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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미 / 유래 

설이란 새해의 첫 머리란 뜻이고 설날은 그 중에서도 첫 날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설이란 기쁜 날이라기 보다는 한 해가 시작되는 뜻에서 모든 일을 조심스럽게 첫 발을 내딛는 매우 뜻 깊은 명절로 현재까지 이어져 왔다. 그래서 설날을 《삼가는 날》이라고 해서 이 날에는 바깥 출입을 삼가고 지내면서 일 년동안 아무 탈 없이 지낼 수 있게 해 주기를 신에게 빌어왔다.

섣달 그믐날 밤, 즉 음력 12월 30일 자정이 되면 나라 안에 있는 모든 절의 종을 울렸다. 이것을 제야의 종이라고 하는데, 민가에서는 집 안팎을 깨끗이 청소하여 잡귀•잡신을 쫒아내는 각가지 행사를 하고 절에서는 나라가 태평하고 백성들이 편안하길 바라는 종을 울렸다.

설이 언제부터 우리의 명절이었는지 자세하게 알 수는 없으나, 신라시대 때 새해 아침에 서로 축하를 하며 왕이 군신을 모아 잔치를 열고 해와 달신에게 절을 한다는 기록으로 보아 이 때부터 이미 설이 명절로 자리잡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고려사』에도 구대속절(九大俗節)의 하나로 기록되었고, 조선시대에는 4대 명절의 하나로서 설은 유구한 역사를 지니고 있었다.

설날부터 3일까지 승정원 및 내외 부처들이 휴무를 하며, 시전은 문을 닫고 감옥도 비웠다. 특히 조선후기의 왕들은 새해를 맞아 각도 장관들에게 농사를 장려하는 권농윤음을 내려 백성의 생업을 보살피도록 당부하고, 동시에 죄수들을 풀어주도록 명하곤 하였다. 사면조치는 새 왕이 즉위할 때나 각종 경축일에도 없지는 않았으나, 일년을 시작하면서 내리는 이 사면령은 묵은 해를 털어 버리고 새 출발할 수 있도록 배려한 농업사회의 지혜였다.

그러나 이러한 유구한 전통의 설은 일제강점기부터 기구한 운명을 걸어왔다.

우리나라는 1895년(고종 32년)부터 태양력을 사용해 왔으나, 설은 양력설•음력설 등으로 끈질기게 논란을 거듭하여 왔다. 양력설은 일제의 강요에 의한 것이므로 다분히 민족적인 저항감이 깔려 있었으나, 광복 후에도 국가제도로 유도하는 경향을 띠어왔다. 그 때문에 현재에도 정초부터 2일간을 국가 공휴일로 지정해 놓고 있다.

반면에 우리 전통의 음력설은 이중과세라는 해석에 묶여 한때는 공휴일에서도 빠져 있었다. 그럼에도 전통 설은 해마다 추석과 더불어 민족의 대이동을 초래하는 명절로 자리잡아 왔다. 이러한 민의가 반영되어 1985년에야 ‘민속의 날’이라는 명칭으로 1일간 쉬게 되다가 지금은 양력설보다 하루가 많은 3일간의 공휴일로 됨에 따라 본래의 모습을 되찾아가고 있다.

설날은 마음과 몸을 깨끗이 하고 맞았다. 이 날에는 조상의 덕을 추모하고 자기의 태어난 근본을 잊지 않고 은혜를 갚는 뜻으로 차례를 지냈으며, 차례 뒤에는 세배와 성묘를 하였다. 또한 한 해의 운수가 그 해의 첫날인 설과 관계가 있는 것으로 믿어, 한 해의 운수를 점치고 태평과 풍년을 기원하기도 하였다. 따라서 정초에 행하는 세시풍속은 한 해의 안녕과 화목을 기원하고, 화를 물리치고 복을 기원하는 염원을 담고 있다.


까치설날과 제야의 종소리

‘까치까치 설날은 어저께고요, 우리우리 설날은 오늘이래요’라는 동요에 나오는 까치설이 바로 섣달 그믐날이다. 신라 소지왕때 궁주와 중이 공모하여 왕을 해치려 하였는데, 까치와 쥐, 돼지의 인도로 이를 모면하였다는 전설이 있다. 쥐와 돼지는 십이지에 들어가는 동물이라 설날 이후 ‘쥐날’ ‘돼지날’이라 기념하지만 불행히 까치를 기념할 날이 없어 설날 바로 전날을 까치의 날이라 하여 ‘까치설’이라 이름지어 노래했다.

이날 밤 자정에는 여러 곳의 절에서 뭇 중생의 백팔번뇌를 없앤다는 뜻으로 종을 108번 울렸다. 오늘날에는 양력 12월 31일 자정에 서울의 보신각과 각 지방에서 33번의 제야의 종을 울리고 있다. 108이란 숫자처럼 ‘33’이란 숫자도 불교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이 세상에는 백의관음, 수월관음, 약왕관음 등 자비스러운 33관세음보살이 있는데, 이들이 도처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화신한다 하여 ‘33’은 그 모든 곳에 있는 모든 사람을 뜻한다.

이러한 전통은 비단 불교뿐만 아니다. 성균관의 서생들이 대궐 앞에 가 상소할 때도 33명을 뽑아 보냄으로써 전체 의사임을 표방하였다. 만인산이라 하여 육조거리에서 지방 수령들의 송덕시위를 할 때도 33명을 뽑아 올림으로써 그 지방 백성의 총체적 의사임을 과시하였다. 단체나 회사를 발기할 때도 그 발기인 수를 33명으로 하는 것도 관례가 되어 있었다. 3.1운동 때 민족대표를 굳이 33명으로 한 것도 바로 독립의지가 전 국민의 의사임을 표방하는 수단이었던 것이다.

결론적으로 제야에 33번의 종을 치는 것은 ‘온 사방 만 백성’의 시름과 번뇌을 씻고, 새로운 한 해를 축원하는 의미이다.


세시풍속

정월 초하룻날은 아침 일찍 설빔으로 갈아입고 차례를 지낸다. 차례상은 가정에 따라 약간의 차이는 있으나, 홍동백서, 어동육서, 좌포우혜 등의 원칙에 따라 상위에 음식을 차린다.

차례가 끝나면 웃어른들께 새해 인사인 세배를 드린다. 세배는 조부모, 부모님께 먼저 절을 드리고, 아랫사람이 형님, 누님 등 윗사람에게 절을 한다. 친척과 이웃어른들께도 찾아가 세배를 한다. 요즘에는 직장 상사를 찾아 세배하는 것도 하나의 풍속으로 되었다. 세배하러 온 이에게는 술과 음식을 내놓은 것이 관례이며, 아이들에게는 약간의 돈이나 떡, 과일 등을 준다. 가족의 세배에서는 대개 웃어른들이 어린 아이들에게 분수에 맞게 돈을 주는데, 이것을 세뱃돈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 세뱃돈은 반드시 아이들에게만 주는 것은 아니다. 시부모가 새로 시집 온 귀여운 며느리에게도 주고, 아직 결혼하지 않은 자녀에게도 준다. 세뱃돈을 줄 때는 덕담도 한다.

세배를 할 때는 ‘새해에는 더욱 건강하십시오’ 등의 새해인사를 곁들여야 하며, 절을 받는 사람도 ‘새해에는 소원성취하기 바라네’ 등의 덕담(德談)을 건네는 게 상식이다. 우리가 가장 즐기는 새해 덕담이 ‘복 많이 받으십시오’이다. 그러나 복이란 말이 추상적이어서 때문인지 보다 구체적인 덕담이 뒤따라 붙는다. 득남•건강•치부•승진 등 인사를 나누는 사람의 처지에 따라 덕담은 달라지게 된다.

또한 정초에는 조상의 묘를 찾아 집안의 안녕을 빌며 성묘하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행사였으나, 점차 사라지고 있다.

세배가 끝나면 차례를 지낸 음식으로 아침식사를 하는데, 대표적인 음식은 흰떡국이다. 세주는 데워서 마시지 않고 찬대로 그냥 미시는데, 여기에는 봄을 맞이한다는 뜻이 포함되어 있다.

정초에는 본래 사흘 간 일을 하지 않고 쉬는데, 이는 조선조부터 내려온 것으로 그 동안 가족과 이웃 간의 우의를 다지고 길흉을 점치거나 여러 가지 놀이를 하면 지낸다.

그 중 복을 기원하는 풍속으로는 문배•복조리•야광귀쫒기•삼재면하기 등이 있는데, 집집마다 방과 부엌에 매달아 놓은 복조리가 대표적인 예다. 정초에 복조리 장수가 오면 마을의 길조이고, 엿장수가 들어오면 흉조로 생각했다.

이 때면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즐기는 게윷놀이이다. 윷은 남자용과 부녀자용으로 구분된다. 여자용은 박달나무에 채색을 해서 예쁘게 만들었으며 곱게 만들어 촉감이 좋다. 남자용은 밤나무를 베어나 크게 만들었다. 

이 밖의 놀이로는 남자들은 연날리기•제기차기, 여자들은 널뛰기 등을 즐겼다. 대보름까지 민속놀이를 즐기면서 한 해의 평안함과 농경의 순조로움을 기원하며 보냈다.

설날에는 설빔을 입는데, 이는 설날 아침에 입는 새 옷을 말한다. 가정에서는 동짓달이나 섣달이 되면 주부들이 가족의 옷감을 미리 장만해 정성껏 설빔을 만든다.

어른들에게는 두루마기를 비롯하여 바지•저고리•조끼•마고자•버선•대님을, 아이들에게는 울긋불긋한 색동옷을 마련하고, 세뱃돈을 넣을 꽃주머니까지 만들어 놓는다. 어린이들이 입는 고운 옷을 때대옷 또는 ‘옷’자를 빼고 흔히 때때라고 한다.

설날 아침이 되면 온 가족이 밝고 기쁜 마음으로 목욕 재계한 뒤 설빔을 입고 조상께 차례를 지낸다. 우리나라에서 차례라는 용어는 조선 초부터 사용되기 시작했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차에 관한 기록이 1,800곳이나 등장하는데, 차례는 차로 의식을 치른다는 뜻이다.

실제로 우리 조상들은 기제사나 명절 제사를 막론하고 차례 때 차로 의식을 치렀다. 술도 제수로 쓰였지만 술보다는 차를 중하게 여겼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차대신 술을 올리게 되었다. 율곡 이이가 지은 『격몽요결』에 보면 차를 올려야 하지만 형편상 안 써도 된다고 하였다. 당시에는 국내에서 생산되는 차가 모자라 수입에 의존해야 하던 때에서 사 사용을 절제해야 했던 것이다.

◈ 절식

설에는 차례상과 세배 손님 대접을 위해 여러 가지 음식을 준비하는 데 이를 통틀어 세찬(歲饌)이라 한다. 세찬에는 떡국, 세주(歲酒), 족편, 각종 전유어, 강정과 같은 과정류, 식혜, 수정과, 잡채, 햇김치 등 여러 가지 음식들이 있다.

설음식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것은 ‘떡국’이다. 설날에는 흰 떡국을 끓여 먹는 것은 고대의 태양숭배 신앙에서 유래한 것이라 한다. 설날은 새해의 첫날이므로 밝음의 표시로 흰색의 떡을 한 것이고, 떡국의 떡을 둘글게 하는 것은 태양의 둥근 것을 본 딴 것이라는 말도 있다.

새해 첫날 아침에 먹는 떡국에는 병 없이 오래 살라는 의미도 담겨 있다고 한다. 가래떡처럼 길고 질기게 살라는 소망을 담은 것이다. 음식 하나에도 이렇게 깊은 의미가 숨어 있다.

떡국:  멥쌀을 불려 가루를 내고 쪄서 끈기 나게 친 후 가래떡을 빚어 얇게 썰어 끓인 떡국은 설날의 중심음식이다.  떡국을 끓일 때는 미리 장국을 마련하는데 장국의 재료로 예전에는 꿩고기를 많이 썼으나 요즘에는 쇠고기나 닭고기를 주로 사용한다.
세주(歲酒):  설날 차례에 올리는 술로서 차례가 끝나고 나면 온 가족이 둘러앉아 마신다.
수정과:  얇게 저며서 은근한 불에 서서히 끓인 생강물과 통계피물을 합하여 설탕을 넣고 끓여 식힌다. 다려놓은 국물에 곶감을 담궈 불어서 부드러워지면 화채그릇에 담고 잣을 서너 알씩 띄워서 대접한다.


까치 까치 설날은 어저께고요,
우리 우리 설날은 오늘이래요.
곱고 고운 댕기도 내가 드리고,
새로 사 온 신발도 내가 신어요.

새해 첫 번째 날인 음력 1월 1일은 설날이에요.
설날 아침에는 일찍 일어나서 설빔을 입어요.
설빔은 설날 아침에 입는 새 옷이에요.
요즘엔 예쁜 옷을 보거나 마음에 드는 옷이 있으면 사면 되지요. 그렇지만 옛날에는 어머니들이 직접 만들어야 했지요.
어머니들은 가을부터 옷감을 준비해 두었다가 설날 전날 밤까지 식구들의 옷을 정성껏 만들었어요. 그리고 설날 아침이 되면 다 만들어진 새 옷을 내어주었지요. 예쁜 색동 저고리를 만들려면 옷감 조각을 많이 모아서 알록달록 색갈도 곱게 만들었지요. 엄마의 정성이 가득 들어 있는 설빔이지요.
어른들은 고운 설빔으로 차려입은 아이들에게 말해요.
“ 자, 옷을 다 차려 입었으면 어서 차례를 지내자.”
그런데 차례는 무엇일까요?
우리의 어른들은 돌아가신 조상들을 섬기는 것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해 왔어요. 그래서 돌아가신 조상들에게 상을 차려 놓고 절을 하여 인사를 드리는 것이 바로 ‘차례’예요.

차례가 끝난 다음에는 나이가 많은 어른들에게부터 새해 인사를 드려요.
이 때 하는 인사는 그냥 고개를 숙이며 드리는 것이 아니에요. 큰 절로 새해 첫인사를 드려야해요. 그 절이 바로 ‘세배’이지요.
“할아버지,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오냐. 올해도 건강하고 튼튼하거라.”
“선생님, 새해엔 더욱 건강하십시오.”
“자네도 올해엔 좋은 짝을 만나 결혼하게나.”
세배를 할 때에는 이렇게 좋은 말을 주고받지요? 이런 말을 ‘덕담’이라고 해요. 새해 첫날을 맞아서 서로의 행복을 빌고 축복해 주는 거예요.
참 아름다운 풍속이지요?
세배가 끝나면 차례를 지낸 떡국으로 아침을 먹어요. 지금은 아무때나 떡국을 먹을 수 있지만 옛날에는 설날에만 떡국을 먹었대요. 그래서 아이들에게 나이를 물을 때에는
“너 떡국 몇 그릇 먹었니?”
하고 묻기도 했어요.
그런데 이 말을 잘못 알아듣고
“두 그릇 먹었어요.”
하고 대답하면 그것은
“두 살이에요.”
하는 것이지요. 그러니 이럴 때에는
“네, 여덟 살입니다.”
하고 공손하게 대답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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