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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

예(禮)란 무엇인가?    

예절이란 일정한 생활문화권에서 오랜 생활관습을 통해 하나의 공통된 생활방법으로 정립되어 관습적으로 행해지는 사회계약적인 샐활규범이다.

사람은 사회생활을 하는 바, 높은 산이나 깊은 물에 막혀 수월하게 무리를 지어 하나의 문화를 형성하며 사는 일정한 지역을 생활문화권이라 하고, 그 문화권에 사는 사람들이 가장 편리하고 바람직한 방법이라 여겨 모두 그렇게 행하는 생활방법이 예절이다.

때문에 예절은 언어문화권과 밀접한 관계를 갖는다. 민족과 나라에 따라 언어가 다르듯이 예절도 국가와 겨례에 따라 달라진다. 같은 언어문화권이라도 산과 강을 경계로 해 사투리가 있듯이 예절도 지방에 따라 약간씩 다를 수 있다.

그러나 같은 나라에서 표준어를 정해 그것이 통용되기를 바라는 것과 같이 예절도 한 나라에서는 통일되어야 그 국민으로서 생활하기가 수월한 것이다. 그런 까닭으로 우리는 공통적으로 행해지는 가장 바람직한 생활방법을 익혀 어울려 사는데 지장이 없도록 통일된 바른 예절을 알아야 하겠다.

  1. Spring Planting

Hansik - Spring Planting

Hansik is the day of planting seeds for the upcoming season.  Celebrated on the 105th day after the winter solstice, the day generally falls on the third month of the lunar calendar.  It is on this day that many of the families would perform Ancestral Memorial Rites.

한식

한식날에는 불을 지피지 않고 찬밥을 먹는다고 해요. 한식은 한자로 차가울 한(寒), 밥 식(食)자를 쓴다. 즉 ‘찬밥을 먹는 날’이란 뜻이다.

한식은 동지가 지나고 1백 5일째 되는 날이다. 이 때는 농촌에서 씨를 뿌릴 때이기 때문에 특별한 놀이를 하지 않는다. 특히 이 날은 자손들이 돌아가신 조상의 묘를 찾아가 차례를 올리고, 묘를 정성껏 돌보아 조상의 은덕을 잊지 않는 날로서, 조상숭배와 효사상을 드높인 날이다. 그래서 평소 자주 성묘를 못한 사람이더라도 한식날만은 잊지 않고 찾아가 성묘를 하여 자식의 도리를 다한다. 시대와 사회와 역사가 바뀌어도 수천 년 동안 전통적으로 전승해오는 미풍양속인 것이다.

이 날이 오면 나라에서는 종묘와 능원(陵園)에 제향(祭香)을 지냈다. 관공사(官公使)들에게는 공휴를 주어 성묘하는 편의를 주었다.

한식에 드리는 차례를 ‘한식 차례’라고 한다. 묘 앞에 술•과일•식혜•떡•국수•탕을 놓고 제사를 드리는 것이다. 그리고 나서 조상의 무덤을 돌아보며 성묘를 한다. ‘성묘’란 묘를 찾아가서 보살피는 것을 말한다. 차례를 지내고 사초도 하며, 산소의 망가진 곳도 정성껏 손질하여 돌보고 근처에 나무를 심기도 했다. 특히 민간에서는 산소에 가서 제사를 지내기 위해 남녀노소들이 사방으로 줄을 이어, 이곳저곳 자시 산소를 찾아가 성묘의식을 하였다. 산소에 갈 때는 촛대와 돗자리도 가지고 갔다. 이 날은 정월과 추석 때보다 어린이들을 더 많이 참례시켰고, 산소에서 곡(哭)은 하지 않았다. 

한식날은 양력으로 보면 대체로 4월 5,6일쯤이 된다. 식목일과 비슷한 때이다. 이 때가 일 년 중 나무를 심거나 씨를 뿌리기에 가장 알맞은 시기이다. 한식은 농사와 관계가 깊은 날이다. 농가에서는 이 날을 일 년 농사의 처음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이 날을 기준으로 채소 씨를 뿌려 새해 농사를 시작했다. 한식날 무렵은 비가 많이 내리지 않는 건조기이다. 게다가 바람도 무척 많이 부는 때이다. 그런데 이럴 때에 성묘하러 가서 불을 쓰면 어떻게 될까. 잘못해서 바싹 마른 나뭇가지와 풀에 불이 붙어 버리면 큰 산불이 되고 말 것이다. 이렇듯 한식은 건조한 날씨에 잘 맞는 명절이다. 불을 조심하고 잘 관리하라는 날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역사학자인 육당 최남선은 『조선상고문답』에서 개자추의 고사에서 한식의 유래를 찾는 일은 근거가 없는 것으로 일축하고 있다. 그것이 아니라 옛날 나라에서 종교상의 이유로 1년에 한번 봄에 새로 불을 일궈 대궐에서 민간에게 나눠주었는데, 백성들은 하루 전에 해묵은 불을 미리 꺼야 했으므로 지어두었던 밥을 먹게 되었다는 것이다.
또 1년 중 이때쯤은 건조하고 바람이 심해서 불이 나기 쉬우므로 조선시대 금화랑청의 관리들이 시내를 순시하며 불을 금하도록 주의를 시켰다는 설도 있다.

찬밥의 유래야 어떻든 ‘꽃 피고 풀 돋우니 옛일이 그리워져 조상의 무덤을 찾아뵙는다’는 최남선의 한식에 대한 설명은 우리 조상들의 아름다운 마음을 잘 전해준다.

STORIES

중국 춘추 시대 진나라에 문공이라는 왕자가 있었어요. 그런데 임금이 죽고 왕실이 어지러워지자 왕자 문공은 멀리 다른 나라를 떠돌게 되었어요.

문공에게는 여러 명의 신하가 있었는데 개자추도 그 중 한 사람 이었어요. 개자추는 무척 충성스러운 신하였어요. 아무리 힘들어도 절대로 문공의 옆을 떠나는 적이 없었지요.

그러던 어느 날이었어요.

‘아, 이제 더 이상 걸을 힘이 없구나.’

문공은 너무 배가 고파 쓰러지고 말았어요. 며칠 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했기 때문에 문공의 몸은 보기에도 딱할 정도로 말라 있었어요. 또 험한 여행길에 지쳐 문공은 금방이라도 죽을 만큼 약해져 있었어요.

그 때 개자추가 다리를 조금씩 절며 문공에게 다가왔어요.

“왕자 마마, 어서 이것을 드십시오.”

개자추는 문공에게 잘 구운 고기를 내밀었어요.

“아, 얼마 만에 먹어 보는 고기인가 ----.”

문공은 개자추가 주는 고기를 아주 맛있게 먹었지요 그리고는 다시 기운을 차려 계속 여행을 할 수 있게 되었지요.

그런데 그것은 개자추가 자기의 넓적다리 살을 잘라 구운 고기였어요. 개자추는 문공을 살릴 수 있다면 자기의 살을 베는 것 쯤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했던 거예요.

그 후 세월이 흘러 문공은 진나라의 임금이 되었어요. 문공을 모시던 신하들은 서로 얼싸안고 기뻐했지요. 그런데 문공은 그를 도와 주었던 개자추를 그만 까맣게 잊고 말았어요. 게다가 다른 신하들의 말만 듣고 개자추에게 아무 상도 주지 않았어요.

하지만 개자추는 문공을 원망하지 않았엉요. 개자추는 그 길로 어머니와 함께 면산에 들어가 숨어 버렸어요. 
시간이 한참 흐른 뒤 문공은 자기의 잘못을 깨닫게 되었지요.

“내가 어리석었다. 개자추와 같은 훌륭한 신하를 알아보지 못하다니 ----. 여봐라, 어서 가서 개자추를 불러 오너라.”

그러나 개자추는 산에서 내려오지 않았어요. 문공은 여러 번 신하를 보냈지만 모두 헛수고였어요. 문공은 깊은 생각에 잠겼어요.

‘아-------- 개자추를 불러 낼 수 있는 좋은 방법이 없을까?’

그 때 한 신하가 나서며 말했어요.

“전하, 한 가지 좋은 방법이 있사옵니다.”

“그래, 좋은 방법이 무엇인가?”

“산에다 불을 지르는 것입니다.”

“뭐라고? 불을 지른다고?”

“예, 전하. 산에 불이 나면 아무리 개자추가 숨어 있고 싶어도 별수없이 산을 내려오게 될 것입니다.”

“허, 거참 좋은 방법이로다. 자, 개자추가 나오도록 당장 면산에 불을 지르도록 하라!”

문공이 명령을 내리자 면산에는 곧 불이 붙게 되었어요. 불은 활활 잘도 타올랐어요. 산 속 깊은 곳까지 불길은 거세게 번져 갔어요. 

하지만 개자추는 끝내 산에서 내려오지 않았어요. 결국 개자추는 어머니와 함께 버드나무 밑에서 불에 타 죽고 말았지요.

이 말을 전해 들은 문공을 너무 마음이 아팠어요.

“아---------- 가엾은 개자추! 앞으로 해마다 오늘이면 하루 동안 불을 지피지 말도록 하여라. 개자추의 충성심을 위로하기 위함이니라.”

그 날 이후로 한식날에는 불에 타 죽은 개자추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불을 지피지 않고 찬밥을 먹는다고 해요.

한식은 한자로 차거울 한(寒), 음식 식(食)자를 쓰지요. 즉 ‘찬밥을 먹는 날’이란 뜻이에요.

그런데 이 이야기말고도 한식이 내려오게 된 또 다른 이야기가 있어요.

옛날에는 불씨가 무척 귀했어요. 그래서 아낙네들은 불씨를 꺼뜨리지 않기 위해 늘 마음을 졸여야 했어요. 
그러던 중 해마다 봄 기운이 돌기 시작하는 한식날 대궐에서는 새로 불을 일구어서 백성들에게 나누어 주었다고 해요. 그러다 보니 백성들은 새 불씨를 받기 하루 전에는 일 년 동안 썼던 묵은 불을 꺼야 했지요. 그래서 한식날엔 새 밥을 지어 먹지 못하고 전날 지어 두었던 찬밥을 먹게 되었다는 거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