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are here: HomeCulture관혼상제 Milestone Celebrations상례 Funeral Ceremonies

상례는 삶을 마감하고, 이승에서 저승으로 떠나는 마지막 통과의례로 산 사람과 죽은 사람의 경건한 이별의식이다. 사람이 살고 죽는 것은 순간이고 찰나이다. 숨이 한 번 끊어지면 그만이다. 사람이 숨을 거두게 되면 가족은 바로 상례를 준비한다. 이 때 초상(初喪)이란 말을 쓰는데, 사람이 죽는 것은 한번뿐이기에 '초(初)'라는 표현을 쓴다.

초상이 나면 상주들은 풀어헤친 머리에 굴건을 쓰고 누런 삼베옷을 걸치고 짚신을 신었다. 이마와 허리에는 동아줄을 매고 지팡이를 짚은 채 곡을 했다. 부모를 잃은 죄인(상주)은 나흘째 되는 날에야 비로소 죽을 먹을 수 있었다. 밤낮으로 조문객을 맞아 절을 하고 곡을 해야 했다.

옛날에는 7일장, 9일장이 보통이고, 달을 넘기는 유월장도 드물지 않았으나, 대개는 3일장을 치른다. 3일이란 기간은 부활, 즉 저승에 갔다가 되돌아오는 기간에서 유래 되었다고 한다.

상례는 사람으로서 영원히 돌아오지 못하는 마지막 길을 떠남을 전송하는 의식이다. 따라서 자녀들은 생전에 효도를 다하지 못한 안타까운 마음으로, 조문객은 고인을 추모하며 영혼 위로 및 명복을 기원한다.

초상이 나면 가족들은 화려한 옷을 벗고 흰색이나 검은색의 검소한 옷으로 갈아입고 애도하며 근신한다. 그리고 장의사를 통해 검은 줄을 친 장막을 벽에 치거나 '상중 (喪中)'이라 쓴 등을 걸어 외부인이 쉽게 찾아 올 수 있도록 하며, 또 대문에 써 붙여 초상을 알린다.

배우자 및 그 자녀•자부 등은 상주가 된다. 상주는 흰옷을 입고 남자는 마포•두건, 여자는 마포 띠를 두르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전통상례의 절차는 대체로 임종 전후의 일과, 염(殮)과 습(襲), 발인(發靷), 장지(葬地) 에서의 의식으로 나눌 수 있는데, 그 절차가 번거롭고 까다롭다. 이러한 상례가 죽은 사람과 살아있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정립하는 것이라면 장례는 단순히 시신을 처리하는 과정만을 뜻한다. 이 과정은 사회의 관습이나 전통에 따라 시신을 땅 위에 버리는 풍장, 땅 속에 묻거나 돌 등으로 덮는 매장, 불에 태우는 화장, 물 속에 버리는 수장 등으로 구분된다.

가족의 죽음을 애도하고 구성원간의 단일성과 조화를 강조하는 상례는 엄숙하고 복잡하다. 유교사상의 뿌리를 내린 조선시대의 상례는 가족뿐만이 아니라 전체 일가가 참석하는 것이었다. 상례후 애도기간은 2년이었고, 여러가지 의식들이 계속 수행되었다. 완전한 장례식을 구성하는 다양한 순서들은 다음과 같다.

1. 임종
임종은 운명이라고도 하는데 환자가 마지막 숨을 거두는 것을 말한다. 이때는 평상시 거쳐하던 방을 깨끗이 치우고 환자의 머리를 동쪽으로 해서 방 북쪽에 조용히 눕힌 다음 요나 이불을 새 것으로 바꾸고 옷도 깨끗한 것으로 갈아 입힌다.

옛날의 예법에는 남자는 여자가 지키고 있는데서 숨이 끊어지지 않게 하고, 이와 반대로 여자는 남자가 지키고 있는데서 숨이 끊어지지 않게 한다고 사상기에 기록되어 있다. 가족들은 집 안팎을 모두 깨끗이 청소한 다음 조용히 운명을 지킨다.

2. 수시
우선 고인의 명복을 빌고 눈을 곱게 감겨주고 시체가 굳기전에 고루 머리와 팔 다리를 주물러서 반듯하게 편 다음, 고인의 몸 전체를 깨끗이 씻기고 햇솜으로 귀와 코를 막은 다음 머리가 방의 윗목으로 가도록 하여 머리를 높고 반듯하게 괸다.

그리고 백지로 얼굴을 덮은 후 희고 깨끗한 홑이불로 머리에서 발끝까지 덮는다. 남자는 왼손을 위로 여자는 오른손을 위로 하여 두 손을 한데 모아 백지로 묶는다. 이는 사지를 뒤틀리지 않고 반듯하게 하기 위함이다. 수시가 끝나면 병풍으로 가리고 그 앞에 고인의 사진을 모시고 양쪽에 촛불을 켜고 향을 사른다.

3. 고복
고복은 곧 초혼이다. 남자의 초상에는 남자가, 여자의 초상에는 여자가 죽은 사람의 상의를 가지고 동쪽 지붕으로 올라가 왼손으로는 옷의 깃을 잡고 오른손으로는 옷의 허리를 잡고서 북쪽을 향해 옷을 휘두르면서 먼저 죽은 사람의 주소와 성명을 왼 다음에 "복!복!복!"하고 세 번을 부른다.

이는 죽은 사람의 혼이 북쪽으로 하늘로 가고 있다고 하여 혼이 다시 돌아오도록 부르려는 것이니 이렇게 해도 살아나지 않아야 비로소 죽은 것으로 인정하고 곡을 하는 것이라 했다. 이때 죽은 사람의 벼슬이 있으면 모관 모공이라고 벼슬 이름을 부르고, 벼슬이 없으면 학생모공이라 한다.

사자밥 : 밥상에 밥 세 그릇, 술 석잔, 백지 한권, 명태 세 마리, 짚신 세 켤레, 동전 몇 닢을 얹어 놓고 촛불을 켜서 뜰 아래나 대문 밖에 차려 놓는다. 임종한 사람을 데리러 온다고 믿어진 저승사자를 대접함으로써 편하게 모셔가 달라는 뜻에서 이 상을 차린다.

4. 발상
사람이 죽은 후 초상을 알리고 상례를 시작하는 의식 절차를 말한다. 수시가 끝나면 가족은 검소한 옷(상복이 아님)으로 갈아입고 근신하며 슬퍼한다. 이때에 근조(謹弔)라고 쓴 등, 기중(忌中)이라고 쓴 종이를 대문에 붙인다.

5. 상제
고인의 배우자와 직계비속(자녀, 손자, 손녀)은 상제가 된다. 우선 상주와 주부를 세우는데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큰 아들이 상주가 되지만 큰 아들이 없는 경우 장손이 상주가 된다. 아버지가 있으면 아버지가 상주가 된다. 또 아버지가 없고 형제만 있을때는 큰 형이 상주가 되고 자손이 없을 때에는 최근친자가 상례를 주관한다.

6. 전
전이란 고인을 생시와 똑같이 섬긴다는 의미에서 제물을 올리는 것을 말한다. 시신의 동쪽위에 집사자가 포와 젓갈을 올려 놓는다. 다음으로 축관이 손을 씻고 잔에 술을 부어 제상 위에 올린다.

7. 호상
상중에는 호상소를 마련한다. 모든 초상 범절에는 주인은 슬퍼서 일을 볼 수가 없기 때문에 호상은 친족이나 친지중 상례에 밝고 경험이 있는 사람이 하는데 상주를 대신해서 장례절차, 진행, 부조, 조객록, 사망신고등의 모든 일을 주관한다.

8. 부고
돌아가신 분의 사망 사실을 알리는 것이다

9. 염습
습은 시체를 닦고 수의를 입힌 뒤 염포로 묶는 절차로서 염습 또는 습렴이라 한다. 먼저 향탕수(香湯水향나무 맑은 물)나 쑥을 삶은 물로 시신을 정결하게 씻기고 나서 수건으로 닦고 머리를 빗질하고 손톱과 발톱을 깎아 주머니에 넣는다. 이것은 대렴을 할 때 관 속에 넣는다. 이것이 끝나면 시신을 침상에 눕히고 수의를 입히는데, 옷은 모두 오른쪽으로 여민다. 다음으로 습전이라 하여 제물을 올리고 주인이하 모두가 자리에서 곡한다. 이어 시신의 입속에 구슬에 쌀을 물려 주는데 이를 반함이라 한다. 염습의 절차가 끝나면 사자는 이불로 시신을 덮는다. 이를 졸습이라 한다.

이때 화톳불을 피우고 영좌를 꾸민다. 교의에는 혼백을 만들어 얹고 명정도 만들어 세워 놓는다. 이 의식이 끝나면 친족 친지들이 들어가서 곡한다.

10. 소렴
소렴은 시신을 옷과 이불로 싸는 것을 말한다. 죽은 다음날 아침 날이 밝으면 집사자는 소렴에 쓸 옷과 이불을 준비해 놓는다. 머리를 묶을 삼끈과 베끈을 준비하고 소렴상을 마련하고 시신을 묶을 베와 이불과 옷도 준비한다. 이것이 끝나면 제물을 올린 다음에 소렴을 시작한다. 우선 시신을 소렴상에 눕히고 옷을 입히는데 옷은 좋은 것으로 골라서 입히고 이불은 겹으로 한다.

옷을 입힐때는 왼편으로부터 여미되 고름은 매지 않으며, 손은 악수로 싸매고 면목으로 눈을 가리고 족건과 두건을 씌운다. 이불로 고르게 싼 다음 장포 두 끝을 찢어 각각 매고 속포로 묶는다. 이때 속포 한쪽 끝을 세갈래로 찢어서 아래로부터 차례로 묶어 올라간다.

11. 대렴 (입관)
대렴은 소렴이 끝난 뒤 시신을 입관하는 의식으로서 소렴을 한 이튿날, 즉 죽은지 사흘째 되는 날에 한다. 날이 밝으면 집사자는 탁자를 가져다가 방 동쪽에 놓고, 옷 한벌과 이불 둘을 준비한다. 시신을 멜 베는 세로는 한폭을 셋으로 쪼개서 소렴때와 같이 하고 가로는 두 폭을 쓴다. 다음으로 관을 들여다가 방 서쪽에 놓고 입관하는데 제물을 올리는 것도 소렴때와 같이 한다. 이때 자손과 부녀들은 손을 씻는다.

대렴금으로 시신을 싸되 먼저 발을 가린 다음 머리를 가리고 또 왼쪽을 가린 뒤에 오른쪽을 가린다. 장포와 회오순으로 맨 다음 시신을 들어서 관속에 넣고 천금으로 덮은 다음 풀솜이나 고인의 유물중에 넣을 것이 있으면 넣어 양 옆을 채운다.
이때 염주, 십자가 등을 종교에 따라 넣기도 한다. 입관을 마치면 관보를 덮고 그 위에 관상명정을 쓴다. 관보는 흰색, 검정색, 노란색으로 하고 천은 비단이나 인조견등 형편에 따라 덮는다.

12. 영좌
입관을 하고 관보를 덮은 다음 관을 제자리로 옮겨 병풍으로 가린다. 그 앞이나 가까운 대청 정결한 위치에 영좌를 마련하여 고인의 사진을 모시고 촛불을 밝힌다. 영좌의 앞에 향탁을 놓고 향을 사르며 영좌의 오른쪽에 명정을 만들어 세운다.

13. 상복
입관을 하면 상복을 입는데 이때 상복을 입는 절차(성복제)는 지내지 않는데 상복은 주로 삼베로 만든 옷을 입는 경우가 많으며, 한복일 경우 흰색 또는 검정색으로 하고 양복은 검정색으로 하는데 왼쪽 가슴에 상장이나 흰 꽃을 단다. 보통 일반 가정에서 상복을 입는 기간을 장일을 지나 5일째 탈상까지로 한다.

14. 치장
옛날에는 석달만에 장사를 지냈는데, 이에 앞서 장사를 지낼만한 땅을 고른다. 묘자리를 정하면 이어 장사 지낼 날짜를 잡는다. 날짜가 정해지면 영역(산소산역)을 시작하고 토지신에게 사토제를 지낸다.

15. 천구
영구를 상여로 옮기는 의식으로 발인 전날 행한다. 이때 오복의 친척들이 모두 와서 각각 자기 의복을 입고 참례한다. 이때 조전을 올리는데, 축관이 혼백을 받들고 앞서 가서 사당 앞에 뵈면 집사는 제물을 진설한다. 다음에 명정이 따르고 복인들이 영구를 들어 모시면 상주 이하는 모두 곡하면서 그 뒤를 따른다.

조전을 올릴 때 집이 좁아서 영구를 모시고 출입하기 어려우면 혼백으로 영구를 대신해도 된다. 그럴 때에는 제물이 앞서 가고, 그 다음에 명정 혼백의 순으로 간다. 사당 앞에 도착하면 북쪽으로 향해 혼백을 자리 위에 모신다. 이어서 영구를 다시 마루로 옮기는데, 이때 집사가 마루에 포장을 친다. 축관이 혼백을 받들고 영구를 안내하면 주인 이하 모두가 곡 하면서 뒤따른다. 마루에 도착하면 영구를 마루에 깔린 자리 위에 놓고 축관은 영구 앞에 제물 올릴 상을 마련한다.
이것이 끝나면 모두가 제자리에 앉아 곡한다. 해가 지면 조전을 올리고 이튿날 날이 밝으면 영구를 상여로 옮긴다.

16. 발인
영구가 장지를 향해 떠나는 것을 말한다. 이때 견전이라 하여 조전 때와 같이 제물을 올리고 축문을 읽는데 이것을 요즘은 발인제라 한다. 영구가 상가 또는 장례식장을 떠나기 직전에 그 상가 또는 장례식장에서 한다.
발인제는 고인의 신분에 따라 구분되는데 사회장, 단체장, 가족장등이다. 축관이 술을 따라 올리고 무릎을 끓고 축문을 읽고 나면 상주 이하는 모두 곡하고 절한다. 제사가 끝나면 집사가 포를 거두어 상여에 넣는 경우도 있다. 이는 효자의 마음에 잠시라도 차마 신도가 의지할 곳이 없게 되면 어쩔까 염려하여 행하는 일이다.

17. 운구
영구를 운반하여 장지까지 가는 것을 말한다. 영구가 떠나면 방상이 앞에 서서 길을 인도해 간다. 방상이란 초상 때 묘지에서 창을 들고 사방 모퉁이를 지키는 사람을 가리킨다.
운구하는 도중에 상주 이하 모두 곡하면서 따른다. 행렬순서는 사진, 명정, 요여, 요여배행, 영구, 영구시종, 상제, 조객의 순으로 한다. 요여배행은 복인이 아닌 친척이 하는것이 예이며, 영구의 시종은 조카나 사위가 하는 것이 예이다.

한번 가신 우리 부모, 다시 한번 못 모신다
살아 생전 못 모신 죄 어디 가서 사죄하나
북망산천 찾아가서 무덤 안고 통곡하니
너 왔구나 대답없다 누구에게 한탄할꼬

저승길이 멀다더니 대문 앞이 저승일세
북망산천이 멀다더니 내 집앞이 북망일세
이제 가면 언제 오나 오실 날이나 일러주오
황천길은 머나먼 길 돌아올 날 기약없네

잉여꾼아 길 잡아라 상여꾼아 발 맞춰라
이 길 가면 엊네 오나 다시 못 올 가시밭길
아침나절 성튼 몸이 저녁나절 병이 들어----
안 갈란다 안 갈란다 내 집두고 내 왜 가나

올라간다 올라간다 멀고 먼 길 올라간다
북망산천이 멀다해도 건너산이 북망이라
다 왔구나 다 왔구나 여기가 내 집인가
만가 / 설소리

18. 하관
하관할 때 상주들은 곡을 그치고 하관하는 것을 살펴본다. 혹 다른 물건이 광중으로 떨어지거나 영구가 비뚤어지지 않는가를 살핀다. 하관이 끝나면 풀솜으로 관을 깨끗이 닦고 나서 구의와 명정을 정돈해서 관 한복판에 덮는다. 집사자가 현훈을 가져다가 상주에게 주면 상주는 이것을 받아서 축관에게 주고 축관은 이것을 받들고 광중에 들어가 관의동쪽, 즉 죽은 사람의 왼편에 바친다.

이때 상주가 두번 절하고 머리를 조아리고 나면 모든 사람들이 슬피 곡한다. 현훈이란 폐백으로 쓰는 흑색과 홍색의 비단을 말하는데, 이것은 동심결로 묶는다.

19. 성분 (봉분)
흙과 회로 광중을 채우고 흙으로 봉분을 만드는 것을 말한다. 지석을 묻는 경우에는 묘지가 평지에 있으면 광중 남쪽 가까운 곳에 묻고, 가파른 산기슭에 있으면 광중 남쪽 몇 자쯤 되는 곳에 묻는다. 이때 제주라 하여 신주를 쓰는데, 집사자가 미리 영좌 동남쪽에 책상을 준비하면 축관이 미리 준비한 신주를 꺼내 놓고, 글씨 잘 쓰는 사람을 시켜 쓰게 한다.

다 쓰고 나면 축관이 신주를 받들어 영좌에 모시고 혼백을 상자에 놓고 그 뒤에 놓는다. 이어 향을 피우고 주인 이하 모두 두번 절하고 슬피 곡한다. 성분했을 때 제물을 올리고 제사를 지낸다. 이때 축문을 읽고, 신주를 쓴 뒤에는 향만 피우고 축문을 읽는다. 이 절차가 끝나면 혼백을 모시고 집으로 돌아온다.

20. 반곡
장례가 끝난 뒤 상주 이하가 요여를 모시고 귀가하면서 곡하는 것을 말한다. 집대문이 보이면 다시 곡을 한다. 집사는 영좌를 미리 만들어 놓았다가 상주가 집에 도착하면 축관으로 하여금 신주를 모시게 하고 신주 뒤에 혼백함을 모신다.

그러면 상주 이하가 그 앞에 나아가 슬피 곡을 한다. 장지에서 혼백을 다시 집으로 모셔 오는 것을 반혼이라 한다.

21. 초우 (반우제)
초우는 장례를 지낸 날 중으로 지내는 제사이다. 만일 집이 멀어서 당일로 돌아올 수가 없을때는 도중에 자는 집에서라도 지내야 한다. 이때 상주 이하 모두가 목욕을 하지만 머리에 빗질은 하지 않는다. 이 초우부터 정식으로 제사를 지내는 것이기 때문에 제물 이외에 채소와 과일도 쓰며, 제사를 지내는 동안 상제들은 방 밖에서 상장을 짚고 서며, 그밖의 참사자들은 모두 영좌 앞에서 곡한다.

초헌과 아헌 종헌이 끝나고 유식을 하고 나면 상주 이하는 모두 밖으로 나가고, 합문과 계문이 끝나면 다시 모두 들어가서 곡한다. 이러한 절차가 끝나면 축관이 혼백을 묘소 앞에 묻는다. 이로써 장례는 끝나게 된다. 이러한 장례식의 순서들 말고도 한국인들은 조상들을 존경하는 많은 종교의식들을 통해 부유한 전통을 상속했다. 서양 사람들과는 달리, 한국인들은 사후의 세계가 결코 현생의 세계와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고 믿었다.


장례 후 3일째 되는 날 제수를 올리고 분향하며 곡을 한 후 간단한 음식을 준비해서 묘소나 납골당을 찾는데, 이를 삼우제라고 한다. 삼우제는 죽은 사람의 혼이 방황할까 염려되어 지내는 제사로 초우•재우•삼우가 있는데, 장례를 지낸 날에 지내는 초우는 장지가 멀어 그 날로 집에 도착하지 못하면, 주막에서라도 지내야 할 만큼 중시 되었다. 그러나 오늘날은 내부분 사망 후 3일째 되는 날 성묘하고 제사 올리는 것으로 삼우제를 마친다. 또 장례일로부터 49일째 되는 날에 고인이 다니던 절에서 영혼을 극락으로 인도하는 뜻에서 사십구일제를 지내기도 한다. 전통적인 3년 탈상은 지금은 1년 혹은 100일 탈상으로 상기가 많이 줄었는데, 의식은 영정이나 지방을 모시고 제수를 진설한 다음 곡을 하며 재배한다.

오늘날에는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대개 49일 만에 탈상(脫喪)을 하지만 옛날에는 3년 상이 일반적이었다. 이 기간에는 흰옷만 입었으며, 술과 고기는 입에 대지도 않았다. 밖에 나갈 때는 자신을 낳아준 부모를 돌아가시게 했기 때문에 하늘을 볼 수 없는 죄인으로 생각하여 삿갓을 쓰고 베조각으로 얼굴을 가리고 다녔다.

이러한 유교식의 전통적인 상례는 시간이 흐를수록 많이 간소화되고 있다. 집 대신 병원에서 장례를 치르고, 상여 대신 운구차를 쓴다. 최근 묘지 문제가 사회문제로 대두되면서 화장을 하는 경우도 늘어나는 추세에 있고 컴퓨터 가상공간에 빈소를 마련해 놓고 사이버 장례식을 치르는 경우도 생겨나고 있다.

조상들을 숭배하고 자손을 통해 전통을 이어가는게 아이들의 주요한 책임이라고 생각되었다.

오늘날도, 독실한 유교사상가들은 그들의 부모, 조부모, 그리고 조부모의 조부모에게 까지 의식을 제공한다. 때때로 이들 의식들이 씨족과 배타주의를 키운다고 말해지지만 그것은 또한 세대간의 유대관계와 자부심을 양성한다.


Copyright ©2012 I Love Korean; ilovekorean.net;
All Rights Reserved, except where otherwise noted.
Other videos, articles, company names, or marks appearing
on this website may be trademarks of their respective owners.
Privacy Policy updated on Nov. 13, 2012
Go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