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istory of Korea

Foreign Invaders

 

  1. Korean

외세의 침략에 맞선 고려

몽골과 40여 년 간 전쟁을 하다.

유라시아(유럽과 아시아) 대륙에 걸쳐서 인류 역사상 가장 넓은 영토를 정복한 몽골 제국이 1231년 고려를 침략하였다. 고려의 무인 정권은 몽골군이 해전에 약한 점을 이용하기 위해 도읍을 강화도로 옮기고 주민들을 산성과 섬으로 대피하게 한 후, 장기 항전에 들어갔다.

강화도에는 해안선을 따라 성과 보루가 건설되고, 궁궐과 관청, 귀족 관리들의 집들이 지어졌다. 고려의 지배층은 강화도에서도 과거와 같은 삶을 그대로 유지하였다. 연등회와 팔관회 행사가 열렸고, 전국에서 거둔 세금이 바다를 통해 강화도로 운반되었다. 개경을 모방하여 계획적으로 건설된 강화도는 40여 년 간 수도의 역할을 담당하였다.

강화도에서 고려 정부가 버티고 있는 동안 육지에서는 백성들이 몽골군에게 피해를 많이 입었다. 그러나 나라가 위기에 빠지자, 백성들은 몽골군에게 강력하게 저항하였다. 처인성 전투에서는 주민들이 몽골군 사령관을 사살하였으며, 충주성에서는 수령과 귀족이 모두 도망간 사이에 노비들로 구성된 부대가 몽골군을 물리쳤다.

한편, 고려는 부처의 힘으로 몽골군을 물리치겠다는 신앙심으로 16여 년 간에 걸쳐 고려대장경(팔만대장경)을 만들었다.

고려는 40여 년 동안 몽골군에 항전하였다. 전쟁에 지친 몽골군은 고려 왕 대신 태자라도 몽골로 와서 강화를 맺으면 고려의 주권을 인정하겠다는 조건으로 강화를 제의했다. 이 틈을 이용하여 고려 문신들이 무신 정권을 무너뜨린 후에 강화를 맺고 도읍을 다시 개경으로 옮겼다 (개경 환도 1369). 그러나 무신 세력과 삼별초 부대는 몽골군에게 맞서 끝까지 항전할 것을 결의하였다.

세계를 두려움에 떨게 한 몽골군

13세기 초 몽골 부족을 통일한 칭기즈칸은 순식간에 중앙아시아를 정복하고, 북중국 금나라를 멸하였으며, 나아가 서 아시아의 이슬람 왕조를 무너뜨렸다. 그후 정복은 계속되어 러시아를 점령하고 동유럽(오늘날의 폴란드, 체고, 헝가리, 루마니아 지역까지) 장악하여 유라시아 전체를 지배하였다. 그리고 중국의 마지막 세력인 남송을 멸망시켜, 중국 전체를 몽골이 직접 통치하는 원 제국을 세웠다. 몽골인들이 지난간 곳은 모두 초초화되었다. 몽골군에 저항한 세력은 모두 무참히 죽었고, 죄 없는 양민들도 수없이 죽었다. 수많은 도시가 불에 타 버렸다. 몽골의 침입으로 고려는 벼랑 끝 위기에 놓였다. 그러나 중국, 러시아, 아라비아, 동유럽이 모두 무너져도 고려는 끝내 무너지지 않은채 화해하였다.

 

 

 

삼별초가 제주에서 최후를 맞이하다.

삼별초는 배 1천여 척에 백성과 병사, 그리고 물자를 싣고 강화도를 떠났다. 정부는 정부군과 몽골군으로 추격 부대를 편성하여 삼별초를 뒤쫒았다. 삼별초는 근거지를 진도로 옮겨 성을 쌓고 궁궐과 관청을 지었으며, 새 국왕을 세원 고려 정부에 맞섰다.

삼별초는 남해안 일대를 장악하고 전라도와 경상도에까지 세력권을 형성하였다. 그곳 백성들은 기꺼이 전쟁 물자를 제공하며 삼별초를 지원하였다. 삼별초는 고려 정부와 몽골의 연합군에 맞서 3년 동안 싸웠으나, 패하여 다시 근거지를 제주도로 옮겨야 했다. 삼별초는 자주적으로 몽골군을 격퇴하려는 의지로 제주도에서 1년간 항쟁을 벌이다 결국 최후를 맞이하였다.

100여 년간 원의 간섭을 받다

몽골과 강화를 맺었으나, 고려는 이후 100여 년 동안이나 몽골의 간섭을 받았다. 몽골은 나라 이름을 원으로 고쳤다. 몽골은 그들이 가혹하게 직접 지배하였던 다른 정복 지역과는 달리 고려에 대해서는 고려의 제도와 고유 풍속을 인정하고, 고려 왕을 통해 간접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고려가 높은 수준의 문화를 가졌으며 강한 나라라는 것을 인정해야만 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고려는 원의 요구에 따라 일본 원정에 동원되어 선박, 식량, 무기를 비롯한 전쟁 물자와 군대를 제공하였고, 금, 은, 인삼 매 등 여러 공물(국가의 요구로 바치는 일종의 특산물 세금)을 바쳐야 했다. 수많은 여성들도 원에 보내졌다. 이러한 요구는 감당하기 어려운 부담으로 고려는 가장 힘든 시기를 맞이하였다.

원은 제주도를 말 키우는 목장으로 만들어 장악하였고(탐라총관부), 북부 지방의 일부 영토는 원에 빠앗기기도 하였다(쌍성총관부, 동녕부). 고려의 태자는 원나라 공주와 혼인을 해야 했고, 국왕의 묘호(왕 이름)는 원에 충성한다는 의미로 ‘충ㅇ왕’이라고 불렀다. 왕실에서 부르는 호칭도 낮춰 부르게 되었고, 고려의 각종 제도도 바뀌었다.

원에 붙어 권력을 차지한 세력들은 많은 토지를 차지하고 농민들을 노비로 삼는 등 횡포를 부렸다. 백성의 삶은 더욱 어려워지고 나라 살림은 더욱 쪼들렸다.

한국 문화 속의 몽골 문화

몽골과의 문화 교류에 따라 고려의 지배층 사이에서 몽골 풍습이 크게 유행하였는데, 현재까지도 그 모습이 일부 남아 있다. 전통 결혼식 때 불 수 있는 여성의 족두리, 연지 찍는 풍습, 은장도, 언어 중에 ‘장사치’, ‘벼슬아치’ 등의 ‘치’ 자나, 왕의 진짓상을 ‘수라’라고 말하는 말 등이다. 한편, 만두, 떡 등과 같은 고려의 풍습이 몽골 사회에 전해져 유행하기도 하였다. ////

 

공민왕이 자주성 회복을 위한 정치를 펴다

14세기 후반 원이 쇠약해지고 명이 중국의 새로운 지배자로 등장하였다. 중국 각지에서 한족 반란군이 봉기하여 전국적인 규모로 확산되었다. 이러한 시기에 즉위한 공민왕은 중국의 어지러운 정세를 이용하여 원의 간섭에서 벗어나기 위한 강력한 개혁 정책을 폈다.

공민왕은 고려의 정치를 간섭하던 원의 기구를 없애고, 원에 빼앗겼던 함경도 일대의 국토를 되찾았으며, 더 나아가 고구려의 옛 땅을 되찾기 위해 요동 지방을 공격하였다. 또, 원의 강요로 고쳐졌던 여러 제도를 원래의 모습으로 회복하고, 몽골의 풍습을 금지시켰다. 한편, 원을 등에 업고 온갖 권세를 부리던 자들을 모조리 내쫒았다.

공민왕은 개혁을 강력히 추진하기 위해 승려 신돈을 등용하였다. 신돈은 권문세가 (오랫동안 권력과 경제권을 장악한 귀족 가문)들이 빼앗은 땅을 원주인인 농민에게 되돌려주고, 농민으로서 억울하게 권문세가의 노비가 된 사람들을 해방시켰다. 그러나 공민왕의 개혁은 힘에 부쳤다. 지지 기반이 부족했고, 보수 세력의 반격은 만만치 않았다. 권세가들은 공민왕의 개혁에 반발하여 신돈을 역적으로 몰아 처형시키고, 공민왕마저 의문의 죽음을 맞이하였다. 그리하여 공민왕이 추구한 개혁은 실패로 끝났다.

홍건적과 왜구를 물리치다

원이 쇠약해진 틈을 타 중국 북부에서 한족의 농민 반란국인 홍건적이 일어났다. 이들은 세력을 키원 원의 각지를 침공하였는데 그중의 한 무리가 원의 반격을 받아 고려 영토 안으로 밀려 들어왔다. 홍건적의 침입으로 한때 개경을 점령당하고 공민왕이 피난하기도 하였으나, 고려는 곧 이들을 물리쳤다.

홍건적보다 더욱 고려를 어렵게 만든 것은 왜구의 침입이었다. 일본의 몰락한 하층 무사들이 수많은 배를 이끌고 와서 고려의 해안을 노략질하였는데, 이들을 왜구라고 불렀다. 왜구의 침입으로 조세 운반이 어려워져 나라 살림이 궁핍해지고, 해안 지방이 황폐해졌으며, 해안에서 멀리 떨어진 내륙까지 큰 피해를 입었다. 고려는 방어 시설을 갖추는 한편, 무력 토벌에 힘을 기울였다. 최무선은 화약 제조술을 터득하여 화포로서 왜선 500척을 격파하는 등 왜구 토벌에 크게 공헌하였다.

홍건적과 왜구를 격퇴하는 과정에서 큰 전과를 올린 최영, 이성계 등의 무인 세력이 정부와 백성들 사이에 신망을 얻으며 성장하였다.

새로운 사회를 꿈꾸다

고려 말 새로운 세력으로 신진 사대부가 등장하였다. 특히 공민왕 때 개혁 정치를 실시하면서 신진 사대부가 등용되었다. 이들은 유학을 공부하고 과거를 통해 중앙으로 진출하여 세력을 형성하였다. 이들은 새로운 사상으로서 성리학을 받아들여 불교를 비판하였고, 사회 개혁을 주장하였다.

고려를 일으키고 외적을 막아 내면서 국민의 정신 세계를 지배하였던 불교가 이제 백성들을 괴롭히고 나라를 어지럽히는 부패한 종교로 전락한 것이다. 신진 사대부는 성리학적 정치 철학으로 고려 말 개혁 정치에 적극 참여하여 권문세가들에 의해 병든 고려 사회를 고치는 데 앞장섰다.

한편, 홍건적과 왜구를 물리치는 과정에서 명성을 떨친 최영과 이성계 장군이 힘을 합쳐 구세력을 몰아 냈으나, 고려가 나아갈 방향을 두고 서로 대립하였다. 마침, 명이 고려에게 원이 차지하였던 고려의 영토를 요구하자, 고려는 오히려 고구려의 옛 영토였던 요동 정벌에 나섰다. 그러나 군대를 이끌고 정벌에 나섰던 이성계는 압록강 가운데에 있는 위화도에서 군대를 되돌려 개경을 역공하여 정변을 일으켰다(위화도 회군, 1388). 바로 왕을 교체하고 8도 도통사인 최영을 제거하였다. 고려가 이미 운명을 다했다고 여기며 새로운 사회를 꿈꾸던 신진 사대부들은 이성계와 손잡고 본격적인 개혁을 추진하고, 마침내 이성계를 왕으로 추대하여 조선을 건국하였다(1392).

이 내용은 국사편찬위원회가 2008년에 발행한 한국의 역사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1. English

Goryeo Battles the Mongols for Four Decades

The Mongols, who conquered the largest amount of territory in the history of mankind stretching over the European and Asian continent, invaded Goryeo in 1231. Taking advantage of fact that the Mongols were fearful of the sea, Goryeo moved the capital to Ganghwa Island, and the populace in general was made to take refuge in the mountain fortresses or on islands off the sea. Goryeo then entered into a prolonged battle against the Mongols.

Fortresses were built along the coastline, along with the palaces, government offices and mansions for the aristocrats. The members of the ruling class continued their lives on Ganghwa island just as they had done at the capital. Festivals such as Yeongdeunghoe and Palgwanhoe were held on the island, and the taxes collected throughout the nation were sent to Gnghwa Island. Ganghwa Island, constructed after Gaegyeong, served as the capital for 40 years.

While the Goryeo government took refuge on Ganghwa Island, on land the peasantry suffered great hardship due to the Mongol army. As the nation fell into crisis, the people stood firm with stout resistance. During the battle at Cheoin Fortress, the residents killed the commander of the Mongol army. In Chungju Fortress, the resistance, led by an army of slaves, drove back the Mongol army after the chief magistrate and the aristocratic officials all fled. 

Meanwhile, with religious determination and the strength of Byddha to drive back the Mongol army Goryeo undertook woodblock of the Tripitaka Koreana, the woodblock carving of the Tripitaka, over a period of 16 years.

Goryeo resisted the Mongol army for over 40 years. The Mongols, exhausted from the war, propised peace on the condition that it would recognize the sovereignty of Goryeo if the royal crown of Goryeo came of the Mongols to conclude a peace agreement. Taking this opportunity, the civil officials of Goryeo toppled the military regime, concluded a peace agreement with Yuan and moved its capital to Gaegyeong once again (the return of the capital to Gaegyeong 1569). The military forces and the Sambyeolcho, however, vowed to continue resitance against the Mongol army to the end.

The Mongol Army That Shook the World in Terror

Genghis Khan, who united the Mongol tribes in the early 13th century, swiftly conquered all of central Asia, destroyed the Chin dynasty in northern China and toppled the Islam kingdom in western Asia. Their conquests continued and subsequently, the Mongols seized Russia, and eastern Europe (Poland, Czechoslovakia, Hungary and Romania of today). It then toppled the Southern Sung, the last power in China, and established the Yuan Dynasty, under which the Mongols controlled all of China. Mongols devastated every place that they passed through. Those who resisted the Mongols were killed in a ghastly fashion, many innocent people died, and many cities were torched. The Mongol invasion placed Goryeo in a crisis. However, while China, Russia, Arabia and eastern Europe all fell, Goryeo held on, and reconciled with the Yuan.

 

Sambyeolcho Meets the End on Jeju Island

Sambyeolcho left Ganghwa Island, carrying commoners, soldiers and commodities on more than one thousand ships. The government organized a combined Goryeo-Mongol force to go after Sambyeolcho. Sambyeolcho moved its base to the island of Jindo, built a fortress, palace and government offices. It enthroned a new king and stood up against the Goryeo kingdom. 
Sambyeolcho seized the southern coastal area and expanded its forces to Jeolla and Gyeongsang provinces as well. The people there willingly offered them supplies and supported them. Sambyeolcho fought against the combined forces of Goryeo and the Mongols for three years, but were forced to move their base to Jeju Island. Sambyeolcho held out on Jeju Island for one year, determined to drive back the Mongol army, but finally met its end on the island.

Goryeo Becomes Subject to Mongol Dominance for over a Century

Although Goryeo made peace with the Mongols, it was subject to strong Mongol dominance for over a century. The Mongols changed the named of its state to Yuan. Unlike its other conquered regions which it ruled harshly, the Yuan allowed the unique systems and customs of Goryeo to be maintained and exerted influence indirectly through the king of Goryeo. Yuan had to acknowledge that Goryeo was a strong nation with a highly advanced level of culture.

At the demand of the Yuan, however, Goryeo was forced to mobilize for an expedition to Japan. It was also forced to provide war supplies including ships, food, weapons, and military forces. The Yuan also demanded Goryeo to make various tributary payments such as gold, silver, ginseng and falcons.They even demanded women. Under these excessive demands, Goryeo went through the most difficult period of its time. Yuan seized Jeju Island and turned it into a meadow raising horses (Tamna Commandery). Some of the territory in the northern area was also taken by Yuan (Ssangseong Commandery, Dongnyeong Commandery). The crown prince of Goryeo was forced to wed a Yuan princess and the king’s names used the prefix character ‘loyal’(chung) as a means of characterizing their loyalty to the Yuan. All the terms relating to the king and his actions were downgraded, and various systems of Goryeo were changed. Those who rose to power by supporting the Yuan took hold of much land, turned the peasants into slaves and, engaged in many supporting the Yuan took hold of much land, turned the peasants into slaves and, engaged in many oppressive acts.The lives of the peasantry became more difficult and the financial state of the country became further pressed.

The Mongol Culture in the Korean Culture

Through their cultural exchanges the Mongol customs gained great popularity among the ruling class of Goryeo, some of which remain to this day. Jokduri, a type of headpiece worn by brides in their weddings, lipsticks, and sklver knives, all originated from the Mongols. On the other hand, the customs of Goryeo such as dumplings and rice cakes were passed to the Mongol society and became greatly popular.

 

King Gongmin Strives to Recover Independence of the State

During the latter half of the 14th century, the power of the Yuan deteriorated and the Ming emerged as the new ruler of China. Rebellious forces of the Chinese Han rose throughout China and spread across the nation. King Gongmin, who came to the throne during this period, formulated strong reformative polices in order to overcome the Yuan domination by taking advantage of the chaotic circumstances in China. King Gongmin got rid of the instruments of the Yuan that intervened in the internal affairs of Goryeo, recovered the territories in Hamgyeong-do province that had been taken by the Yuan, and even went as far as to attack had been revised under the Yuan and banned the customs of the Mongols. Meanwhile, he ousted all those who traced their power to the Yuan Dynasty. King Gongmin appointed Sin Don, a monk, to carry out these sweeping reform plans. Sin Don returned land that had been illegally seized by the ‘powerful families’ (the aristocratic families who had control over power and the economy for a long time) to the peasants who had been the original owners, and freed the slaves of the powerful families, who had originally been peasants. King Gongmin’s reforms, however, were met with strong resistance. There lacked a solid base of support and the opposition from the conservatives was quite intense. Objecting to King Gongmin’s reforms, the members of the powerful families had Sin Don executed on charges of treason and King Gongmin himself met a mysterious death. The reforms pursued by King Gongmin thus ended in failure.

Goryeo Repels the Red Turbans and the Japanese Marauders

Taking advantage of the weakened power of Yuan, the Red Turbans, a powerful Chinese brigand force, arose in northern China. They invaded various territories of the Yuan. One of these bands fled into the territories of Goryeo upon attack from the Yuan. At one point, Gaegyeong was seized by the Red Turban invaders, and King Gongmin was forced to flee, but Goryo forces soon drove them away. However, it was the raids of the Japanese marauders (waegu) that put Goryeo in a crisis. The fallen, law-class warriors of Japan came by sea, landed along the Goryeo coast and launced numerous raids. Due to the rampant raids by the waegu, taxes could no longer be brought to the capital, causing it to face ecomonic difficulties. The coastal regions became devastated and even the inland areas far away from the coasts suffered great damage. Goryeo exerted its strength in suppressing the waegu, and erected defensive facilities. Choi Mu-seon achived outstanding success in destroying 500 Japanese ships with the gunpower weapons he produced. The military commanders, including Choi Yeong and Yi Seong-gye, who accomplished major victories in destroying the Red Turbans and the Japanese marauders, won the trust of the king and the peasantry, and their influences mounted.

Dreaming of a New Society

A new bureaucratic class of the literati (sadaebu) emerged at the end of the Goryeo period. In particular, these sadaebu were actively appointed in the implementation of the reformative politics during the reign of King Gongmin. The literati who studied Confucianism, advanced into the central government through the civil service examination and nurtured their factions. They accepted Seongnihak (Neo-Confucianism) as the new ideology, criticezed Buddhism and called for social reforms. Buddhism, under which Goryeo was founded, which drove away the foreign forces and dominated the spiritual world of the populace, had degraded into a corrupt religion harassing the people and ruining the state. Based on the doctrine of Neo-Confucianism, the Sadaebu stood at the forefront in the politics and the efforts to restructure the society which had been so ill-used by the powerful families. Meanwhile, military commanders Choi Yeong and Yi Seong-gye who made a name for themselves in repelling the Red Turbans and the Japanese marauders, joined forces to defeat the existing power in politics. But the two men eventually came to confrontation regarding the future coruse of Goryeo. When Ming China demanded that Goryeo return the territories that Goguryeo. On their way to the expedition, however, Yi Seong-gye turned his army back from Wihwa Island in the mouth of the Yalu and launched a coup (1388). He ousted the king and Choi Yeong from power. The new literati who dreamt of a new society, believing that the fate of Goryeo had come to an end, joined forces with Yi Seong-gye to implement the reforms in full swing. Yi Seong-gye was placed n the throne and thus came the establishment of a new dynasty of Joseon (13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