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y

 

Culture

예(禮)란 무엇인가?    

예절이란 일정한 생활문화권에서 오랜 생활관습을 통해 하나의 공통된 생활방법으로 정립되어 관습적으로 행해지는 사회계약적인 샐활규범이다.

사람은 사회생활을 하는 바, 높은 산이나 깊은 물에 막혀 수월하게 무리를 지어 하나의 문화를 형성하며 사는 일정한 지역을 생활문화권이라 하고, 그 문화권에 사는 사람들이 가장 편리하고 바람직한 방법이라 여겨 모두 그렇게 행하는 생활방법이 예절이다.

때문에 예절은 언어문화권과 밀접한 관계를 갖는다. 민족과 나라에 따라 언어가 다르듯이 예절도 국가와 겨례에 따라 달라진다. 같은 언어문화권이라도 산과 강을 경계로 해 사투리가 있듯이 예절도 지방에 따라 약간씩 다를 수 있다.

그러나 같은 나라에서 표준어를 정해 그것이 통용되기를 바라는 것과 같이 예절도 한 나라에서는 통일되어야 그 국민으로서 생활하기가 수월한 것이다. 그런 까닭으로 우리는 공통적으로 행해지는 가장 바람직한 생활방법을 익혀 어울려 사는데 지장이 없도록 통일된 바른 예절을 알아야 하겠다.

  1. 안동 의성 김씨 종택

안동 의성 김씨 종택

훌륭한 인물 많이 배출한 4대 명당 중 하나

물가 앞에 자리해 '내앞마을'로 불려…안채·사랑채·행랑채·부속채가 서로 이어진 '巳'(사)자형 평면

13
경북 안동에 있는 의성 김씨 종택의 전경. 이 집이 있는 내앞마을은 터가 좋은 명당으로 손꼽힌다.

안동시에서 동북쪽에 있는 임하 댐 방향으로 10 km 쯤 가다가 보면, 낙동강 지류인 반변천을 만나게 됩니다. 이 맑은 물길을 따라 거슬러 올라가면 오래된 소나무 숲이 우거진 강가에 이르게 되고, 그 왼쪽으로 기와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마을이 보입니다. 이 곳이 바로 의성 김씨 종택이 있는 내앞(천전)마을입니다. 물가 앞에 있다고 해서 예부터 그렇게 불려 오고 있어요.

●학봉 선생이 손수 설계 감독해 지어

14
집 뒤에서 내려다본 의성 김씨 종택의 안채.

내앞마을은 안동 하회마을ㆍ경주 양동마을ㆍ봉화 닭실마을과 함께 우리 나라 마을 중에서 가장 살기 좋은 터로 손꼽는 4 대 명당 가운데 하나랍니다.

이렇게 명당 터에 자리잡은 덕분인지 훌륭한 인물을 많이 배출한 집안이 있는 곳으로도 널리 알려진 마을입니다.

훌륭한 인물을 여럿 낸 집안이라고 할 때, 그 잣대는 무엇보다 집안 사람들이 ‘어떻게 참되고 올곧은 삶을 살았는가?’하는 것이 되겠지요.

내앞 의성 김씨 집안이 유명한 것은, 무엇보다 바로 이 종택에서 태어난 조선 선조 때의 선비였던 학봉 김성일(1538-1593) 선생 때문입니다. 학봉 선생은 임진왜란 때 진주성에서 왜군과 싸우다가 전쟁터에서 돌아가신 분이지요.

15
의성 김씨 종택의 샛마당과 오른쪽 안채.

의성 김씨 집안은 또 많은 후손들이 일제 강점기에 일본과 맞서며 독립 운동을 하였고, 독립 운동 자금을 지원하였습니다. 이렇게 사회적 책임을 다했기 때문에 훌륭한 집안이라 우러러보는 것이지요.

의성 김씨 종택은 원래 학봉 선생의 할아버지인 김예범 어른이 지은 것을 학봉의 아버지 김진(1500-1580) 선생이 일부 고쳤답니다. 그런데 그 집은 1587년에 불타 없어지고, 그 뒤 학봉 선생이 손수 설계하고 감독해서 지었다고 전해집니다.

●사랑채는 행랑채 대문 거치지 않아

16
의성 김씨 종택의 사당.

이 집은 전체적으로 ‘ㅁ’자형 안채, ‘ㅡ’자형 사랑채, 그리고 행랑채와 부속채가 서로 이어져 전체적으로 ‘巳’(사)자형 평면을 이루고 있습니다.

사랑채는 행랑채의 대문을 거치지 않고 곧바로 갈 수 있는 별도의 문으로 드나들도록 되어 있습니다. 종택이라서 집안 큰일로 일가 남자 어른들의 사랑채에 드나듦이 잦게 마련이니까, 이럴 때 행랑채의 대문을 거치지 않고 곧장 사랑채로 드나들도록 배려한 것입니다.

사랑채는 정면 4 칸에 측면 2 칸으로 된 규모가 큰 건물입니다. 사랑채의 넓은 대청마루는 집안에 찾아온 손님을 접대하거나 집안 어른들이 회의를 할 때 사용하고, 또 관례ㆍ상례ㆍ제례를 행하는 공간으로 쓰였어요. 제사 때 주로 쓴다고 하여 ‘제청’이라고도 하고요.

대청마루 서북쪽 언덕 위에는 이 집의 사당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17
손님을 맞는 곳이나 회의 장소로 쓰였던 대청마루.

집 안으로는 행랑채의 대문을 통해 드나듭니다. 이 대문을 들어오면 사랑채ㆍ안채ㆍ부속채로 둘러싸인 길쭉한 마당이 나타납니다. 흔히 샛마당이라고 하는데, 옛날에는 여기서 결혼식을 치렀습니다.

이 마당 왼쪽으로 길게 늘어선 2 층 건물은 사랑채와 행랑채로 이어지는 부속채고, 오른쪽으로 높은 기단 위에 자리한 건물은 안채입니다. 부속채는 위층은 서고로 사용되며 사랑채로 이어지고, 아래층은 헛간으로 쓰입니다. 이와 같은 2 층 구조는 우리 나라 다른 살림집에서는 보기 드물지요.

●안채 드나드는 중문 따로 없어

안주인이 생활하면서 집안 살림을 맡았던 안채는 작은 마당 둘레로 대청ㆍ안방ㆍ태실ㆍ상방ㆍ고방ㆍ부엌 등이 배치되어 ‘ㅁ’자형을 이루고 있어요. 다른 한옥과 달리 이 집의 안방은 안채 바깥쪽으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안채는 오랜 세월 동안 살면서 고치고 덧붙여 지은 건물입니다. 안채 대청마루가 세 개의 다른 높이로 구성되어 있는 것도 여러 번 고쳐 지은 탓이고요. 많은 식구들이 식사를 하거나 모여 앉을 때 바닥 높이가 다른 대청마루에 서열이나 신분에 맞게 자리를 구분하여 사용하였다고 전합니다.

또 안채 대청마루 모퉁이에 있는 산실이라고 불리는 조그만 방이 있어요. 사랑채와 안채가 만나는 곳에 있는 작은 이 방에서 아이를 낳았다고 합니다. 아이를 출산하는 방이라고 해서 태실이라고도 하지요.

이 집을 드나들며 알게 되는 재미있는 사실은 안채로 들어가는 중문이 따로 없어 외부 사람들이 쉽게 안채로 들어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안채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부엌으로 난 작은 문을 통해야 하는데, 이는 조선 시대에 남녀의 공간을 얼마나 철저하게 구분했는지를 잘 보여 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