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riage is perhaps one of the biggest event in anyone's life, two individuals coming together to form a family.  The married couple would be proclaimed to the public that they were fully matured as individuals and as a couple.  

결혼은 옛날부터 한 인간의 인생에서 가장 큰 일, 즉 인륜지대사(人倫之大事)라고 일컬었다. 남녀가 혼례를 올림으로써 동심 일체의 부부가 되어 백년해로(百年偕老: 부부가 되어 서로 사이 좋고 화목하게 늙음)하기 때문이다. 옛날부터 결혼은 인생의 행•불행을 좌우하고, 성패를 결정하는 중대한 일이기에 배우자 선택에 신중을 기했다.

결혼은 남녀의 영원한 결합으로서 성인•사회인•부부가 되었다는 인정을 받게 되고, 또 법적으로 이를 확정한 근거이기도 하다.

조혼 시는 남자 만 18세, 여자 만 16세가 되면 부모 또는 후견인의 동의를 얻어 약혼 및 결혼을 할 수 있고, 남자 26세, 여자 23세가 되면 호주의 승낙 없이도 결혼이 가능하다. 그러나 결혼 적령기는 법적인 사항보다는 가족 부양능력과 임신 출산 시기를 고려해 결정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요즘의 결혼식은 공휴일 등을 이용, 점심을 전후해서 올리고 있는데, 옛날에는 대부분 저녁에 올렸다. '저녁에 예를 올린다'하여 혼례(婚禮), 또 '저녁에 맺어진다'하여 결혼 (結婚)이란 말이 생겨났다.

결혼식 날 저녁 신랑은 횃불을 들고 신부집에 가서 선조를 모신 사당에 가 혼인신고를 한 후 신부를 데리고 집에 돌아와 잔치를 베풀었다.

고구려 때 결혼도 저녁에 이루어졌다. 사위가 될 신랑이 저녁 무렵 신부집 문밖에 꿇어앉아 큰절을 하며 신부와 결혼하게 해줄 것을 간청한다. 이 때 잔뜩 고자세가 된 장인•장모가 지참금 등을 따진 끝에 미리 마련한 사위 방에 밤 늦게 들이는데, 여기에서 결혼하는 것을 '장인•장모 집에 든다'하여 '장가든다'는 말이 생겨났다.

고려 때까지도 혼례는 화촉을 밝히고 밤중에 올렸다. 고려 공민왕 때는 원나라에서 어린 여자아이들을 대량으로 데려간다는 소문이 나돌자, 딸을 가진 부모들이 겁을 먹고 딸을 서둘러 시집 보내느라 매일 밤 화촉이 휘황찬란했다는 기록도 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전통혼례식에 변화가 온 것은 서구문명이 물밀듯이 밀려오던 19세기 말이었다. 족두리에 연지곤지 찍고 신랑의 얼굴을 감히 쳐다보지도 못한 채 시집을 가야 했던 시절에 오늘날과 같은 웨딩드레스를 입고 신랑과 팔짱을 낀 채 퇴장하는 신식결혼식이 등장했던 것이다. 이러한 신식 결혼식은 장안의 화제가 될 정도로 일종의 '사건'이었다.

복잡다단한 현대에는 결혼 절차도 많이 단순화되었다. 결혼 적령기에 접어든 남녀가 우연히 만나 교제를 시작해 예식장이나 호텔에서 주어진 절차에 따라 식을 올리는 게 대부분이다.

◈ 혼례의 의의와 유래

혼례란 남녀간의 육체적•정신적 결합을 인정하는 의식을 행함으로써 널리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것이다. 오늘날 행해지고 있는 혼례식은 전통 혼례식(구식 결혼)과 현대식 혼례(신식 결혼) 및 종교 의식 등으로 치러지고 있다.

관혼상제 중에서도 결혼은 가장 경사스럽고 중대한 의식이며, 결혼에는 여러 가지 중요한 의의가 있다.

첫째, 혼례를 치름으로써 남녀가 떳떳한 육체 관계를 가질 수 있게 된다. 성인 남녀

에게는 성적 욕망이 있다. 그러한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서 아무나하고 관계를 가질 수는 없는 일이다. 혼례란 결혼한 한 남자와 한 여자의 육체적 관계만이 인정되는 일부일처가 되었음을 의미한다.

둘째, 혼례란 남녀의 육체적 결합과 함께 정신적으로도 결합되어, 서로 공경하며 평생 동안 고락을 같이하는 평생의 반려자가 되는 의식이다.

셋째, 혼례란 가정이라는 공동체의 출발을 의미한다. 자녀를 낳아 양육하며 다함께 사회 생활을 영위해 나가는 것이다.

넷째, 혼례란 사회적 규범인 관습이나 도덕, 법률 등과 같은 제도에 따라야 함을 의미 한다.

그러면 혼례의 기원은 어디에서부터 찾아야 할까?

원시 시대에는 남녀가 공동으로 생활했고, 그 결과 공동의 자손을 가졌다. 힘이 센 남자는 가족의 보호와 양식 공급을 맡고, 여자는 자식을 낳아 기르는 일을 맡았던 것이다. 문헌에 나타난 최초의 혼례 제도는 부여 시대의 제도로서 일부일처제였으나, 실제로는 일부다처제가 성행했다. 옥저에서는 여아가 10세가 되면 남편이 될 소년의 집에 가서 성장한 다음 다시 집으로 돌아와, 일정한 값을 받고 비로소 결혼하여 부부가 되는, 매매 결혼에 의한 민며느리제가 행해졌다.

고구려에서는 혼인이 정해지면 여자 집 뒤에 서옥(壻屋)이라는 조그만 집을 지어 거기서 신랑과 함께 살다가, 낳은 자식이 크면 그 때에에 비로소 신랑이 처자를 데리고 자기 집으로 돌아가는 모계 중심 사회의 풍습이 있었다.

 이와 같이 여러 가지 혼인 풍습이 고려 시대를 거쳐 조선 시대에 들어와, 유교의 윤리관에 의해 관혼상제 사례의 하나로서 혼례가 성립되고 있다. 

 

◈ 전통혼례

중국의 혼례법이 한국 전통 혼례의 근본이 되었던 것이 사실로, 전통 혼례에서는 육례(六禮)라 하여, 그격식과 절차가 매우 엄숙하고 까다로웠다.

육례(六禮)란 납채•문명•납길•납폐•청기•친영의 여섯 가지 예를 말한다.  흔히 '육례를 갖추어 신부를 맞아들인다'는 말을 하는데, 이는 정식 결혼을 하여 아내를 맞아들인다는 뜻이다. 전통 결혼은 『사례편람』이나 『문공가례』에서 볼 수 있듯이 매우 복잡 하였으나, 최근에는 궁합과 사주•선보기•함진아비•혼례식 등으로 간소화하였다.

1.의혼 (議婚)

신랑 신부의 양가에서 서로 사람을 보내어 상대의 인물•학식•인품•형제 등을 조사하고 혼인 당사자의 궁합을 본 후, 두 집안이 합의가 되면 허혼하는 것으로, 이것을 의혼 또는 면약(面約)이라고 한다.

  1. 중매: 한국의 혼례는 중매혼을 주종으로 하여, 결혼 당사자의 의사에는 관계없이 부모의 결혼 결정에 의해서 이루어졌었다. 즉, 중간에 중매인이 있어 양가의 정보와 의견을 조정하였던 것이다. 이 때의 중매인을 매파•중매꾼• 중매쟁이라고 불렀는데, 이들은 혼인을 성사시키기 위하여 말을 보태는 일도 있었다. 이런 일이 적지 않았던 듯, 혼인이라는 일생의 중대사를 결정하는데 있어서, 신중한 부모는 자기를 대신할 사람을 선정하여, 상대방을 염탐시키러 상대방 마을로 몰래 보내기도 하였다.
  2. 궁합: 혼인할 신랑 신부의 사주을 오행에 맞추어 길흉을 점쳐 보는 것을 궁합 이라 하는데, 궁합에는 겉궁합과 속궁합이 있다. 겉궁합은 나이에 맞는 십이지 (十二支)를 기준으로 하여 혼인문에 따라 맞추어 보며 속궁합은 신랑 신부의 생년 월일 시를 맞추어 보는 것이다.
  3. 청혼 편지: 청혼 후 신랑 신부 양가 부모의 승낙이 있어야 혼인이 이루어지므로, 당사자들은 서로 만날 수가 없고, 양가 부모들이 신부와 신랑의 선을 보게 된다. 이러한 절차를 거친 다음. 신부측에서 결혼을 허락할 의사가 있으면 허혼 편지를 신랑집으로 보낸다.

청혼편지쓰는법

   오랫동안 우러러 사모하였사옵는데, 안녕하시 옵는지요. 저는 별고없이 지내고 있사옵니다. 제자식이 이미 장성하여 결혼할나이가 되었사옵니다만, 아직 적합한 혼처가 없어 결혼 시키지 못하고 있었사옵니다. 그런데 듣자니, 댁의 규수가 현숙하다 하옵는바, 삼가청혼하오니, 귀하의 따님과 제자식을 배필로 맺어주심이어떠 하올른지요. 글로써예를 다갖추지 못하와 엎드려 절하며이 글은 올립니다.

허혼편지쓰는법

    따뜻한 봄철에 안녕하시온지요. 저역시 귀하를 사모하던터에 그와 같은 글을 받자오니 참으로 영광이나이다. 저의 부족한 딸을 구애치않으시고 청혼해 주시니, 제 어찌 감히따르지 않겠나이까. 글로써 인사를 다갖추기못하며, 삼가 엎드려이 글을 올리나이다.

2.납채(納采)

혼인이 결정되면, 신랑집에서 신랑의 사주를 써서 신부집에 보내고, 택일이 되면 납채를 신부집으로 보낸다.

  1. 사주(四柱): 양가가 합의하면 신랑의 사주를 써서 신부집에 보내게 된다. 신랑의 생년 월일과 시를 간지(簡紙)에 써서 원쪽에서 오른쪽으로 네 번 접어 흰 봉투에 넣고 봉투를 봉하지 않는다. 봉투의 길이보다 아래 위로 1cm가량 긴 싸리나무 가지를 준비해, 위쪽으로 1cm정도 남겨 두고 갈라, 그 가른 싸리나무 가지 사이에 사주 봉투를 끼우고, 청실•홍실의 둥근 타래실을 꼬아 싸리 가지 끝에다 걸어 매듭지지 않게 묶은 다음, 청실• 홍실로 갈라 나뭇가지의 양쪽 위로 올려서 역시 매듭지지 않도록 묶는다. 그런 후에, 겉은 다홍색 안은 남색인 네모난 비단 겹 보자기를 만들어 네 귀퉁이에 금전지를 달아서, 그 보자기에 사주를 싼 다음, 역시 간지에 근봉(謹封)이라고 써서 그것으로 띠를 두른다. 사주는 천간지지(天干地支)에 의하여 궁합이나 길흉을 보고 또 혼례식 날짜를 정하는 데 참고로 하라고 보내는 거지만, 이런 것들은 혼인을 허락하기 전에 미리 다 보았으므로, 단지 형식에 지나지 않는다.
  2. 사주 쓰는 법: 폭 65cm, 길이 36cm의 흰색 간지를 다섯 칸으로 접어서 쓴다. 또는, 출생 시각의 간지를 가운데 한 칸에 모두 쓰기도 한다.

3.연길(涓吉)

혼례식을 치를 좋은 날을 고르는 것을 연길이라 한다. 사주를 받은 신부집에서는 신부의 생리일을 고려해서 혼인 날짜를 잡아 신랑집으로 보냈는데, 내용을 백지에 써서 사주 보자기에 싼 후 근봉에 끼워서 보낸다.

  1. 연길은 다음과 같이 쓴다:
    연길
    무진년 팔월 팔일 미시(戊辰年 八月八日 未時)
  2. 의제(衣製):
    연길 서장을 받은 신랑측에서는, 신랑의 의복 길이와 품을 신부측에 알리는 의제장을 보낸다. 의제장을 보낼 때는 편지 겉봉에 '의양동봉 (衣樣 同封)'이라 쓴다

4.납폐(納幣)

납폐는 신랑집에서 신부집에 대하여 혼인을 허락해 준 데에 대한 감사의 뜻으로 보내는 예물로, 봉채 또는 함이라고 한다. 옛날에는 납폐의 절차를 2단계로 나누어 실시하는 일이 많았다.

첫단계는 비녀, 가락지 등 각종 패물과 신부의 옷을 만들 옷감, 그리고 신랑의 옷을 만들 옷감을 혼례식의 1개월 전쯤에 보내면, 신부집에서는 그 옷감으로 신랑의 옷을 만들어 보냈다. 만약 신부집이 가난할 때에는 미리 혼례 비용을 보내는 수도 있었다.

두 번째 절차는 혼서(婚書)와 채단을 함께 보내는 의식으로, 혼서는 신랑의 아버지가 직접 써서 사당에 고한 다음, 검정 겹보자기에 싸서 함에 넣어 보낸다. 이 혼서는 죽일 때에 관 속에 함께 가지고 간다는데, 신부의 일부 종사를 의미하는 것이다. 채단은 하나는 청색, 하나는 홍색 치마감을 준비한다. 청색 비단 치마감은 홍색 종이에 싸서 청색 명주 타래실로 동심결(同心結)을 하고, 홍색 비단 치마감은 청색 종이에 싸서 홍색 명주 타래실로 동심결을 한다. 채단을 넣은 함은 다시 붉은 보자기에 싸서 함진아비가 무명으로 만든 끈으로 매어 메고서 신부집에 전한다. 이 두 가지 절차를 이행하는 것이 곧 함 보내는 의식인 셈이다.

  1. 함을 보내는 시기: 옛날에는 대개 2단계로 나누어서 시행했다. 신부의 혼수 감이 든 납폐는 혼례식 약 1개월 전에 전하고, 혼서지와 채단은 결혼식 전날 보내는 것이 관례였다. 요즈음에는 흔히 함에 넣어 보낸 옷감으로 옷을 만들어 신부가 폐백을 드릴 때에 입으므로, 약 이주일쯤 전에 함을 보내는 것이 좋을 듯하다.
  2. 함을 보낼 때: 팥고물을 넣은 찹쌀떡을 만드는데, 밤과 대추를 박아서 정성껏 찐다. 다 쪄지면 떡시루를 마루 위의 소반에 올려놓고, 그 위에 함을 올려놓았 다가 가지고 간다.
  3. 함 지고 가기: 무명 여덟 자로 된 함질끈을 만들어서, 석 자는 땅에 끌리게 하고 나머지로 고리를 만들어 함을 지도록 한다. 함을 지는 사람은 첫아들을 낳고 부부간에 금슬이 좋은 사람을 선택하여 지도록 하며, 옆에 같이 가는 사람은 횃불을 들고 간다. 옛날에는 주로 저녁때에 함을 지고 갔었다.
  4. 함 받을 때: 신부댁에서는 돗자리나 화문석을 대청에 깔아놓고 신랑집에서 만드는 찹쌀떡과 똑같은 것을 만들어 소반 위에 올려 놓고 함이 도착하기를 기다린다. 함이 도착했을 때 떡에서 김이 무럭무럭 나야 좋아고 한다. 함이 도착하면 함을 시루 위에 얹어놓고 신부 아버지와 함을 지고 온 사람이 서로 인사를 한다. 이 때 얼마간의 노자를 봉투에 넣어 함진아비에게 준다. 서로 인사가 끝나면 신부 아버지는 함을 열고 혼서지를 꺼내여 사당에 고한다. 이 때 신부 어머니는 여러 친척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각종 채단을 꺼내어 풀어본다. 채단을 살펴본 다음에는 다시 본디 위치에 놓는다. 《사례편람》에는 혼사 예물을 보내는 데에 있어서 적어도 두 가지는 하되, 열 가지를 넘어서는 안 된다고 하였으며,또 재물을 앞세우지 말고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정성으로 하라고 하였다.

5.친영(親迎)

친영을 달리 혼행(婚行)이라고도 하는데, 신랑이 신부집에 가서 혼례식을 올리고 신부를 맞아오는 의식이다. 육례 중에서 가장 중요한 초례 절차를 위해서 신랑이 신부집에 가려고 준비하는 데에서부터 시작되는 절차다. 이날 신랑은 성복(盛服)을 하고 주혼자(신랑의 아버지)와 사당에 가서 고축한다. 이 때 성복이란 사모에 단력을 입고 혁대에 흑화(黑靴)를 신는 것을 말한다. 고축한 후 주혼자가 신랑에게 오는 신부를 맞이하여 종사를 잇도록 할 것이며 항상 매사에 힘쓰고 서로 공경하며 가문에 욕됨이 없도록 하라는 훈계를 하면, 신랑은 아버님의 말씀을 잊지 않고 명심하겠다는 답을 한다. 다음에 신랑은 어머니에게 가서 인사를 한다. 어머니는 아버지의 훈계에서 보충할 점이 있으면 보충해서 훈계하고, 첫날밤을 원만히 치루도록 성(性)에 대한 지식을 가르쳐 준다. 훈계가 끝난 후에 신랑은 말을 타고 신부집으로 가는데, 옛날에는 청사초롱을 들고 많은 하인들이 뒤를 따르기도 하였다. 또 한 사람이 앞에서 나무로 깎은 오리나 산 기러기를 가지고 가는 풍습이 있었다. 이렇게 하여 신랑이 신부집 대문 앞에 이르면, 신랑은 말에서 내려 기다린다. 신부집에서는 신부의 주혼자가 나와서 신랑을 맞아들여 전안례(奠雁禮)를 거행하게 된다.

한편, 족두리를 쓰고 연지를 찍고 황색 저고리에 홍색 치마를 입고 그 위에 활옷을 입은 신부는 수모의 부축을 받으면서, 동쪽을 향해 서족에 앉아 있는 어머니의 옆 동쪽에 서게 된다. 거기서 술을 조금 맛보고, 다시 수모의 인도로, 서쪽을 향해 동쪽에 앉아 있는 아버지에게로 간다. 아버지는 신부에게, 말과 행동을 삼가고, 언제나 시부모를 공경할 것이며 남편을 하늘처럼 받들라는 훈계를 내린다. 그 다음에 어머니가 언제나 힘써 규문 (閨門)의 예의을 어기지 말라는 훈계를 내리고 신부를 서쪽 뜰로 보내주면, 거기서 여러 가족 들이 신부를 다시 중문까지 보내 준다.

◈ 전안례와 교배례

1. 전안례

옛날에는 산 기러기를 가지고 예를 올렸으나, 너무 번잡하여 나무로 깎은 기러기를 채색하여 사용하거나 종이로 만들어 사용하게 되었다. 혼례에 기러기를 사용하는 이유는, 기러기가 신의를 지키는 새이며, 한 번 교미한 한쌍은 꼭 붙어 살며 다른 상대와는 교미하지 않는 새이기 때문이라 한다.

신부의 부친이 신랑을 문 밖에서 맞아들이면, 신랑은 시자(侍者)에게서 기러기를 받아들고 대청으로 올라간다.

주혼자는 서쪽으로 향하고 신랑은 북쪽으로 향하여 무릎을 꿇고 앉는다. 그리고 기러기를 쟁반 위에 올려놓으면 시자가 받아간다. 이 때 신랑은 머리를 숙이고 엎드렸다가 일어나 두 번 절한다. 이 절차는 다음과 같이 행하게 된다.

  1. 주인영서우문외(主人迎壻于門外): 주인이 문 밖으로 나가 신랑을 맞이한다.
  2. 서읍양이입(壻揖讓以入): 신랑이 읍하고 들어온다.
  3. 시자집안이종(侍者執雁以從): 시자가 나무로 깎아 만든 기러기나 산 기러기를 들고 신랑을 자리로 안내한다.
  4. 서취석(壻就席): 신랑이 자기 자리로 들어선다.
  5. 포안우좌기수(抱雁于左基手): 신랑이 기러기의 머리를 왼쪽으로 가도록 든다.
  6. 북향궤(北向足危): 북쪽을 향하여 무릎을 꿇고 앉는다.
  7. 치안우지(置雁于地): 기러기를 소반 위에 올려놓는다.
  8. 면복흥(人免伏興): 일어난다.
  9. 소퇴재배(小退再拜): 약간 뒤로 물러서서 두 번 절한다.
  10. 주인시자수지(主人侍者受之): 주인의 시자가 기러기를 받아 안으로 들어간다

2. 교배례와 근배례

신랑 신부가 처음으로 대면하여 백년 해로를 서약하는 예식으로, 교배례와 근배례를 합쳐서 초례(醮禮)라고 한다 식장은 대청이나 뜰에 동서로 자리를 마련하는데, 남북으로 병풍을 치고 한가운데에 교배상을 놓는다. 상 위에는 촛불 한쌍을 켜 놓고, 송죽(松竹) 화병 한쌍과 백미 두 그릇과 닭 한쌍을 남북으로 갈라 놓는다. 손 씻을 물 두 대야와 수건을 준비해 놓는다. 술상도 두 상을 준비해 놓는다. 신부는 족두리를 쓰고 낭자를 하고 청색 저고리와 홍색 치마를 입고 그 위에 활옷을 입고 연지를 찍고 다음과 같은 절차에 의해 식을 거행한다.

  1. 서지동석(壻至東席): 신랑이 초례청 동쪽 자리에 들어선다.
  2. 모도부출(姆導婦出): 신부의 시자가 신부를 부추가며, 흰 천을 깔아 놓은 바닥을 밟고 나온다.
  3. 서동부서(壻東婦西): 신랑은 동쪽을 향하고 신부는 서쪽을 향하여, 초례상을 사이에 두고 마주 선다.
  4. 진관진세서관우남부관우북(進관進洗壻관于南婦관于北): 신랑이 손 씻을 물은 남쪽에, 신부가 손 씻을 물은 북쪽에 놓는다.
  5. 서부각세수식건(壻婦各洗手拭巾): 신랑 신부는 각자 손을 씻고 수건으로 닦는다.
  6. 부선재배(婦先再拜): 신부가 먼저 두 번 절한다.
  7. 서답일배(壻答一拜): 신랑이 한 번 답배한다.
  8. 부우재배(婦又再拜): 신부가 다시 두 번 절한다.
  9. 서우답일배(壻又答一拜): 신랑이 다시 한 번 답배한다.
  10. 서읍부각궤좌(壻揖婦各궤座): 신랑이 신부에게 읍하고, 각자 무릎을 꿇고 앉는다.
  11. 시자진찬(侍者進饌): 시자가 술잔을 신랑에게 올린다.
  12. 시자각짐주(侍者各斟酒): 시자가 잔에 술을 따른다.
  13. 서읍부제주거효(壻揖婦祭酒擧肴): 신랑이 읍하고 술을 땅에 조금 붓고 안주를 젓가락으로 집어 상 위에 놓는다.
  14. 우짐주(又斟酒): 또 다시 신랑 신부의 술잔에 시자가 다시 술을 따른다.
  15. 서읍부거음부제무효(壻揖婦擧飮不祭無肴): 신랑은 읍하고 신부가 술을 마시되, 안주는 먹지 않는다. 이 때는 부제이므로 먼저처럼 술을 땅에 붓지 않는다. 이상을 교배례라 한다.
  16. 우취근서부지전(又取근壻婦之前): 표주박을 신랑 신부에게 전한다.
  17. 시자각짐주(侍者各斟酒): 시자가 신랑 신부의 표주박에 술을 따른다.
  18. 거배상호서상부하(擧盃相互壻上婦下): 신랑 신부는 술잔을 서로 바꾸는데, 이 때 신랑 잔은 위로 신부잔은 아래로 해서 바꾼다.
  19. 각거음부제무효(各擧飮不祭無肴): 서로 바꾼 술잔의 술을 마시는데, 땅에 쏟지 않으며 안주도 먹지 않는다.
  20. 예필철상(禮畢撤床): 예를 끝내고 상을 치운다.
  21. 각종기소(各從基所): 신랑 신부가 각기 처소로 동아간다.

이상으로 초례청에서 초례를 끝냄으로써 혼례식은 끝난다. 초례상 차림도 각 지방마다 다르며, 혼례식이 끝난 후에도 관습상 여러 행사가 있는데, 각 지방에 따라 조금씩 다르다.

  1. 상수와 사돈지:  상수(床需)란 신부집에서 혼례식을 거행할 때 사용했던 음식물을 신랑집에 보내는 것을 말한다. 이 때에 보내는 물품명을 기록한 물목을 함께 보내는데, 물목은 육•어•주•과•포(肉魚酒果脯)의 차례로 적으며, 사돈지(査頓紙)라 하여 신부의 어머니가 신랑의 어머니에게 보내는 편지도 함께 보낸다. 이 상수와 사돈지로, 신부 어머니의 음식 솜씨와 신부집의 범절을 평가받는다.
  2. 우귀와 현구례:  우귀(于歸)는 신행이라고도 하는데, 신부가 정식으로 신랑집에 들어가 사는 의식이다. 현구례(見舅禮)는 신부가 신랑의 부모와 친척에게 첫인사를 하는 의식으로서, 우귀일에 한다.

이 때 신랑의 직계 존속에는 사배씩 하고 술을 권한다. 이 경우, 시조부모가 살아 계셔도 시부모를 먼저 뵙고 그 후에 시조부모를 뵙게 되며, 그 후는 촌수나 항렬의 순서로 인사를 드린다. 오늘날에는 결혼식 당일에 예식장에서 폐백실을 이용하여 폐백을 올림으로써 대행하기도 한다.

◈ 폐백

신부가 처음으로 시부모와 신랑의 일가 친척에게 인사를 드리는 의식으로, 현규례를 말한다.

1.페백의 준비

a.대추: 시아버지께 드릴 때의 폐백은 대추로 하고, 시어머니께 드릴 때의 폐백은 편포나 포, 꿩, 혹은 닭을 쓰기도 한다. 대추는 달리 백익홍(百益紅) 이라고도 하여 장수를 의미한다. 시아버지가 신부에게 대추를 던져 주는 것은, 첫 아들을 낳기 바라는 데에서 온 관습이다. 대추는 잔 것, 벌레 먹은 것을 골라내고 깨끗이 씻은 다음, 정종 한 컵에 물 반 컵을 섞어 대추에 골고루 발라 그릇에 담고 뚜껑을 닫아 방에 5~6시간 묻어 두면 적당히 부풀고 윤이 나게 된다. 이 대추의 꼭지를 따내고 실백(잣)을 박은 후에 다홍실에 꿰어 장식한다.

b.편포: 소의 엉덩이살을 사서 힘줄이나 기름을 골라내고 곱게 다진 다음에 소금•후추•참기름을 넣고 주물러 타원형으로 만든다. 그 위에 잣가루를 뿌리고 청띠와 홍띠를 두른 뒤, 폐백판에 받쳐 쟁반에 담아 기름 종이로 덮고, 금전지를 단 분홍 겹보자기에 싼다 그러나 편포는 더운 계절에는 상할 염려가 있으므로 다른 것으로 대용할 수 있다.

c.포: 소의 엉덩이살을 쟁반 크기에 맞추어 길고 널따랗게 3cm 정도의 두께로 저며서, 소금•후추를 치고 주무른 다음, 참기름을 발라 채반에다 말린다. 겉이 꾸덕꾸덕해지면 다시 뒤집어 말린다. 이것을 두서너 번 되풀이하여 말린 다음, 착착 포개어 보자기에 싸 무거운 것으로 눌러 놓으면 아주 판판하게 된다. 이것을 예쁘게 다듬어서 8쪽씩 두 묶음으로 나누어 청•홍사지로 감고 기름 종이로 덮어서 보자기에 싼다. 복중에도 상할 염려가 없으므로, 여름에는 포를 많이 쓴다.

d.꿩 또는 닭: 꿩 폐백은 꿩 두 마리로 하는데, 머리를 잘라낸 다음 찜통에 쪄 낸다. 찐고기를 반듯하게 펴서 꾸덕꾸덕하게 말려 보자기에 싸서 잠깐 누른 다음, 두 마리를 포개어 보자기에 싸서 다시 누른다. 포개진 두 마리의 꿩을 각각 청•홍사지로 묶고 목에서 청•홍사지를 감는다. 날개에는, 여러 색깔의 사지를 꼬챙이에 말아 꿴다. 꿩이 없을 때는 닭을 쓰는데, 닭의 머리는 그대로 둔 채 달걀 지단을 만들어 지단과 실고추 등으로 닭을 화려하게 꾸민다.

e.페백 보자기: 겉보자기는 폐백 상보로 사용하는데, 가로•세로의 길이가 1미터쯤 되는 홍색 보자기를 만들어, 네 귀에 연두빛 금전지를 단다. 속보자기는 폐백마다 따로 싸게 되므로, 시부모만 계실 때는 2개, 시조부모가 계실 때는 4개를 준비한다.

f.근봉(謹封): 빳빳한 종이를 아래 위 없이 둥글게 말아서 5cm쯤 되게 잘라, 근봉이라 써서, 그것으로 폐백보의 네 귀퉁이를 잡아 모아 끼운다. 근봉 위로 나온 술 달린 네 귀를 각각 젖혀서 늘어뜨리면 연꽃 모양처럼 되어 아름답다.

g.입맷상: 신부가 폐백을 드리러 와서 준비할 동안 국수장국에 수정과나 화채 등의 마실 수 있는 요기상을 주는데, 이것을 입맷상이라 한다. 이 때 신부는 요기를 할 수 있다. 나중에 큰 상을 받았을 때는 보기만 하기 때문이다.  옛날에는 흔히 밀기름을 속눈썹에 붙여 눈을 올려뜨지 못하게 했으므로 그런 상태로 많은 손님 앞에서 음식을 먹을 수가 없다. 

2.폐백드리기

폐백을 드릴 때는 보통 신랑집 대청마루에 병풍을 치고 돗자리를 깔아, 그 곳에 신부집에서 보내온 폐백으로 상을 차린다. 요즈음은 예식장에서 폐백실이 갖추어져 있어, 예식이 끝난 후에 곧바로 폐백실에 가서 폐백을 드린다.

시아버지에게 드릴 폐백은 대추로 하고, 시어머니께 드릴 폐백은 편포나 포, 꿩 혹은 닭으로 한다. 먼저 폐백상만 펴 놓고, 신부집 수모가 신부를 시아버지 앞으로 데리고 가서 큰 절을 한 번 시킨다. 신부가 두 번째 절을 하기 위해 일어났다 앉으면, 수모는 폐백을 가져와 신부가 차려 놓는 것처럼 신부 앞을 거쳐서 시부모 앞의 폐백상에 가져다 놓는다. 신부가 시부모에게 사배를 드린 다음 자리에 앉으면, 시아버지는 대추 몇 개를 집어 신부의 치마 앞에 던져 주며 덕담을 한다. 수모는 대추를 집어 신부의 원삼 큰 소매 속에 넣어 준다. 이 대추는 첫날밤에 신부가 먹는다. 또 시어머니는 신부의 흉허물을 덮어 달라고 폐백을 어루만진다.

만일 시아버지가 계시지 않을 때는 폐백상에 대추를 사용하지 않고 시어머니에게 폐백을 올린다. 폐백이 끝나면 사당에 고축한 후에, 시어머니가 '이것은 너의 시아버지께서 주시는 것이다'하고 대추 몇 개를 그릇에 담아 신부에게 준다. 시조부모가 살아 계시면, 폐백이 끝난 후에 시부모가 데리고 가서 폐백을 올리게 한다.

시부모에게 폐백을 올리고 나면, 폐백은 수모가 물리고 빈 상만 놓아 둔 채 다른 친척들에게 폐백을 드리게 한다. 항렬이 높은 친척에게는 신부는 평절로 하고 상대는 받기만 한다. 같은 항렬에서는 평절로 맞절을 하여 서로 예를 갖춘다. 큰절은 두 손가락 끝을 바닥에 맞닿게 놓고 거기에 이마가 닿도록 하는 절이고, 평절은 두 손을 양쪽 무릎 옆 땅에 짚고 왼쪽 무릎을 세우고 머리를 숙여 하는 절이다. 여자는 혼례 때에 남편에게, 그리고 친정 부모와 시부모, 시조부모에게, 그리고 주부로서 사당에 인사드릴 때에만 큰 절을 하고, 다른 사람에게 절을 할 때에는 평절로 한다.

◈ 맞선

결혼을 하려면 배필이 있어야 한다. 배필이란 인생의 반려자이다. 평생동안 사랑하고 존중하며, 진실한 동반자로서 즐거움과 행복을 같이 나누며, 또한 괴로움과 슬픔도 같이 나누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떠한 경우에도 서로 신의를 지키는 일이 중요하다. 이러한 배필을 만나게 되는 과정으로 연애와 중매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중매는 양가를 잘 아는 사람이 결혼을 목적으로 하기에 앞서 두 사람이 사귈 수 있도록 연결시켜 주는 방법이다. 대개 중매인은 상대방의 장점만을 내세워서 결혼을 성사시키려 하므로 중매인의 말을 그대로 믿지말고, 나름대로 믿을 수 있는 사람이나 친척, 친구들을 시켜 자세한 것까지 조사하는 것이 좋다. 호적등본이나 주민등록등본을 떼어 보아 정확한 신원을 파악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 다음 직장에서이 근무 태도와 장래성, 신용도, 대인 관계, 사회에서의 적응력, 출신 학교 등을 알아본다. 친구나 친척 관계도 알아보는 것이 좋다. 이렇게 하여 두 사람이 잘 맞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 맞선을 보게 된다.

맞선이란 상대방을 보는 것이며 자신을 상대방에게 보이는 것이다. 그러므로 상대방을 관찰하는 데만 정신을 쏟지 말고 자신이 상대방에게 어떻게 보이느냐에 대해서도 주의해야 한다.

맞선을 보는 장소는 양가 혹은 당사자들이 합의하여 상호간에 부담이 없는 곳으로 한다. 맞선 보는 시간은 식사 시간을 피한 시간이 좋으며 너무 오래 보는 것이 좋지 않다. 맞선을 보러 나갈 때는 시간과 장소에 어울리고, 깨끗하고 단정한 옷차림으로 나가는 것이 좋다. 좌석의 배정은 중매인이 잘 안배해야 한다. 양가의 동행자들은 당사자들이 대화를 쉽게 풀어갈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 준다. 대화는 남성쪽에서 이끌어 나가는 것이 자연스럽다. 일방적인 질문보다는 서로 공동의 화제를 가지고 이야기하면서 그 중간중간 자기의 이야기나 상대방의 신상에 대해 묻는 등으로 대화를 이끈다.

맞선은 동등한 입장에서 서로를 알아보는 좋은 기회라 생각하고 상대방에게 묻고 싶은 것을 미리 생각해 두는 것이 좋다. 맞선의 비용도 양가에서 절반씩 공동으로 부담하는 것이 대등한 입장이라는 면에서 볼 때 바람직하다.

맞선을 보고 난 후 가부(可否)의 대답은 될 수 있으면 빨리 하여야 한다. 그리고 거절하는 쪽에서는 중매인을 통하여 표현에 조심하면서, 잘 이해하도록 이유를 솔직하게 말하고 상대방의 마음을 상하지 않도록 한다.

마음에 들면 교제 기간을 갖도록 한다. 교제 중 결혼을 할 수 없을 정도의 결정적인 일이 생기면 교제를 빨리 끊는 게 좋다. 교제 기간에는 과중한 경비나 선물은 피하고, 사랑이 싹트고 합의가 이루어지면 약혼을 하거나 결혼을 하게된다.  

육례에 의한 혼례는 그 형식이 까다롭고 비용이 많이 들어 양반들 사이에서 주로 행해졌고, 가난한 서민들은 대개 작수성례라고 하여 깨끗한 물을 떠놓고 혼례를 치르는 경우도 많았다. 하지만 서민들이라도 재산이 많으면 육례를 갖추어 혼인할 수 있었고, 양반이라도 재산이 없으면 작수성례로 혼인을 하였다.  

작수성례는 비록 예물이 없더라도 혼례를 치르는 의식만은 엄숙하고도 경건 하였다. 이렇게 만난 부부는 평생을 근면 노력하여 자식들에게만은 성대한 혼례를 치르도록 재산을 모았다. 그래서 아내는 길쌈을 하고, 남편은 땅을 일구어 억척스럽게 재물을 모아 치부한 사례는 수없이 많다. 이러한 실례는 지방마다 미담으로 전해져 내려와 사회의 귀감이 되어 왔다. 작수성례도 교배상을 차려놓고 마을에서 덕망이 높은 사람을 초청하여 홀기를 읽으면서 대례를 행하였다. 이 때 이웃에서는 감주나 두부를 해서 혼인을 축하해 주었다.  

결혼은 사회의 기본적인 요소인 가정의 중요함을 다시 한번강조한다.

남자 아이가 20살이 되는 해에는 머리를 위로 따고 갓을 썼다. 여자 아이가 15살이 되는 해에는 비녀를 꽂아 머리카락을 묶다. 소년은 마을의 정해진 바위를 들어올림으로써 성인으로서 인증된다. 결혼은 두 집안의 어른들에 의해서 정해졌고, 결혼이 합의가 된다면 신랑의 가족은 신부의 가족에게 신랑의 사주단자를 보낸다.

그러면 신부의 가족은 결혼날짜를 정해 통보하고, 다시 신랑의 가족은 신부에게 결혼예복과 선물등을 보낸다. 중국 그리고 일본과는 다르게, 전통적인 한국의 결혼식은 신부의 집에서 열린다. 결혼식이 시작되면, 신랑은 신부의 가족에게 한쌍의 목제 거위들을 바친다. 신랑과 신부가 서로에게 절을 하고, 술을 마신다.

결혼식 후에 신랑신부는 두세달을 신부의 가족과 함께 보내게 된다. 결혼에 의해 생기는 가족은 사회 생활의 기초로 여겨졌고, 번창하는 삶을 살기위한 사회적 의무였다.

결혼식에 사용되는 떡은 신부측이 준비한 봉채 떡이다. 떡의 주요 재료는 대추, 밤, 빨간 콩, 찹쌀이다. 각 재료들은 상징적인 의미를 가지는데 찹쌀은 커플의 떨어질 수 없는 사랑을 의미하고 각7개의 밤과 대추는 많은(일곱) 아들을 바라는 마음이며, 빨간 콩은 악귀를 내쫓는 것을 의미한다. 결혼식에 사용되는 다른 쌀 떡은 달떡과 색떡이 있다. 달떡은 두 사람의 인생에 달빛이 그윽하기를 기대하는 것이며 색떡(2색)은 커플을 의미하는 병아리 한 쌍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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