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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예식
혼인 때 함을 지고 온 친구들이 행패를 부리는 광경을 보고 있으면, 장가 갈 사람의 수준이나 격을 알 수 있다. 원래 함이라고 하는 것은, 근래 유행하고 있는 것처럼 사고 팔고 하는 흥정의 대상물이 아니다. 대개 결혼식을 올리는 전날이나 또는 당일에, 신랑이 될 사람 집에 보내는 정중한 의식 절차의 하나인 것이다.
이미 사주단자를 보내어 혼인할 뜻을 남자 측에서 표시했고, 여자 측에서도 이를 받아들여 혼인식을 거행할 날짜를 택일하고, 이 사실을 남자측에 알렸으므로, 새삼스러이 더 많은 절차가 필요없는 듯하나, 역시 혼인이란 가장 성스러운 인간 대사(大事)의 하나이기에, 혼인식날을 맞이하여 다시 한번 정중한 절차를 밟아 온 것으로 보인다.
함 속에는 보통 혼서(婚書)와 예단(禮斷)을 넣는데, 중심은 예단이었지, 딴 물건이 자잘구레하게 들어가는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도 근래에는 함의 뜻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마치 무슨 큰 흥정거리나 생겨난 듯이 여기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혼서는 대개 신랑이 될 사람의 아버지가 쓴다. 내용은, 자기 집안의 내력을 간단히 한 줄로 밝히고, 자기의 자식이 어느덧 장성하여 귀댁(貴宅)의 따님과 혼인하게 된 것을 다시 없는 기쁨으로 여긴다고, 신랑측의 기쁨과 영광스럽게 여기는 마음을 나타낸 다음, 이에 이번 혼인이 성립된 것을 정식으로 증빙(證憑)하고자 정중히 예단을 보내드리오니 즐거이 받아 주십소서 하는 글로 되어 있다.
예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이런 절차를 보면, 우리 겨례들이 혼인이라고 하는 것을 얼마나 신성하게 여기고, 며느리 하나를 새로이 맞이함에 있어서도 얼마나 정중하게, 엄숙하게 마음들을 썼는가 하는 것을 알 수 있다.
함 속에는 청단과 홍단(집안에 따라서는 옥색 비단으로 대신하기도 함)을 넣는데, 분량은 대개 치마나 두루마기 한 감 정도를 넣는 것이 원칙이나, 더 많은 분량을 넣는 집들도 있다. 이들은 청단은 붉은 색종이로 싸고, 홍단은 푸른 색종이로 싸서 넣는데, 정성을 더들인다고 색종이 대신 보자기로 싸서 넣기도 한다.
혼서지는 두꺼운 한지(韓紙)를 사용한다. 한지에다가 신랑이 될 사람이 아버지가 붓으로 정성껏 깨끗이 써서 일곱번 접고, 이 종이가 들어갈 만한 봉투 역시 두꺼운 한지로 만들어서 그 속에다가 혼서지를 넣는다. 봉투 겉에다가는 아무개댁 입납(입납)이라 쓰고, 봉투 위 아래 두 군데를 근봉(謹封)이라고 쓴 두꺼운 한지를 두른다.
혼서지는 검은 비단 겹보에 싸는데, 보자기 네 귀에는 다홍 술을 단 금전지를 붙이는 것이 보통이다.
함에다 예단과 혼서지를 넣고 난 뒤에는, 돗자리를 깔고 소반 위에 김이 나는 팥찰떡 시루를 놓고서, 그 위에다가 함을 잠시 올려 놓았다가 내려 놓은 다음, 함을 지고 갈 사람들을 비롯하여 거기 모였던 온 식구들이 둘러 앉아서 시루떡을 조금씩 나누어 먹는다. 둘이 찰떡같이 다정하게 살라고 딱 두 조각만 찌고, 그 떡은 밖으로도 내가지 않는다.
함은 혼인 전날 초저녁에 닿도록 가져가는 것이다.
함은 흰 무명을 멜빵으로 삼아서 메고 가는데, 근래에는 모두 차를 타고 가므로 이것도 하나의 형식이 되고 말았다. 또 도시생활에서는 어울리지 않게 되었지만, 함을 메고 갈때에는 한쌍의 청사초롱(靑紗草籠)에 촛불을 켜서 규수댁을 찾아간다.
옛날에는 심부름하는 사람이 함을 메고 갔으므로, 함을 지고 가서 행패를 부리는 일이 없었을 것이다. 기껏 수고했다고 술잔이나 얻어 먹고, 돌아오는 길에 노자(路資)나 받아가지고 왔을 것이다.
함을 지고 규수댁에 들어서면, 규수댁에서 미리 돗자리를 깔고 큰 떡시루를 준비해 놓은 데다가 함을 올려 놓고서 함진아비가 큰 절을 해야 한다. 큰절을 받은 규수댁에서는, 규수의 아버지 되는 어른이, 함의 뚜껑을 열고 함속을 보지 않은채로 손을 함속에 넣어서 먼저 잡히는 예단을 꺼낸다. 그때 청단이 잡히면 남자 아이르, 홍단이 잡히면 여자 아이를 낳게 된다고 점치기도 한다.
이런 형식이 끝나면 규수댁에서는, 그동안 공들여 장만한 음식을 가지고 함진아비 일행을 위한 큰 상을 차려서 대접하는 것이 보통이다.

시대가 바뀜에 따라 형식은 달라졌지만, 이러한 정신은 오늘날에도 별로 다를 바가 없다. 이중에서도 사람들이 가장 중히 여기는 것이 결혼예식이다.
우리는 결혼이라는 것을 통해서 새 삶을 시작하기 때문이다. 반쪽과 반쪽이 하나가 되어 새롭게 태어난다. 이런 과정을 소홀히 할 수 없다. 그래서 어느 나라고 이 의식을 엄숙하고도 성대히 거행하는데 이 의식과정에서 두 집안의 모든 것이 드러나고 만다. 어떤 값진 물건들이 푸짐하게 오고 가고 했다는 것은 그렇게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서로 주고 받는 보자기 하나를 싸는 방식으로부터 시작하여, 꼭 교환해야 되는 몇 가지 글에 이르기까지, 소위 그 집안의 안목과 전통이라는 것이 드러나게 마련이다. 이러한 것들은 하루 아침에 이룩되는 것이 아니라, 대개 대대로 이어 내려온 그 집안 부인들의 정성과 솜씨에 나타나는 것이다.
혼인식은 이와 같이 두 집안 아낙네들의 온갖 정성으로 진행된다.
그런데 근자에는 결혼식이 끝나면 당사자들은 단 둘이서 곧장 신혼여행을 떠나고 만다. 한 시대 앞선 세대에서는 이런 일이 없었다. 적어도 혼인식날만은 규수댁에서 ‘신성한 첫날밤’을 위하여 ‘신방’을 꾸며 놓고 또한번 엄숙한 절차를 거치도록 하였다. 규수는 연지 곤지 찍고, 긴 비녀를 꽂은채 명주 수건 속에 두 손을 가리우고 다소곳이 앉아 설레는 가슴으로 낭재(郎才)를 맞이하였다. 이러한 모습을 집안어른들이 모두 숨을 죽이고 지켜 보고 있었던 것은, 혼인을 통해서 새롭게 태어난다는 것이 그만큼 중대한 일이고, 모든 일이 여기로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 시대의 젊은이들이 새롭게 태어나는 출발의식을 단 둘이서만 어떻게 신성하게 거행하고들 있는지 우리들로서는 알 길이 없다. 다만 느껴지는 것은 혼인 전과 혼인 후에 하나도 달라진 것이 없어 보인다는 사실이다.
아무리 국민학교 동창끼리 혼인한 사이라고 하더라도 혼인 후에는 몸가짐에 무언가 새로운 모습이 보여야 또다시 태어난 보람이 있을 것이다. 어느 어른으 부모님들께서는 남편 앞에서 한번도 맨발을 보이신 일이 없었고 아내에게 큰소리는 커녕 반말 한번 하시는 일이 없이 일생을 마치셨다는데, 이렇게는 못할망정 여전히 세수도 않고 밥을 먹거나 짧은 치마 입은 두 다리를 쭉쭉 뻗고 앉아 있어서야 새로운 삶에 무슨 의미를 부여하면서 살고 있는지 의심이 안갈 수 없다.
혼인때 무슨 물건을 주고 받았는지 하는 것은 그렇게 중요한 일이 못된다. 새 출발할 때의 마음가짐이 중요하다. 그래서 최소한도의 격식이 필요한 것이다. 적어도 새 출방를 다짐한 것이라면 혼인 후에는 말씨부터 달라져야 될 것이다. 혼인 후에도 혼인 정에 너무 친구사이처럼 정이 들었던 까닭인지 조금도 달라진 바가 없이 계속 ‘너’니 ‘얘’니 하고 으례히 반말들이다. 반말을 주고 받으면서도 서로 존경하는 마음에야 변함이 없을지 모르겠으나, 이런 말씨를 가지고 장차 태어날 어린이들의 말씨를 어떻게 지도할 수 있을 것인지 걱정이다.
어린이들의 말씨는 주로 부모를 닮는다. 특히 어머니의 말씨를 닮는다. 엄연히 우리말에 서로 존경하는 ‘높임말’이 살아 있는 이상 또 이러한 우리말의 특징은 영원히 변치 않을 것으므로 사람의 됨됨이를 평가받을 때 무엇보다도 이 말씨에 의하여 결정되는 수가 많다.

남녀가 성인이 되면, 장가를 들고 시집을 간다. 원래 한국 전통으로는, 동성동본 (同姓同本)끼리 혼인을 하는 일이 없었으므로, 혼인을 통해서 성이 다른 두 집안이 새롭게 인척(姻戚)이 되고, 사돈(査頓)이라는 말도 생기게 된다.
‘사돈’이라는 말은 한국에서만 쓰는 말이다 혼인한 두 남녀, 즉 사위와 며느리의 부모들 사이에서, 서로 상대편을 부를 때 쓰는 호칭(呼稱)이기도 하고, 두 집안의 같은 항열(行列)에 해당하는 인척끼리 서로 부를 때 쓰는 호칭이기도 하다. 남녀를 구별하여 바깥사돈, 안 사돈이라 하기도 하고, 두 집안의 어른은 서로 사장(査丈)어른이라고 높이기도 한다.
근래의 혼인은 우선 본인들이 정한다. 그 이유도 가지가지다. 사귀다 보니까 어느덧 헤어질 수 없는 사이가 되어버렸다든지, 오래 사귀어 온 친구보다 새로 소개받은 사람이 장래가 더 있어보여서 결혼식 며칠 전에 바꿔치기 했다든지, 외국에 함께 데리고 나가 공부시켜 준다니까 모든 것 안따지고 따라 나섰다는 등, 먼저 본인들이 다 결정해 놓고 나서, 어른들의 사후승인(事後承認)을 요청한다. 일이 이쯤되면, 어른들은 거의 제 뜻을 펼 수 없는 시대가 되었으므로, 대개 마지못해 승인해 주는 일이 많다. 그 대신 사돈끼리는 약혼식때와 결혼식 때에 형식적으로 만나고 나면, 평상시에는 거의 왕래가 없어지고 마는 경향이 있는 듯이 보인다.
그 전에는, 혼인에 관한 한, 모든 것을 어른들이 정했었다. 정작 장가를 들고 시집을 가야 할 당사자들은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앞으로 사돈이 될 두 집안의 어른들끼리 미리 정해 놓고 자녀들에게 혼인할 것을 명령했었다. 이런 습관이, 한국의 개화기(開化期)이후, 신 학문에 눈을 뜨게 된 남녀 사이에 이혼과 자유 연애 붐이 일어나도록 만들기도 했었지만, 올바른 양식(良識)을 가진 어른들이, 상대편 집안의 내력과 장차 서로 사돈이 될 사람들의 인품을 보아가며, 각자가 자신있게 키워 놓은 자손들끼리 서로 반려(伴侶)가 되도록 한 습관도,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았을 것으로 여겨진다.
가장 중요한 것은 양식이라고 생각한다. 사돈을 맺겠다는 간절한 생각이, 앞으로 대를 이어서 살아갈 다음 세대들의 행복과 발전을 기원하는 데서 나온 것이 아니라, 자녀들의 결합을 이용해서 행여나 재력과 권력을 누려 보겠다는 것이라면 이보다 더 가련한 일은 또 없을 것이다. 부귀영화라는 것은 돌고 도는 것인데도, 당장의 부귀영화만을 바라고 사돈을 맺었다가, 한 쪽이 불우(不遇)한 처지에 놓이게 되면, 태도가 돌변하여 며느리를 들볶고, 사돈댁에 입에 담지 못할 말들을 마구 하는 이들을 흔히 보게 되는데, 이것은 애당초부터 마음가짐을 잘못했기 때문인 것이다.
그 전에는, 사돈을 맺을 때, 상대편의 부귀영화보다도 인격을 믿고, 지조(志操)를 높이 평가했으며, 사위감도 가난이나 불우하게 된 처지에 아랑곳 하지 않고 재주와 나라 사랑하는 마음을 더 중히 여겼었다. 이러한 사이는 사돈이라고 하기보다 어떤 고귀한 목적을 위하여 굳게 맺어진 동지와 같은 사이였었고, 같은 학문을 하는 사이라면, 서로 스승이 될 수도 있었다.

인조 때에 군난을 만나 크게 활약한 잠곡 김육(潛谷 金土育, 1580~ 1658)과 동양위 신익성 (東陽慰 申翊聖, 1588~1644)도 동지적으로 결합된 사돈이었다. 광해군 때 김육은, 어지러운 정치를 피하여 벼슬살이를 그만 두고 광주(廣州)에서 숨어 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잠곡이 야채의 씨를 뿌리려고 밭을 갈고 있는데, 역시 세상을 등지고 살고 있던 동양위가 찾아 왔었다. 잠곡은 반갑게 동양위를 맞이하여, 초가집 추녀 밑에 간단한 술상을 차리고, 막걸리를 마시며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주고 받고 했엇다. 두 사람은 평소부터 뜻이 맞는 사이였었고, 잠곡은 후세에 우리나라 실학(實學)을 처음 일으킨 사람으로 추앙을 받는 사람이었으므로, 이야기가 그칠 사이가 없었다.
그러고 있는데, 갑작스러이 이웃방에서 아기 우는 소리가 들리고, 심부름하는 아이가 뛰어와서, 「지금 아드님이 무사히 태어났습니다.」라고 알리는 것이었다. 이 소리를 듣고 잠곡이 몹시 기뻐하고 있으니까, 동양위가 말하는 것이었다.
「이게 다 인연인 것 같소. 나에게 두 살 난 딸이 있는데, 앞으로 우리끼리 사돈을 맺읍시다.」
동양위의 인품을 높이 평가해 왔던 잠곡은 기뻐하고, 즉시 굳게 약속을 했다.
우리는 이런 이야기들을 여러 경우에 걸쳐서 들을 때마다, 옛날분들은 자녀교육에 남달리 자신들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지 않고서는 태어나자마자 혼인을 정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훌륭한 어른들은, 실지로 자녀들을 훌륭하게 키웠었다. 잠곡도 아들을 남부끄럽지 않게 키워서, 동양위의 따님을 떳떳하게 며느리고 맞이할 수가 있었다.
세상이 바뀌어 인조의 시대가 되었을 때, 잠곡이 책임을 지고 어떤 큰 잔치를 하게 된 일이 있었다. 그 때에는 두 분이 다 상당한 지위에 있어서, 얼마라도 잔치를 요란하게 벌릴 수가 있었다. 그런 것을 바라고 모여 들었느지 알 수는 없으나, 두 집안 식구들은 물론, 두 집과 연관이 있는 친척들이 모두 자리를 함께 하고, 푸짐한 잔치가 벌어지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잠곡은 음식을 내놓을 기색은 보이지 않고, 빨리 잔치를 시작하라고 졸라대는 친척들에게,
「조금만 더 참으십시오, 음식은 곧 동양위 댁에서 날라올 것입니다.」라고 말하면서, 사람들의 조바심만 더하게 만들고 있었다.
한참 기다린 뒤에야 동양위 댁에서 심부름하는 사람들이 들것에 실어서 보자기를 덮은 채로 날라왔다. 그래서 기다리고 기다리던 사람들이 시장하던 김에 음식상에 둘러 앉아 보자기를 벗겨보니, 음식이라고는 삶은 개고기와 막걸리 한 동이 뿐이었다. 모두들 어안이 벙벙하여 서로 마주 보고 서 있는데, 잠곡과 동양위가 함께 나타나더니, 여러 손님들에게 술을 권하면서 두 분이 앞장서서 유쾌하게 막걸리를 추히도록 마시는 것이었다.
그 무렵, 상류사회에서는 광해군의 폭정에서 벗어났다는 기쁨으로 사치와 낭비로 흘러가는 경향이 있었다. 잠곡과 동양위는 이러한 사회 풍조를 바로 잡기 위하여, 일부러 막걸리로 큰 잔치를 대신한 것이었다.
이쯤 되면, 이 사돈들은 얼마나 서로 잘 만났는가 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사돈 사이에서는, 우선 좋은 면으로 뜻이 맞아야 한다. 그리고 양쪽이 다 다음 세대의 거울이라는 것을 알고, 거울에 비친 모습에 한 점의 부끄러움이 없도록 깨끗한 행동을 해야 될 것이다. 더군다나 둘의 사이는 원수 같으면서, 아들과 딸들만은 화목하게 지내기를 바란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따라서 사돈끼리 친형제 이상으로 화목하게 지내야 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가장 중요한 일이 서로 존중하고 아끼는 마음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이 바로 사돈 사이의 예절이다. 비단 생일날 같은 좋은 날만이 아니라, 어쩌다가 궂은 일을 당하였을 때에는, 남의 아픔을 내 아픔처럼 여기며, 더군다나 사돈댁에 대한 험한 말은 일생동안 단 한마디도 안하는 것이 귀중한 딸과 아들, 며느리와 사위를 진심으로 아끼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주례는 혼인에 대해서 모든 책임을 건 사람이다. 그러기에 주례를 서는 날, 새벽부터 목욕재계(沐浴齋戒)한 다음 신랑•신부의 행복을 위하여 경건히 기도까지 하고서, 설레는 가슴으로 성스러운 혼인식을 주재(主宰)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신랑•신부도, 주례를 부모님 이상으로 섬겨야 하는 것이다. 신혼여행을 떠날 때에도 정중히 인사를 올리고 떠나는 것이 원칙이며, 신혼여행에서 돌아온 뒤에는, 양가어른들께 인사를 올리자마자 주례를 찾아뵙고 인사를 해야 옳을 것이다. 인사를 올리러 가기 전에 반드시 전화로나마 일정이나 시간 등을 여쭈어 보고, 찾아가 뵙고는 이렇게 훌륭한 신랑•신부가 되었고, 또한 신혼여행도 무사히 마치고 돌아왔다고 집안 어른께 하던 대로 큰 절을 해야 한다.

폐백을 드린다는 것은, 하룻밤의 처가에서의 신방과, 신혼여행을 마치고 온 신랑•신부가 새롭게 예물을 갖추어 일생을 함께 하고, 모시고 지낼 신랑측 어른들이나 친척들에게 처음으로 인사를 드리는 행사다. 대개 신부가 시댁으로 처음 들어가는 행사를 신행(新行)이라 했고, 이때 폐백을 드릴 예물과 혼수들을 함께 가지고 가는 것이 보통이었다.
페백 예물은 집안따라 지방따라 모두 다르기 때문에 꼭 이런 것을 준비해야만 옳다고 말할 수는 없다. 어떤 집안에서는 폐백 닭이라 하여 튀긴 닭을 준비하기도 하고, 어떤 집안에서는 산포, 편포를 준비하기도 한다. 다른 쟁반에는 다홍실로 꿴 대추(흔히 대추에는 잣을 양쪽에 물려서 쓴다)를 서려 담는다. 지방에 따라 밤도 담는다.
폐백을 드릴 때에는 폐백 예물을 차린 상 앞에, 인사를 받을 어른들이 앉고 신랑은 사모관대를 하고 폐백상 옆에 서며 신부는 족도리에 원삼을 입고 어른들께 먼저 절을 한 다음 술잔을 올린다. 절을 할 때에는 전통적인 큰 절을 하므로 혼자 거동하기가 불편하여 시댁사람들이 신부의 양옆에 서서 어깨를 부축하여 새댁의 절을 도와준다.
어른들께 절은 두번 하는데 절을 하고 술잔을 올리고 나서 다소곳이 앉아 아래 치마폭을 벌리면, 절을 받은 어른들이 폐백 대추를 한 웅큼씩 뜯어서 새댁의 치마 위에 던지면서 덕담(德談)을 하는 것이 관례다. 복 많이 받고 살라고 하기도 하고, 손이 귀한 집안에서는 아들, 딸 많이 낳으라고 부탁하기도 한다.
폐백을 드리는 행사는 비단 새댁이 시댁 어른들게 인사를 오리는 절차일 뿐만 아니라, 새댁을 맞이한 집안의 여러 동기나 손아랫 사람들이 새댁과 처음 만나는 예(相見禮)이기도 한 것이다. 그러므로 항열(行列) 등을 따져서 서로 같은 항열일 때에는 맞절을 하고 손아랫 사람들은 먼저 절을 해야 옳다.
보통 폐백을 드리는 날 새로 며느리를 맞게 된 집에서는 신랑 신부를 위하여 큰 상을 차려 주기도 한다.


품위 있는 몸가짐
「미스 김, 오늘 머리 모양이 왜 그래요? 아줌마 같은데요?」
「흥! 별꼴이야. 자기 할 일이나 해요. 왜 참견이에요? 재수없게스리.」그리고 아줌마 같다니! 미혼 여성에게 이보다 실례의 말씀은 없을 것이다. 「훨씬 더 성숙해 보이네요」해도 될 것이다. 또 약산 되통맞은 남성직원이나 동료직원이 이런 말씨도 실은 관심의 표시인 것을 너무 매섭게 토라질 일도 아닌 것이다. ‘그래요?’해도 될 것을 ‘별꼴이야’니 ‘재수없게스리’는 너무하지 않은가? 그냥 다소곳하게 웃어넘겨도 오히려 상대방이 어려워하고 자기의 실언을 무안해 할 것 아닌가? 한집안 식구같이 허물없고 화기애애한 분위기라 하더라도 굳이, 남의 비위를 거스를지도 모르는 말은 함부로 건네는 것은 역시 실수이다. 실없는 말 던져 상대방을 불쾌하게 하고 자기 스스로도 온종일 꺼링칙 할 것이 아닌가? 직장생활에서는 남성동료들이 웃음의 소리를 건네기 일쑤지만, 때로는 번잡스런 여성 쪽에서 공세를 펴는 수도 있다.
「미스터 김, 넥타이 근사한데요? 누가 골랐어요? 그런데 왜 이렇게 매셨지? 비뚤어졌네요. 다시 매어 드릴게요.」
아무리 오누이같이 지내는 터이라지만 엄연한 남, 더구나 이성인데 치마폭 넓게 남의 타이를 풀어 목 뒤 깃을 젖혀 가며 매어 주는 과잉 친절도 그리 좋아 보이지는 않는다. 갑자기 터진 옷 단을 꿰매어 주거나 떨어진 단추를 달아 주어야 할 때가 없지는 않지만, 벗어 달래서 달아 주고 꿰매어 주는 것이 낫지, 입은 채 선 채 꿰매고 달아 주는 것은 역시 삼가는 게 좋을 것이다. 여성끼리 남성끼리 충고하고 귀띔해 줄 일이 따로 있다. 남성이 여성에게, 여성이 남성동료에게 차마 못할 귀띔은 삼가야 한다. 나이차가 나는 다른 동료를 시켜 넌지시 귀띔해 주는 것이 낫다.
또 남녀간 남의 일에 일일이 끼어들고 참견하고 잔소리 퍼붓는 것도 상없는 짓이다. 어련히 당사자끼리 알아서 할 일을 공연스레 끼어들어 화해는 못 붙이나마 틈까지 벌어지게 하는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람이란 묘한 것이어서 자기네끼리야 무슨 말을 주고받든 곧잘 넘기다가도 제삼자가 난데없이 끼어들 때는 까닭없는 울화가 치미는 수도 있는 법이다. 말값도 못 건지고 처신도 잃고 나중에 멋적고 이만저만 낭패가 아니다.
남성은 남성답게, 여성은 여성다게 몸가짐을 삼가야 한다. 여성은 남성에게서 자기에게 부족한 다른 자기 모습을 동경하기 마련이고 남성 또한 여성의 아름다움에서, 남성 자신에겐 모자르기 일쑤인 곱게 아름다운 또 하나의 자기 자신을 발견하여 스스로를 보완하여 키워 나가는 것이 인생일 것이다. 여성의 남성화, 남성의 여성화는 그런 의미에서 바람직하지 못하다.
어려울 때 서로 돕고 정을 나누고, 슬플 때 위로해 주고, 기쁨도 같이 나눔이 직장생활의 아름다움인 것은 사실이지만, 여성 쪽에서 너무 스스럼없이 번접스럽게 나가면, 당하게 되는 것은 여성 쪽이다. 허물없다 생각하여 반말을 한다거나, 스스럼없이 어깨에 손얹고 심지어는 손금 보아 준다고 손 잡고, 갖은 해괴한 짓을 서슴없이 감행하게 될 것이다. 그러기에, 직장여성의 친절과 상냥에는 늘 자기를 깜찍하게 지킬 줄 아는 야멸찬 슬기가 필요한 것이다. 여성는 맑고 높아야 한다. 이것이 물론 콧대만 높이라는 말은 결코 아니다. 여성은 맑고 높은 데 품위가 생긴다. 흩어지고 탁하면, 값싸고 천해진다. 속마음의 향기가 없으면 맑고 높아질 수 없어서, 그 몸가짐 도한 천하고 야해지기 마련이다.
상대방 속에서 저마다 스스로의 또한 모습을 동경하고 찾아 헤매는 직업 전선의 남녀 젊은 분들이여, 부디 맑고 높은 품위를 지니고, 자기 일에 충실하면서 봄바람같이 훈훈한 분위기에서, 그러나 스스로를 지키며 맑고 높게 사시기를----.
어느 가정의 예의범절 강신항, 정양완 교수 정일출판사 1990


여성 교육의 규범
결혼이란 뜻 맞는 두 남녀가 한 마리 새 되어 두 깃 붙이며 한평생 살아가는 것이다. 이대 남녀는 한 새의 두 깃처럼 대등해야 한다. 대등하기 위해서는 교육의 균등이 전제되어야 한다. 이런 뜻에서 『내훈』이라는 것이 제작되었던 것이다.
소혜왕후 한씨는 비빈궁녀의 교육을 위한 『내훈』에서 언행(言行)•효친(孝親) •혼례 •부부•모의(母儀)•돈목(敦睦)•염검(廉檢)의 순서로 언행을 제일 머리에 두었다.
우암 송시열 선생은 권씨댁에 시집가는 따님을 경계하여 『계서녀』라는 규범을 친히 지어 따님에게 주었다. 그 순서는 또한 다음과 같다. 부모•남편•시부모 섬기기, 형제화목, 자식교육, 제사받들기, 손님접대, 시새우지 말기, 말조심, 아껴쓰기, 부지런, 병간호, 옷과 음식, 종 거느리기, 뀌어주기와 받기, 무당•화랑•중 물리치기, 중요한 경제, 옛 선행자 (열녀전) 및 발문이다. 또 『부인요계』에서는 시새우지 말기, 교만치 말기, 말조심, 사치 말기,은혜 베풀기, 손님대접 및 종 거느리기 등등으로 제작자의 관점에 따라 같은 내용의 차례들이 좀 다르다.
이 글에서는 특히 말조심에 대하여 살펴볼까 한다. 우암은 그의 『계서녀』에서 속담을 인용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눈멀어 삼 년, 귀먹어 삼 년, 말 못하여 삼 년이라 하니, 눈 멀단 말은 보고도 말하지 말란 말이오, 귀 먹단 말은 듣고도 들은 체 말란 말이오, 말 못한단 말은 요긴하지 않은 말 하지 말란 말이니, 말을 삼감이 으뜸 행실이라.」
옳은 말이라도 자칫 시비와 싸움이 그칠 새 없거늘 하물며 그른 말을 할까 보냐 하면서 다시금 차근차근 말의 화근을 따져 나가고 있다.
「남의 흉을 말하면 자연 원망도 나고 싸움도 나고 욕도 나며, 부모 친척이 짐승으로 보고, 노비와 이웃사람이 업신여길 것이니, 내 혀를 가지고 도리어 내 몸을 해롭게 하니 그런 애닯고 한심한 일이 어디 있으랴.」하면서 온갖 행실 중 말조심이 제일 공부니 부디 부디 삼가서 뉘우침이 없게 하라고 누누히 당부하고 있다.
『내훈』에서의 첫 머리에 언행장이 실려 있어 말조심이 제일임을 그 차례에서도 시사하고 있거니와 『이씨여계』를 인용 다음과 같이 타이른다.
「마음에 품은 것이 정이오, 그 정이 입밖으로 나온 게 말이다. 말은 영욕의 지도리요, 친소의 대절이니, 또한 능히 굳게 맺은 걸 헤어지게도 하고, 다른 것을 모이게도 하며, 원망을 지으며 원수를 짓게도 한다. 크게는 나라와 집안을 망하게 다호, 적게도 오히려 육친(부모형제처자)을 이간시키기까지 한다. 이러므로 어진 여인이 입을 삼가함은 행여나 부끄럼과 남의 헐뜯음을 자초할까 두려워서이다.」
그래서 말조심이 가장 중함을 강조하고 실천에 있어서 대들거나, 알랑대는 말 말며, 생각없은 말 입밖에 내지 말라고 다잡고 있다.
이덕무는 『사소절』에서 말조심에 대하여 또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말이 많으면, 우선 위엄을 해칠 것이고, 정성이 덜리고, 사람의 기운을 빼게 되며 일을 그르치게 된다.」하고서는 실천에 있어 간단 명료해야 함을 일깨워 준다. 자랑도 말고, 아첨도 말고, 그렇다고 남을 헐뜯지도 말라는 것이다. 보다 구체적으로 「여름에 솜옷 입은 이 앞에서 덥단 말 말고, 겨울에 홑옷 입은 이 앞에서 춥단말 말고 굶주린 이와 밥먹을 때 간이 짜다 싱겁다 말라」고 까지 말하고 있다.
말은 속에 품은 뜻의 표현이다. 너무 헤프게 생각없이 지껄여대면 반드시 뉘우칠 일이 생기고, 남의 비웃음 사게 되고, 크게는 나라와 집안을 망치게 되니, 조심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속에 품은 뜻의 표현이 말이니, 말보다 중요한 것은 역시 마음가짐이다. 마음가짐이 정 바르고 수양이 제대로 되면 혀도 자연 삼가지게 마련일 것이다.
겉꾸밈만 알고 속 가다듬기를 잊은 채, 남의 말만 말자.

여교(女敎)라는 글에 다음과 같은 말씀이 있다.
「아낙네에게는 네 가지 갖추어야 할 행실이 있으니, 첫째는 아낙네의 덕 부덕(婦德)이오, 둘째는 아낙네의 말씨 즉 부언(婦言)이오, 세째는 아낙네의 몸가짐 즉 부용(婦容)이오, 네째는 아낙네의 솜씨 즉 부공(婦功)이다.」
부덕이라 하여 재주와 총명이 남달이 뛰어나야 할 것이 없고, 부언이라 하여 입담 좋고 말씨가 날카로와야 할 필요도 없으며, 부용이라 하여 얼굴이 곱고 아리따움을 요하지 않으며, 부공이라 해서 반드시 남보다 뛰어난 솜씨가 있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맑고 설치지 않으며, 곧고 설레지 않아 절개를 지녀 안존하며, 행실에 부끄러움을 알고, 몸가짐에 법도가 있으면 이를 바로 아낙네의 덕, 부덕이라 이르는 것이다. 말을 삼가 가려 하여 모진 말을 하지 않으며, 꼭 해야 할 때가 된 뒤에야 비로소 입을 열어 남에게 시틋한 느낌을 주지 않음이 바로 아낙네의 말씨 부언인 것이다. 더러운 것을 빨아 옷과 몸붙이가 깨끗하며, 알맞게 목욕하여 몸에 더러움이 없게 함이 아낙네의 몸가짐 부용인 것이다. 그리고 마음을 한결같이 하여 길쌈하며, 장난치고 시시덕거리기를 즐기지 않으며, 술과 밥을 깔끔히 차려 손님을 이바지함이 바로 아낙네의 솜씨 부공인 것이다. 이 네 가지는 아낙네의 큰 덕으로 아낙네에게는 불가결의 것들이다.
그렇지만 실행하기는 아주 쉬우니, 오직 마음가짐에 있을 따름이다.
부덕의 조건으로 내세운 것은 뛰어난 재주나 총명보다, 맑고 안존함과 스스로의 행실에 대한 절도와 자각의 필요를 말하고 있다. 설치거나 설레일 것 같으면 아낙네 아닌 남자들도 실수하기 쉽다. 슬기의 맑음으로 뒷받침하면서 설레이지 않는 고요가 키 되어 가면 큰 탈이 없을 것이지만, 총명이 해맑은 고요를 잃을 경우 설치게 되어 재주가 덕을 해치는 경우가 생기게 된다. 남을 아프게 하는 말이 역시 나의 마음을 곧 아프게 하기 때문에 늘 삼가야 할 것이 아낙네의 말씨인 것이다. 그러나 말씨는 바로 마음씨에서 우러나기에 마음가짐을 바로 하기가 가장 중요한 일이다.
아낙네의 몸가짐은 깔끔과 단정인 것이다. 깔끔하되 검소하고, 아름답되 야하지 않은 차림새도 역시 속마음의 매무새에서 나오기 대문에 마음 다잡기가 우선 앞서야 한다.

우리의 옛 아낙네들은 겉으로 향수를 뿌리지 않았다. 정향꽃을 말려서 백지에 싸서 옷갈피에 품어 두었고, 유자탕에 몸을 씻고 머리를 헹구었다. 노리개는 안고름에 찼으며, 향갑에 든 향은 풀섶을 지날 때 뱀의 범접을 막았을 뿐 아니라 갈아서 마시면 체기를 푸는 약효까지 갖추고 있었다. 요즘 젊은이는 향갑이라야 그저 껍데기만 그럴듯하게 수 놓은 것이나 은이나 칠보, 금 노리개 갑만 차고 다닌다.
예전에 약밥을 지어도 찹쌀•밤•대추의 양이 같았다. 요즘에는 약밥을 하여 밤•대추를 위에 얹는 사람들이 많다.
우리 선인들의 교육은 태교에서 비롯되었다. 열 달 어머니의 태교가 열 해 스승의 가르침보다 낫다는 옛글도 있거니와 속이 없는 겉, 안이 없는 밖은 없다. 속을 이성과 지혜로 아름답고 고귀하게 드높이도록 겉에 헛 팔 눈을 속에 부어 보자. 한 데 뒤얽힐 우리 스스로의 참 자취, 한땀한땀 정성스레 기쁨으로 수를 놓으면서.
길쌈, 바느질, 음식 만들기며 제사 모시기, 어른 받들기, 손님 대접 등으로 일생을 바치던 옛 아낙네와는 달리 요즈음 아낙네들에게는 저마다의 직업이 있다. 그러나 어떤 직종에 종사하건 가족을 섬기고 집안일을 동보는 기본적인 구실은 여전히 아낙네에게 맡겨져 있다. 그러기에 좀처럼 시시덕거리거나 널부러져 낄낄댈 정신적 시간적 여유도 없다. 그렇다고 이맛살을 찌푸리고 전투채세를 취하고 살아서도 안 된다. 봄볕같이 다사롭게 감싸고 덮두들기며, 스스로를 비우고 남을 받아들이며 기쁘게만 살아나가기 위해서는 늘 겉보다는 속마음 가꾸기에 주력해야 할 것이다.

어느 가정의 예의범절 강신항, 정양완 교수 정일출판사 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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