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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사는 조상에 대한 후손의 공경심과 효도심의 표출의식으로 흩어져 살던 가족들이 모여 조상의 덕을 기리고 혈족간의 유대를 돈독히 하는 의식이다.

제제사는 '효(孝)'에 기초한 것이다. 한국을 위시한 유교 문화권에서 충과 효는 가장 기기기본적 윤리였는데, 이 두가지가 서로 대립할 경우에는 효를 우선하였다. 그러기에

국가나 임금에게 아무리 중요한 벼슬을 할 때에도 부모가 돌아가시면 만사를 제치고 집으로 돌아와 3년상을 치렀다.

효의 방법에 있어서는 부모에게 경제적으로 불편이 없도록 해 드리고 어버이의 뜻을 잘 받드는 것을 으뜸으로 쳤다. 이러한 효도의 방법은 그대로 제사로 이어지는데, 제사는 마음가짐을 경건히 해서 조상을 추모하는 의식이었다. 따라서 제삿상에 제아무리 진수성찬을 차려 놓아도 공경하는 마음이 없으면 형식에 그치고 마는 것이어서 제사의 참뜻을 잃는 것으로 알았다.

우리 나라의 제사는 물론 고대부터 있어 왔다. 그러나 조상에 대한 제사가 제자리를 잡기는 고려시대이고, 제사가 예법에 따라 틀을 잡은 것은 조선 중기 이후이다. 그 이전에는 제사가 상당히 다양하게 펼쳐졌다. 적어도 조선시대 초기만 하더라도 제사는 자손들이 돌아가며 지냈다. 곧 장남이나 장녀부터 시작해 막내까지 돌아가며 지냈던 것이다. 제사에 드는 경비도 분담하고, 남녀를 엄격히 구분하지 않되 딸들이나 지차들도 조상을 받드는 정신을 심으려는 뜻이 있었다. 그러나 조선 중기 이후부터 제사를 종손이 맏게 되었다. 한 가족에게 전해지는 조상의 유산은 두 가지가 그 기초가 된다. 하나는 가족의 정통을 이어주는 제사가 있었고, 다른 하나는 물질로 전해주는 재산상속이 있었다. 종손은 제사를 맡아 종족을 거느리거나 이끌어가면서 종통(宗統)의 자리를 고수한다. 따라서 이를 위해 자산이 다른 자손보다 많이 확보 돼야 했다. 그러기에 장자상속을 원칙으로 하고 지차들에게는 장자보다 훨씬 적은 비율의 재산을 물려 준 것이다. 그리하여 아무리 지차들이 항렬이 높거나 나이가 많더라도 제주(祭主)는 어디까지나 어린 종손이 되어야 했다. 제사에 늘 참여하지 않는 자손은 집안으로부터 백안시 당하거나 불효한 '놈'으로 매도 당하기 십상 이었다.

제사는 그 형식이 지나친 경우가 많았다. 그리하여 성호 이익 같은 실학자는 이런 형식을 경계하였다. 곧 그는 가난한 사람은 밥과 물만 떠놓고 공경하는 마음으로 제사를 지내도 좋다고 하였고, 비록 넉넉한 살림이라도 지나치게 제수를 차리는 것을 경계하여, 철에 따라 나는 과일이나 곡식을 조상에 올리는 천신(薦新)만으로 대신하여도 된다고 하였다.

종교와의 갈등도 만만치 않았다. 18세기 천주교가 한국에 들어오면서 천주교도 들은 제사를 거부했다. 그래서 신주를 불사르고 제사를 없애버렸다. 이 때문에 조정에서는 조상을 능멸하는 무리로 규정하여 가혹한 탄압을 하였다. 천주교에서는 우상숭배를 금하므로 그 교리에 따른 것인데, 전통적인 가치관으로는 우상이 아닌 조상숭배라는 인간의 기본도리로 본 것이어서 서로 상반된 가치관이 충돌을 빚은 결과였다. 그래서 월남 이상재선생은 '예수의 가르침을 받아들이는 데 있어서 반드시 서양 사람이 하듯이 그대로 본받는 것이 아니라 예수의 마음을 조선 형식으로 동화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는 어떤 종교도 자기 나라의 정신과 혼은 살려야 한다는 것으로 신주를 위해 자신의 생활과 경제활동을 중단하고 미신에 빠지는 일을 경고하고, 부모를 섬기는 공경심을 종교가 부정하는 것은 아니라는 제사 옹호론으로 풀이된다.

한편, 현대를 살아가는 오늘날에는 제사를 편리에 따라 지내는 풍습도 등장했다. 위패가 없을 대는 지방을 써야 하지만 아예 지방을 쓰지 않는 경우도 있고, 시간이나 잠자리 문제 등으로 제사 시간을 초저녁에 지내는 경우도 있고, 죽은 사람이 평소에 술을 좋아했으면 큰 술잔에 듬뿍 따르는 수도 있으며, 축문도 쓸 줄 몰라 생략하는 경우도 있다. 심지어는 모든 제사를 한날 한시에 지내는가 하면, 장소도 콘도나 호텔 같은 장소를 이용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조상을 받드는 제사에는 네 가지가 있다. 조상의 사당을 집안에 모시고 지내는 사당제가 있고, 조상에게 철따라 지내는 사시제가 있고, 묘에 지내는 묘제가 있고, 죽은 날에 지내는 기제가 있다.

사당제는 벼슬아치나 선비들이 울안에 4대의 조상위패를 모시고 지내는 것이다.

사시제는 줄여서 시제라고 하는데 설날•한식•추석•동지의 명절에 맞추어 계절에 따라 네 번 지낸다. 시제는 계절에 따라 새로 나는 음식을 조상에게 올리는 뜻을 담고 있는데, 그 의식이 간단하여 차례라고 한다.

묘제는 조상의 묘에 가서 날을 잡아 지낸 탓으로 시제라고 하기도 하는데, 주로 음력 10월에 지냈다. 묘제는 시조로부터 어버이까지 지내므로 그 해당하는 자손이 모두 참석해 야 한다. 그러므로 시조의 묘제에는 그 자손의 수가 아주 많은 것이다.

기제는 5대조까지만 지내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이것은 원래 신분에 따라 정해진 것이다.  그러나 일반 서민은 3대 또는 2대를 지내게 되어 있었다. 이 네 가지 중에 오늘날 가장 많이 남아 있는 것이 차례와 기제이다.

원칙으로 직계자손은 의무적으로 제사에 참여해야 하지만, 증조부의 제사를 지낼 적에 6촌까지 직계자손이 되고, 아버지의 제사를 지낼 적에 아버지의 형제들 곧 숙부가 참석하는 것은 불문률 같은 것이다.

기제는 종손이 주관하므로 종손과 종부는 3일 전에 목욕을 깨끗이 하고 제수 (祭需)를 준비한다. 또 제사에 참석할 자손들은 적어도 한 가지 이상의 제수를 맡아 가져온다. 이것은 공동부담의 성격을 띠고 또 조상에 대한 경의를 나타내는 것이다 제삿날이 되면 자손들은 일찍 와서 발을 치거나 제상을 청소하거나 강정 따위를 괸다.

제사 시간은 죽은 날 첫 자정이 시작되어 닭이 마지막 울 때까지 모두 끝나야 한다. 그 날 첫 시간에 시작하는 것은 하루를 조상을 추모하는 날로 삼자는 뜻이요, 닭이 마지막 울어 끝나는 것은 신령은 날이 새면 인간세상을 떠나 자기사는 곳으로 간다는 생각에서 나온 것이다.

제수는 홍동백서(紅東白西)의 순서대로 차려진다. 곧 붉은 것은 동쪽에, 흰 것은 서쪽에 차리는 것이다. 이 제수 차리는 절차는 아주 복잡하기도 하고 정연하기도 하였다. 또 가풍에 따라 조금씩 다르기도 하다.

제사 때 축문을 읽는 뜻은 조상에 대한 추모와 경의를 나타낸다. 여기여 곁들여 신령이 오시라고 대문을 열어 놓기도 하고, 축을 올리고 제사 후 조상이 마음 편히 음식을 드시라고 잠시 제사 자리를 떠나 있기도 하였다. 또 제수에는 귀신을 쫒는다는 전설이 있어 복숭아는 올리지 않기도 하고, 인간의 혼령과 밀접하다는 속설이 있는 개고기는 쓰지 않는다

진설(차례/제사 상 꾸미기)

 진설이란 제사에 사용하는 제수를 제상에 배열하는 것을 말한다. 제수 진설하는 방식은 지방마다 혹은 가문의 전통에 따라 조금씩 다르다. 동서 구분은 제주가 제상을 바라보아 오른쪽을 동, 왼쪽을 서라고 한다.

홍동백서: 붉은 과일은 동쪽에, 흰 과일은 서쪽에 둔다.

조율이시: 왼쪽부터 배추, 밤, 배, 감의 순서로 한다.

생동숙서: 김치는 동쪽에, 나물은 서쪽에 둔다.

좌포우혜: 포는 왼쪽에, 젓갈은 오른쪽에 둔다.

어동육서: 생선은 동쪽에, 육류는 서쪽에 둔다.

두동육서: 생선의 머리는 동쪽에, 꼬리는 서쪽으로 둔다.

건좌습우: 마른 것은 왼쪽에, 젖은 것은 오른쪽에 둔다.

반자갱우: 메(밥)은 왼쪽에, 국은 오른쪽에 둔다.

남좌여우: 남자는 왼쪽에, 여자는 오른쪽에 선다.

맨 앞줄에는 과일, 둘째 줄에는 포와 나물, 셋째 줄에는 탕, 넷째 줄에는 적과 전, 다섯재 줄에는 떡국이나 밥을 차례대로 놓는다.

차례예절- 절은 어떻게 <하나

차례를 지낼 때 남자는 왼손을 위로 오게 잡고 절을 한다.

  1. 또한 돌아가신 분의 제사나 차례를 지낼 때는 절은 두 번 한다.
  2. 왼손을 위로 오게 겹친 손(차수:叉手)을 눈높이까지 가볍게 들어 올린다. 이를 읍(揖)이라고 한다.
  3. 왼쪽 무릎을 먼저 꿇고, 오른쪽 무릎을 왼쪽 무릎과 가지런히 꿇는다. 무릎꿇고 앉은 상태를 궤(足+危)라고 한다.
  4. 왼발이 아래가 되게 발등을 포개며 뒤꿈치를 벌리고 엉덩이를 내려 깊이 앉는다.
  5. 오른쪽 무릎에 힘을 주며 일어나서 왼발을 오른발과 가지런히 모으며 다시 차수 자세를 취한다. 이를 평신(平身)이라 한다.

여자는 차례 지낼 때 오른 손을 위로 오게 잡는다. 돌아가신 분의 제사나 차례에는 남녀 할 것 없이 절을 두 번 한다.

  1. 공수한 손을 어깨 높이로 수평이 되게 올렸다가 고개를 숙여 이마를 공수한 손등에 붙인다(엄지 안 쪽으로 바닥을 볼 수 있게 한다)
  2. 오른발이 아래가 되게 발등을 포개며 뒤꿈치를 벌리고 엉덩이를 내려 깊이 앉는다.(다리를 꿇지 않고 옆으로 벌리며 앉는다)
  3. 윗몸을 반쯤(약 45도) 앞으로 굽힌다 (이때 손등이 이마에서 떨어지거나 머리를 너무 많이 숙이면 안 된다)
  4. 잠시 머물러 있다가 윗몸을 일으킨다. 수평으로 올렸던 공수한 손을 제자리로 내리며 고개를 반듯하게 세운다.

그리고 제사가 끝나면 음복(飮福)을 한다.

차례는 이와 사뭇 다르다. 철에 따른 명절에 지내므로 제수도 설날에는 떡국, 한식에는 그 해의 첫 과일, 추석에는 햅쌀밥, 동지에는 팥죽을 올린다. 단오에도 차례를 지냈으나 동지 차례와 함께 현대에 들어서는 거의 없어졌다.

차례는 친족들이 모여 종손 집부터 시작하여 작은집으로 차례로 이동하며 지낸다. 그리하여 지차 도는 지손(支孫)들 집을 친족들이 차례로 방문하는 것이다.

친척간 촌수 알아보기

직계가족의 촌수는 자기와 대상까지의 대수(代數)가 촌수이다. 즉 아버지와 아들은 1대니까 1촌이고, 할아버지와 손자는 2대니까 2촌이다. 방계가족과의 촌수는 자기와 대상이 어떤 조상에게서 갈렸는지 먼저 알고 자기와 그 조상의 대수에서 그 조상과 대상의 대수를 합해서 촌수로 한다. 즉 형제, 자매는 아버지에게서 갈렸는데 자기와 아버지는 1대이고 아버지와 형제 자매는 1대니까 합해서 2촌이고, 백숙부와 자기는 할아버지에게서 갈렸는데 할아버지와 백숙부는 1대이고 할아버지와 자기는 2대니까 합해서 3촌이 된다.

묘제 때에는 조상의 무덤에 벌초를 하기도 하고 무너진 곳을 손질하기도 하며, 먼 친족들은 때로는 몇 년 만에 얼굴을 맞대기도 한다. 그리고 제주를 서로 나누며 종중의 일을 의논하기도 하고 서로간의 안부를 알아보기도 한다.

제사는 시대의 변화에 따라 조금씩 달라져 왔다. 그러나 근본정신만은 변해서는 안되며 변할 수도 없다. 조상의 은혜에 감사하고 경모하는 것이 예의요, 정신이요, 사람의 도리인 것이다.

제사는 조상에 대한 후손의 공경심과 효도심의 표출의식으로 흩어져 살던 가족 들이 모여 조상의 덕을 기리고 혈족간의 유대를 돈독히 하는 의식이다. 이는 죽은 이와 살아있는 이와의 영적 대화의 장이며 영혼을 정성으로 대접하여 공경의 뜻을 바치는 뜻 깊은 행사이다.

제사와 같은 경건한 의식에 필수적으로 따르는 것이 향이다. 제사 의식의 맨 처음에 향을 사르는 의식을 거행하는 것을 분향이라 한다. 옛 선비들은 심신수양의 한 방법으로 향을 피우기도 하여 들뜬 마음을 가라앉히기도 했다. 우리 조상들은 향을 매우 소중히 여겼다.

절은 최상의 경배의 표시이다. 진정한 의미에서의 절은 어떤 대상에게 행하는 기복의 발원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본성을 찾고자 하는 작업이다.

조선시대 경복궁 동쪽에는 종묘, 서쪽에는 사직단이 설치되어 정기적인 제례가 시행되었다.  대표적 민족 전통문화인 종묘제례가 왕실제사라면 사직대제는 토지와 곡식 신에 대한 국민적 제사를 뜻한다. 1910년 경술국치 이후 조선총독부는 종묘는 그대로 뒀지만, 사직단은 공원과 학교로 바꿔버리고 제례도 없앴다.

종묘제례는 경술국치로 한때 중단되었다가 지난 1971년 전주이씨 주최로 다시 열리면서 그 맥을 이어오고 있다. 중요무형문화제 제56호인 종묘제례는 지난 1995년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종묘제례에는 중요무형문화제 제1호인 종묘제례악이 연주된다.

석전대제는 공자•맹자등 오성위와 송나라의 6현, 우리나라의 최치원•성총•송시열 등 18현에게 제사를 드리며 성현들의 유덕을 추모하는 의식인데, 음력 2월과 8월에 서울의 성균관 대성전과 전국 234개 향교에서 거행한다. 석전대제는 문묘제례악과 그 의식을 보존하기 위하여 1986년에 성균관의 석전대제보존회가 중요무형문화제 제85회로 지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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