벽(外壁)을 두껍게 하고, 창이나 문의 면적을 줄이며, 두꺼운 반자로 천장을 덮는 것도 중요한 특성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집중형 주거가 반드시 난방이나 방어를 위해서만 만들어졌다고 할 수는 없다. 극심한 더위나 거센 바람, 폭설 등 바깥 생활에 지장을 받을 정도의 기후 조건을 가지고 있는 지역에서도 주거 공간을 모아 짓는 방법이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지역에서는 같은 집중형 주거라고 하여도 또다른 모습의 주거 형태가 만들어지게 되는 것이다.

 

  1. 분산형 주거의 발생 과정

분산형 주거의 발생 과정

우리 나라의 남부 지역은 북부 지역에 비해 산지보다는 평야가 많은 지형적 특성과 여름이 길고 무더운 기후적 특성이 있다. 길고 무더운 여름을 시원하게 보내기 위해서는 바람이 잘 통하는 가옥 구조를 가져야 했고, 외부 활동이 비교적 자유롭기 때문에 주거 공간을 여러 건물로 분산하는 방법이 발달하게 되었다. 또 넓은 들이 많은 관계로 농업이 발달하였고, 이에 따라 주택 내에서 농사와 관련한 작업 공간으로서의 넓은 마당이 반드시 필요했으리라고 생각된다. 이렇게 온난한 기후 조건을 배경으로, 넓은 마당을 두고 주거 공간을 여러 채의 건물로 분산하는 형식의 주거를 ‘분산형 주거’라고 한다.

대규모의 농사를 짓다 보니 많은 가구가 모여 조밀하게 마을을 이루는 이른바 집촌형 (集村型) 취락 구조를 가지게 된다. 이러한 마을 구조 속에서는 각 집의 경계가 분명해야 하고, 따라서 외부에 노출되기 쉬운 주거 생할을 보호하기 위해 건물과 마당을 둘러싸 주는 대문과 담장이 발달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남부 지방에서는 가난한 집이라도 건물과 마당 둘레에 울타리나 사립문 같은 것을 허술하게나마 설치하는데 이것이 바로 분산형 주거의 특성인 것이다.

주거 공간을 여러 건물로 분산하였을 때, 살림채 안에는 많은 공간이 있을 필요가 없기 때문에 살림채의 규모가 비교적 작고, 통풍에 유리한 ‘홑집(공간이 한 줄로 배열된 평면 형태의 집)’이 발달하게 되었다. 반면 경제력이 커질수록 부속 공간이 많아지기 때문에 부속 건물의 수가 늘어나거나 부속 건물이 겹집의 형태를 이루는 경우도 발생하게 된다.

안마당에서 이루어지는 활동이 많아짐에 따라 각 방에서 마당으로 드나드는 일도 많아졌고, 마당에서 출입하기 편리하게 하기 위해 ‘툇마루’가 발달한 것으로 생각된다. 툇마루의 출입의 편리함뿐만 아니라 따가운 햇볕을 피할 수 있는 그늘진 장소로서의 여름철에 유용하게 사용되기도 한다. 영남 지방의 옛날 목수들은 툇마루가 설치된 집을 특별히 ‘툇집’이라고 부르며, 툇마루의 폭도 4척 이상으로 넓게 만드는 것을 보면 툇마루가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되었는지 알 수 있다.

보온보다는 통풍이 더 필요하였기 빼문에 반자가 발달하지 않고 창호 면적이 크며, 홑집에 유리한 삼량 가구법이 많이 사용되는 것도 분산형 주거의 특성이라고 생각된다.

 

  1. 절충형 주거의 발생 과정

절충형 주거의 발생 과정

성질이 다른 두 개의 문화권(文化圈)이 인접한 지역에서는 서로가 영향을 주고받음 으로써 두 문화의 성질을 혼합한 형태로 변화하게 되는데, 이러한 변화를 문화 지리학 (文化地理學)에서는 문화의 접촉 변용(接觸變用)이라 부르고 있다.

한반도에서의 주거 문화는 크게 두 가지로 나타나는데, 이렇게 볼 때 북부 지방의 집중형 주거 문화와 남부 지방의 분산형 주거 문화가 맞닿는 지역에서는 문화의 접촉 변용에 의한 변화가 예상될 수 있고, 기후 조건 중간적인 성격을 가지기 때문에 두 요소가 혼합되어 만들어진 절충적인 주거 문화가 발생하게 되었을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주거 문화를 ‘절충형 주거 문화’라고 부른다. 중간 지역에서 절충 방법은 집중형 주거에서 살림채의 부분과 부속채의 부분이 분리되면서 두 건물 사이가 담장으로 연결되기도 하고, 살림채의 평면 형태은 ‘홑집’이지만 마구간과 같은 부속 공간을 살림채 안에 두고 있는 등 분산형 주거의 부부적인 성격이 나타나기도 한다. 즉 보온이나 방어에 중점을 둔 형태 에서부터 통풍이나 채광을 중시하는 형태까지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두 문화권의 중간 지역에서 나타나는 절충형 방식 이외에도 몇몇 섬 지방과 같이 특수한 기후가 원인이 되어 나타나는 절충형 방식을 생각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제주도는 한반도에서 가장 기후가 온난한 지역이기는 하나 바람이 거세기 때문에, 여러 채의 건물로 이루어진 분산형 주거의 특성도 가지고 있지만, 살림채가 페쇄적인 돌담으로 둘러싸인 ‘겹집’의 평면 형태도 가지고 있다. 즉 제주도의 ‘겹집’은 보온이나 방어의 필요성이 아닌 방풍(防風)의 필요성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볼 수 있다.

또 겨울에 폭설이 내려 외부에서의 통행이 어려운 울릉도에서는 살림채가 홑집이기는 하지만, 마구간이나 헛간과 같은 부속 공간이 붙어 있고, 처마 밑으로 ‘우데기’라는 가벽을 설치한 ‘우데기집’이 만들어지기도 한다. 우데기는 방설벽(防雪壁)으로서, 눈이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도록 건물의 외부를 두르는 벽이다. 지붕 위에도 많은 눈이 쌓여 일반 목구조로는 지탱하기 어렵기 때문에 ‘귀틀벽’이 사용되기도 한다.

집의 사회화 강영환 웅진출판사 19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