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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

예(禮)란 무엇인가?    

예절이란 일정한 생활문화권에서 오랜 생활관습을 통해 하나의 공통된 생활방법으로 정립되어 관습적으로 행해지는 사회계약적인 샐활규범이다.

사람은 사회생활을 하는 바, 높은 산이나 깊은 물에 막혀 수월하게 무리를 지어 하나의 문화를 형성하며 사는 일정한 지역을 생활문화권이라 하고, 그 문화권에 사는 사람들이 가장 편리하고 바람직한 방법이라 여겨 모두 그렇게 행하는 생활방법이 예절이다.

때문에 예절은 언어문화권과 밀접한 관계를 갖는다. 민족과 나라에 따라 언어가 다르듯이 예절도 국가와 겨례에 따라 달라진다. 같은 언어문화권이라도 산과 강을 경계로 해 사투리가 있듯이 예절도 지방에 따라 약간씩 다를 수 있다.

그러나 같은 나라에서 표준어를 정해 그것이 통용되기를 바라는 것과 같이 예절도 한 나라에서는 통일되어야 그 국민으로서 생활하기가 수월한 것이다. 그런 까닭으로 우리는 공통적으로 행해지는 가장 바람직한 생활방법을 익혀 어울려 사는데 지장이 없도록 통일된 바른 예절을 알아야 하겠다.

  1. 전화를 거는 예절

전화를 거는 예절
• 상대의 전화번호를 확인한다.
• 용건을 미리 정리해 짧은 시간에 끝내도록 한다.
• 감정을 안정시키고 표정를 부드럽게 하며 호흡을 가다듬는다.
• 통화음이 들리거나 5회이상 신호가 가도 받지 않으면 조용히 2~3분 후에 다시 건다.
⊙ 상대가 전화를 받으면 상대를 확인한다.
• ㅇㅇㅇ국에 ㅇㅇㅇ - ㅇㅇㅇㅇ번입니까?
• ㅇㅇㅇ댁입니까?
• ㅇㅇ회사 ㅇㅇ과입니까?
⊙ 상대가 확인되면 자기를 소개한다.
• 여기는 ㅇㅇ회사 ㅇㅇ과입니다.
• 저는 ㅇㅇㅇ에 사는 ㅇㅇㅇ입니다.
• 상대가 이쪽을 아는 것이 분명하면 먼저 인사부터 한다
⊙ 다른 사람이 받았으면 정중하게 바꿔줄 것을 청한다.
• 죄송합니다 ㅇㅇㅇ가 자리에 있으면 바꿔주시면 좋겠습니다.
• 상대가 전화에 나오면 인사부터하고 용건을 간단하게 말한다.
⊙ 상대가 없으면 전화받은 사람에게 전할 말을 하고 정중하게 부탁한다.
• ㅇㅇㅇ에게 전해 주시겠습니까?
• 죄송합니다만 ㅇㅇㅇ에게 전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용건이 끝나면 정중하게 인사하고, 전화를 끊겠다고 한 다음 끊는다.
• 감사합니다. 그럼 전화를 끊겠습니다.
⊙ 전화가 잘못 걸렸을 때는 정중하게 사과한다.
• 죄송합니다. 전화가 잘못 걸린 것 같습니다.

  1. 전화를 받는 예절

전화를 받는 예절
⊙ 전화 벨이 울리면 호흡을 가다듬고 평온한 감정으로 전화기 앞에 임한다.
⊙ 전화 벨이 두번 울리면 전화기를 들어 귀에 대고 이쪽을 소개한다.
• 예, ㅇㅇㅇ번입니다.
• 예, ㅇㅇ회사 ㅇㅇ과입니다.
• 예, ㅇㅇㅇ입니다.
⊙ 전화를 건 사람이 확인되면 인사부터 한다.
⊙ 다른 사람을 찾으면 친절히 기다리라고 하고 전한다.
• 예, 자리에 계십니다. 잠깐만 기다려 주세요.
• 예, 지금 다른 전화를 받고 계십니다. 잠깐만 기다리시면 곧 바꿔드리겠습니다.
⊙ 받을 사람이 자리에 없으면 그 사실을 친절히 말하고 대신 받아도
되겠느냐고 청한다.
• 예 마침 자리에 안계십니다. 저는 그 분과 함께 일하는 ㅇㅇㅇ인데 저에게 말씀하시면 전해 드리겠습니다.
• 예, 자리에 안계신데요. 전하실 말씀을 저에게 하시면 전해 드리겠습니다.
• 예, 자리에 안 계신데요. 돌아오시면 어떻게 전해 드릴까요?
⊙ 남에게 온 전화일 때는 통화내용을 누가, 언제, 무슨 일로 전화했었다고
기록해서 전한다.
⊙ 통화가 끝나면 정중하게 인사한다.
⊙ 전화를 건 사람이 먼저 끊은 후에 전화를 끊는다.
⊙ 상대가 건 전화에 이쪽의 용건을 장황하게 말하지 않는다.
(특히 장거리 전화)
⊙ 잘못 걸려온 전화라도 친절하게 응대한다.
• 예, 여기는 ㅇㅇㅇㅇ번입니다 잘못 걸린 것 같습니다.

  1. 전화의 문화

전화란 인사를 서로 나누기 위해서 거는 것이기도 하지만, 실지로는 요긴한 이야기를 나누기 위하여 거는 일이 더 많을 것이다. 현대인은 모두 바쁘다. 그 바쁜 시간을 초(秒)로 쪼개어 하루 하루를 눈코 뜰 사이조차 없이 동(東)으로 서(西)로 뛰면서 사는 사람들이 급히 걸었을 때의 전화불통, 출발시간은 다가오고 전화는 불통이고 말은 꼭 전해야 되겠고 이래서 속이 타고 간장이 타는데, 몇 번씩 걸어도 통화중일 때에는 차라리 헬리곱터를 타고 달려 가서 무슨 이야기가 왜 그렇게도 긴지 한번 확인해 보고 싶을 때가 한 두번이 아닐 것이다. 온종일 전화기에 매달려 있는 사람들을 보면 분통이 커진다.

세상이 날로 변화해 감에 따라서, 오늘날에는 손자, 증손녀까지 한 울타리에 사는 대가족제도를 도저히 유지할 수가 없게 되었다. 그보다는 오히려 온 집안식구들이 동서남북으로 심지어 세계의 각 대륙에까지 흩어져서 살아야만 하는 시대가 되었다. 이러다보니 꼭 함께 모시고 살아야 될 노부모까지도 여러가지 형편 때문에 모시지 못하고 사는 집안들이 많아졌다. 이런 집안에서는 서로 헤어져 사는 식구끼리의 전화 통화를 대개 깊은 밤이나 새벽녘에 하는 수가 많다. 큭히 노부모를 함께 모시지 못하고 있는 집안에서는 한밤중에 전화가 걸려 올 때마다 가슴이 덜컹덜컹하는 것이다. 그런데 자정(子正) 가까이 요란스럽게 걸려 오는 전화.

「여보세요」
「거기 미자좀 바꿔라!」
「어디에다 거셨는데요?」
「잔소리 말고 빨리 미자나 바꿔」
「미자라니요? 여기에는 그런 분 안계신데요.」
「에에이 재수 없어. 빨리 끊어!」

누가 누구더러 할 소리인지? 세상에는 이렇게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도 꽤 있다. 이보다 더 심한 병에 걸린 환자도 있다. 제 정신인지 또는 제 정신이 아닌지 모르겠으나, 날마다 새벽 2시에 남의 집에다가 꼬박꼬박 전화를 걸고서는, 귀신 같은 목소리를 내거나 곧 숨을 거둘 사람 같은 소리를 내어서 모든 가족의 잠을 설치게 만드는 병자들이 있다. 때로는 제 정신 가진 사람이 병신구실 하는 경우도 있다. 요새는 중학교 동창이 어떤 자리에라도 앉게 되면 마치 자기가 그 자리에 앉은 것처럼 착각하는, 과대망상증 환자들이 있다.

「거기 해외부지? 부장 좀 바꿔!」
「실례지만 누구신데요?」
「중학교 동창이라고 해!」

이런 경우에는 「거기 해외부죠? 부장님 계십니까?」라고 한 다믕, 본인이 나오면 서로 말을 놓도록 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미소짓는 얼굴이 우리를 기쁘게 하듯이 상냥한 목소리도 또한 우리를 기쁘게 한다.

「네에, 우이동입니다.」
「저, 아무개 있어요?」
「학교에서 아직 안 왔는데요, 누구시지요?」
「친군데요.」

아이들이 돌아오면 나는 「얘, 너의 잘난 친구가 전화했더라. 이름이 하도 귀해서 대어 주지도 않더라.」한다.

「여보세요, 거기 우이동이지요? 저는 아무갠데요, 아무개 있어요? 좀 바꿔 주시겠어요?」상대방을 확인하고 자기를 밝히고, 말하고 싶은 사람을 찾는 것이 옳을 것이다.

아무리 성미가 급하더라도,

「여보, 오늘 저녁에 된장국 끓여놔!」단숨에 다짜고짜 이 말만 하고 뚝 끊으면 어쩌란 말일까? 그 집 전화가 몇 번이지나 알아야 그 댁에 된장국을 끓여 놓으라고 전갈이나 하지.

하기야 오는 전화만 잘못 걸리는 게 아니다.
「여보슈, 똑똑히 알고나 걸어요. 나 원 참, 바빠 죽겠다는데 웬 놈의 헛전화야, 젠장.」
「네, 번호가 틀리는데요. 아주머니 또 잘못 걸리는가 봅니다.」

자기도 모르는 실수로 잘못 걸린 전화의 답변에서 우리는 두 모습을 본다. 그러면서 잘못 걸려온 전화에 대하여 상냥하고 정중한 우리의 답변을 생각하게 된다.

전화를 들자마자 갖은 수다를 다 늘어놓는 사람도 있다. 집안에는 혼자 살지 않으면 늘 마음을 써야 할 다른 사람이 있게 마련이고 자기말고 다른 사람에게도 전화는 필요한 것이다. 게다가 받고 있는 사람에게는 ‘네’나 ‘아니오’ 밖에는 한마디의 건네는 말을 할 겨를도 안 주고 퍼부어 댈 때, 전화가 길어 집안 식구들의 눈총을 따갑게 느낄 때는 어쩔 줄을 모르겠다. 그렇다고 그냥 뚝 끊어 버릴 수도 없고, 사정을 모르는 식구들은 왜 자꾸 ‘네’소리는 하느냐는 것이다. 장단을 맞추니까 자꾸 긴 사설이 나온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직장 전화에 이런 긴 사설이 걸려올 때는 정말 미칠노릇이다.

「저, 죄송해요. 곧 수업에 들어가야 해요. 나중에 제가 다시 걸께요.」오는 전화가 길어도 민망하거늘 거는 전화에 있어서랴. 주변에 사람들이 많이 있는데도 너덧

군데씩 그것도 남이 듣기에는 긴하지도 않는 얘기들을 늘어놓을 때는 눈살이 찌푸려진다.

그러나 우리의 생활이 아무리 바쁘더라도 어떤 사람에게는 새나 고양이•강아지 같은 것들의 건강과 아픔이 자기 자식의 아픔과도 같고, 오가는 이 없은 빈집을, 하고 한 날 지켜야 하는 사람에게는 걸려온 전화의 기쁨이 어떠리라는 것도 색가해야 할 것이다. 그렇지만 그보다도 다급한 전화가 있다는 것도 잊지는 말아야겠다.
옛날 사람들은 하루에도 세 번 부모님께 문안을 드렸다. 생활에 시달리는 요즈음에는 전화로라도 문안을 드리는 것은 정겨운 도리라 생각된다. 우리 마음에야 「가서 뵈어야지, 어찌 건방지게 전화를 건담」하고 생각하지만 가 뵙지도 못할 바에야 전화로나마 문안을 드리는 게 옳을 것이다.

「어머니 안녕하세요? 덥지 않으세요? 어떠세요? 다리는 좀 나으셨어요?」어쩌다 전화라도 한 번 걸어 드리면 「수지 에미냐? 그래 어미는 잘있다. 고맙다.」딸이 거는 전화에 고맙다던 어머니 음성이 지금도 쟁쟁하다. 오죽 무쪽같고 맛없는 딸이었으면 어머니가 그러셨을까?
「수지 어미냐? 어미다. 그저 목소리라도 듣고 싶어 걸었다. 바쁘지/ 어미한테 좀 들를 수 있겠니?」
「어머니 며칠을 바빠요. 한 사날 뒤에 뵈오러 갈께요.」

이렇게 말씀드리고도 빨리 가서 뵙지 못했다. 세상에 어머니보다 더 소중한 일이 무엇이길래 보고 싶어 하시는데도 빨리 뵈오러 못 갔을까?

어느 가정의 예의범절 강신항, 정양완 교수 정일출판사 19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