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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마다 다른 풍속

풍속이란 옛날부터 한 생활 공동체가 지켜 내려오는 남다른 습관을 말한다. 신앙, 생산 수단, 의식주에 이르기까지 한 공동체가 역사적으로 발전하면서 얻은 전통적 행동 양식을 우리는 풍속, 습관, 관습 등으로 부르고 있다. 풍속이란 생활 공동체에 따라 서로 같지 않기 때문에 한마디로 이런 것이오하고 설명하기는 어렵다.

첫째로, 자연 조건과 기후에 따라 기본적으로 행동 양식이 다르다. 둘째로, 생산물, 생산 방법에 다라 크게 작용하는 풍속이란 자연의 터전 위에 인간이 스스로의 역사를 발전시켜 오는 가운데 얻어 낸 하나의 규범이다.

흔히 아주 먼 나라의 풍속이 괴상함을 표현할 때, 서로 코를 잡는 인사법, 뺨을 대리는 인사를 흉내내며 우스워한다. 그러나 그쪽에서 볼 때, 맥없이 손을 잡고 흔들거나, 엎드려 땅바닥에 머리를 대는 것을 보면 역시 웃음이 터질 것이다. 이제는 서로 다른 문화권 사이에 왕래가 잦아짐으로써 세계가 이웃처럼 되어 간다고 하지만 아직도 서로 다른 생활 공동체 사이의 풍습은 각기 있다.

한 공동체가 역사적인 맥락에 따른 자기 존립과 발전을 하기 위해서는 전통적인 독창성이 바탕으로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풍속과 옛풍속을 같은 것으로 인식해서는 안 된다. 민중 생활의 규범으로 생겨난 것이 바로 우리의 풍속이기 때문이다.

Different customs in each culture

Customs are the unique practices of a culture for the purposes of a common way of life that have been handed down since ancient times. A culture develops historically in areas such as their belief systems and means of production, and the learned practices that become tradition are called customs, or conventions. However, because each culture’s customs are so different from one another, it is difficult to define custom more concretely.

First, customs across cultures fundamentally differ in accordance with the natural conditions surrounding each, such as climate. Second, customs are greatly affected by a culture’s products and means of production, and can be considered the standard of living obtained through personal histories which people have developed on the ground nature had given them.

Generally, we are amused at the apparent oddities of distant countries customs, such as greeting be grabbing each other’s nose, or greeting y slapping each other’s cheek, and imitate the behavior with a laugh. Not surprisingly, however, they will laugh similarly upon witnessing our own strange customs of shaking hands for no apparent reason, or kneeling to the floor and touching our heads to the ground [in the Korean traditional bow]. Although the increasing
Correspondence across cultures is making the world as one neighborhood, the different customs and lifestyles of each different culture reveals the abilities of each respective culture.

In order for a given culture to survive and grow in accordance with its history, it must e founded in a creativity that finds its roots in tradition. However, current customs must not be equated with those of old.

The people’s standard of living, which originate from the overcoming of and progress from numerous cycles of suffering and prosperity: these are what we call customs.

Woosung Shim(1987): 풍속과 놀이(Customs and Recreation).P.170

새해를 맞는 우리는 저마다 마음과 소원이 다르겠지만, 못 다한 것을 아무려 보고 새것을 꿈꾸는 바람이야 같지 않을까?
옛 아낙네들은 벌써 동지만 되면 버선을 새로 지어 시어른께 바쳤다고 한다. 여름에 기승을 부리던 음기는 사그러들고, 양기가 비로소 솟아난다는 동짓날, 그 첫 양기의 복을 듬뿍 밟으십사는 바람을 온 몸에 싣게 된느 버선에 실어 새해를 맞는 첫 선물로 삼았던 것이다. 옥같이 누어 다듬은 무명에 햇솜을 포근히 두어, 다홍실로 상수를 징거 바치던 아름다운 효심을 생각해 본다.

곱게 단장하고 어린 것을 데리고 묵은 세배를 하러 큰댁을 찾아간다.

「어머님, 내일도 차례 잡수러 오겠지만요, 묵은 세배 드리러 왔어요.」
「그래, 잘들 왔다. 자, 절들 해라.」하고 얼른 아랫목에 앉아 주시는 어른이 계신가 하면 그렇지 않은 분도 계시다.

김장을 해 묻고는 이내 설 준비로 바쁘다. 「강정은 언제하지? 고물은 무엇무엇하고, 약과는 언제 지지지? 흰떡은 언제 해서 썰고?」하며 시간에 쫒게 쩔쩔맨다. 그런데로 차례 음식을 젯상에 잡수어 놓고는 남자들이 한줄로 서서 절한 다음, 비켜 주는 자리에 여자들이 또 서서 큰 절을 하고 물러선다. 또 다시 엎드려 묵은 해에 보살펴 주심에 감사드리고 새해에도 축복해 주시옵소서 하며 빌고 일어선다. 차례상을 물려내고는 안방 아랫목에 어머님이 앉으실 방석을 내 놓는다. 그 전에 빳빳한 새 돈을 어머님께 미리 드려둔다. 그러면 어머님은 그것을 손자들 세배돈을 주신다.

「어머님, 부디부디 건강만 하시고 오래 사시옵소서.」
「할머니,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세요. 저희 손자 장가드는 구경도 꼭 하세요.」하고 맏손자가 응석을 부리면 「아이고 흉해라, 뭘하러 그렇게 오래 산다니!」하시면서 막 웃으신다. 어머님의 덕담 또한 가지가지시다.

「그래 너희도 건강하고 마음껏 너희 뜻 펴고, 넌 가고 싶은 대학에 척 가고, 넌 논문 잘 쓰고 넌 에미 말 잘 들어라. 잉!」정겨운 어머님의 눈빛과 부드러운 음성이 우리 집안에 복을 가져오는 듯하다.

「어머님, 더 건강하시고 오래오래 사세요」하고 여쭙고 나면 훨씬 더 도타운 정이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아들•딸•손자•손녀들을 위해 손톱이 닳도록 애쓰시는 어머님께 설음식이나 설비음 하나로 그 은혜에 보답할 수는 결코 없음을 가슴 벅차게 느끼기 때문이다.

이럴 때면 「음식가지 옷가지나 해드리고 효도한 체 말라」라는 송시열(조선 숙종 때의 대학자, 호는 우암(尤庵)) 선생께서 쓰신 『계녀서(誡女書, 딸을 타이르신 글』의 한 구절이 으례 생각난다. 우리의 간절한 정표라고는 하지만 그것으로 제법 보은했다고 착각하기 쉬운 우리의 허술한 마음을 일깨워 주신 것이라 여겨진다.

그보다는 부모님의 마음을 편하게 해드리고 걱정을 끼쳐드리지 않겠다는 다짐과, 그것이 몸가짐•말씨•음성•태도로 드러나야 하는 것이다. 그런 마음가짐만 되어 있다면 어른을 함부로 탓하거나 평할 건방진 행동이 어디서 나올 것인가. 더군다나 우리들의 그릇된 생각이 어른을 오해하는 경우도 많은 것임에랴.

세배를 드리러 어른 댁에 찾아갔을 때 주신 음식을 끄적끄적 먹다 남기는 것은 예절에 어긋난다. 또 오래 머물며 심지어 술을 마시고 주정까지 하는 것도 결코 안 될 일이다.
그러나 그와는 반대로 세배가 끝나자 「가야 해요」하고 귀밝이 술 한잔도 마다하고 찬바람 일게 가버리는 것도 매정스럽다.

한복 한 벌 제대로 해입기가 쉽지 않은 세상이자만, 젊은 남자들이 동저고리 바람에 아니면 마고자나 걸치고 예복인 줄 알고 어른을 찾아뵙는 것도 무례한 노릇이다. 추위도 막을 겸 부디 두루마기를 갖추어 입어 주시기를!

여성의 경우 긴 스란치마를 자란자란 입은 모습은 사랑스럽지만 치맛자락을 조심스레 여미지도 않고 바람에 뒷자락을 펄럭이며 다닌다듣가, 치맛단으로 온 길을 쓸고 다니는 모습은 참으로 보기 딱한 광경이다. 얌전히 허리띠로 매거나 손으로 매무새를 가다듬고 다닌다면 한복 입은 맵시가 한결 나을 것이다.

동저고리 바람의 나들이는 마치 잠옷을 입고 거리를 나서는 것과 같다. 예전에는 사랑에서 안손님을 맞으러 나올 때도 으례 두루마기를 입어야 했다.

현숙한 아내라면 서방님이 바른 옷차림을 하고 다니는지 챙겨 볼 일이다.



어른의 생신날에는 으례 온 집안이 모인다. 예전에는 큰댁의 며느리 되는 이는 아침부터 어른의 수를 기리며, 어른을 기쁘게 해드리느라고 찾아온 손님을 맞이했다. 그런 날은 뜻하지 않던 손님에게 식사대접이 빠질 수 없었다. 그러나 요즘에 와서는 대개 정해진 시간에 한꺼번에 부른다. 그것도 아침 초대는 거의 드물고 점심이나 저녁 초대가 흔하다. 생할이 바쁘고 살림이 빠듯한 데서 온 흐름인 듯하다.

여느 때의 방문만 해도 그렇다. 미리 말씀 여쭙자니 마치 기다리시라는 것 같도, 불쑥 뵈오러 가는 수도 있긴 하지만 되도록 점심이나 저녁 끼니 때는 피하려고들 든다. 찾아가는 이가 아랫사람이면 웃어른이 어려워 그러고, 웃사람이면 젊은이들의 사정을 헤아리느라 그런다.

시간에 쪼들리거나 살림이 넉넉치 못해 미리미리 유념해 둘 겨를이 없어, 손님이 오실 줄 알고도 오신 뒤에야 지갑을 들고 나가는 무안스런 일도 있다. 그러나 그렇게 일부러 급작스레 장만한 것, 값비싼 것만이 꼭 귀한 것은 아니다.

그러면 집주인의 마음이 담긴 손님 대접거리에 어떤 것들이 있을까? 가을철에 노란 들국화가 한창 향기롭게 필 때에, 채 다피지 않은 꽃송이를 따서 그늘에 말려 둔다. 뜰에 피는 노란 작은 국화도 마찬가지다. 매화도 마찬가지다. 미처 다 피지 않은 꽃송리를 따서 그늘에 말려 두면 된다. 감잎도 따서 슬쩍 쪄서 그늘에 말려두면 차 대접의 밑절미가 된다. 국화차나 매화차는 향기가 그윽할 뿐더러 찻잔 안에서 동실 피어나는 꽃잎의 사랑스러움 또한 귀하기 짝이 없다. 유자도 그렇다. 욕심껏 한 상자를 사리라 마음먹어도 그렇게 하기는 쉽지 않다. 장에 나갈 때 조금씩 아껴서 두 세개를 사서 얇게 저며 꿀이나 설탕에 재어 둔다. 모과도 마찬가지다. 얇게 저며도 좋고 곱게 채쳐도 좋다. 생강도 그렇다. 생강차를 달여 마실 뿐만 아니라, 그 국물을 식혜에 잠깐 타도 좋고, 유자청을 조금 타도 맛이 한결 개운하거니와, 몇 번이고 우린 생강 찌꺼기는 곱게 다져 꿀이나 설탕에 조려서, 잣가루를 곱게 하여 묻혀 마른 안주로 써도 훌륭하다.

밤도 생률을 치거나, 더러는 삶아 까서 찧어 계피•생강즙•후추가루를 넣고 꿀 버무려 두텁가루 묻혀 내어 놓으면 얌전한 마른 안주가 된다.
찹쌀가루를 빻아서 말려 두었다가 경단 만들어 꿀물을 묻혀, 밤채•대추채•석이채 곱게 친 것 묻혀 내어도 산뜻하고 맛깔스러우며 꿀밤 소 넣고 두텁가루 묻혀 둥근 떡을 만들어도 좋다.

겨울이고, 더구나 설 때이고 보면 식혜•곶감•수정과•모과•정과•귤정과•배숙•유자차에 강정이나 약과•다식을 조금씩 곁들여 놓아도 큰 상 아닌 주안상으로 훌륭한 것이다.
손님을 맞아 꼭 커피를 끓여 내어야만 하는지 가끔 생각해 본다.

나라를 사랑한다고 외치는 젊은이들이 커피•콜라를 줄지어 사마시는 모습을 볼 때에도 우리 차로 이를 대신하면 어떨까 생각해 본다. 오미자국이나 유자청을 탄 맑고 찬물을 콜라나 사이다를 대신하여 마시게 하고 겨울에는 커피대신 모과차나 생강차를 마시게 하면 어떨까.

감잎은 이뇨제로 간에 좋고, 노폐물을 제거하여 피를 맑히며, 식중독을 푸는 중화작용을 하며, 모과는 소화 기능을 돕고, 특히 여원 이에게 좋다고 한다. 국화차는 콩팥•쓸개•허파에 좋고, 매화차는 또한 허한 기운을 보해 주는 의약적인 효과까지 있다고 한다.

손님이 오셨다면 케익이나 과자를 커피에 곁들여 내는 수도 있지만, 약과나 다식, 정과나 강정 같은 것을 장만하여 두었다가 정성껏 대접하는 것이 어떨까?

정만 담겼다면 주발 뚜껑에 부어주는 술과 마른 대추 두어 알도 손님에게 다시없는 대접이 될 수도 있지않을까?

어느 가정의 예의범절 강신항, 정양완 교수 정일출판사 1990



편지나 연하장은 가장 격식을 존중해야 되고, 가장 마음을 써야 될 사회생활의 한 수단이다. 그러기에 예로부터 편지에 관한 격식은 까다로왔다. ‘번지내 투입’식으로 아무렇게나 쓰는 것이 아니었다. 먼저 받는 사람에 대한 호칭(呼稱) 부터 조심해야 된다. 연전에 어떤 대학신문사에서 꼬박꼬박 신문을 보내 준 일이 있는데, 보내 줄 때마다 ‘강신항 앞’이라고만 해서, 여간 불쾌한 것이 아니었다. 틀림없이 그 대학의 신문사 학생이 보내 주었을 터인데 내가 겨우 학생들 한테서 ‘-----앞’대접밖에 못 받는 사람인가 생각하니 몹시도 화가 났었다. 요근래 일부 사람들 가운데에는 밑도 끝도 없이 그저 받는 사람의 이름만 달랑 써서 보내는 수가 있는데, 이것은 ‘앞’보다도 더 예의를 모르는 짓들이다. 아무리 친한 사이라고 하더라도 편지에서는 한 급을 높여서 대접해야 한다고 한다. 그러기에 친한 국민학교 동창에게도 편지에서는 ‘아무개 형’이니 ‘인형(仁兄)이니 해서 써 보내는 것이다.

편리한 시대에 태어나서, 모든 것을 편리하게 보내는 것은 좋으나, 똑같이 인쇄된 카드에 자기로서는 한마디 보태는 말도 없이 이름만 마지못해서 써 보내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카드를 보낼바에야 차라리 ‘근하신년’리라고 간단히 써서 보낸느 것이 더 성의가 있을 것이다. 사람들은 값 비싸고 호화스러운 카드를 받기를 원하는 것이 아니다. 간단하더라도 한마디 정다운 말, 일년내내 소식을 못들었어도 좋으니 새해를 맞게 되는 연말에라도 형식적이 아닌, 진실한 인사말을 듣고 싶은 것이다. 가족은 다 안녕들 하신지, 지금 직장은 어디인지, 건강은 어떠한지, 새해의 계획은 어떻게 세우고 있는지 등등을 알고 싶은 것이다.

어떤 직장이나 기업체의 장(長)들은 비서진을 시켜서 예의를 갖추기 위하여 정중히 붓글씨로 받는 사람의 주소와 이름을 적어 보내 주기도 한다. 그런데 우표 붙이는 일에까지는 마음을 쓰지 않았는지, 우표가 가로로 된 봉투의 왼쪽 구석에 붙여 있기도 하고, 어떤 경우에는 거꾸로 붙여 있거나 옆으로 붙여 있기도 한다. 이런 연하장을 받아 보았을 때에는 우표 한 장 때문에 붓글씨로 정중히 쓴 정성도 허사가 되었구나, 고 참으로 안타깝게 생각했었다. 더욱이나 외국에 나가 있다가 그 곳의 여러 장(長)들에게 우리나라의 장(長)들이 이런 식으로 연하장을 보낸 것을 우연히 보았을 때, 주그마한 실수가 모든 것을 수포(水泡)로 만들고 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크리스마스 카드나 연하장은 기쁨을 나누기 위하여 주고 받기도 하는 것이다. 그래서 외국에서 오는 예를 보더라도, 기념우표를 열심히 모았다가 카드나 연하장에 붙여서 보내 주는 친구들이 있다. 이런 봉투를 받으면, 그 사람의 정이 한결 더 따뜻하게 느껴져서, 우정(友情)이 더욱 깊어지는 것이다.

오늘날에야 시대가 바뀌었으므로 붓글씨로 쓰는 사람들은 드물어졌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아직까지는 볼펜으로 써보내는 것을 그렇게 달갑게 여기지 않는 분들이 많다. 그러므로 될 수 있는 대로 만년필이나 펜으로 쓰는 것이 좋을 것이다.

카드나 연하장에 쓰는 내용도 남들과 똑같이 ‘고당의 만복을 비나이다’같이 쓸 것이 아니라,

「존경하는 선생님께!
크리스마스와 새해를 맞이하여 선생님의 환한 얼굴과 정성어린 강의가 그립습니다.
언제나 건강하시고 새 해에도 열성껏 가르쳐 주시기 바랍니다.
선생님 곁은 떠나왔어도 언제나 선생님만을 생각하며 사는 제자가 ---」처럼 쓰는 것이 좋을 것이다. 다만 모든 선생에게 똑같은 종이와 똑같은 내용을 써서 ‘번지내 투입’식으로 배달되는 광고 같은 연하장이 되어서는 일껏 보내주고도 섭섭한 느낌만 안겨주는 결과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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