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istory of Korea

Joseon - A New Nation is Built

 

  1. Korean

새로운 국가 체제를 세우다

한양으로 도읍을 옮기다

조선 왕조를 열고 왕이 된 태조 이성계는 우선 도읍지(수도)를 옮기는 계획을 추진하였다. 고려의 도읍지였던 개경에는 고려를 그리워하는 세력이 많이 불안했기 때문이다. 새로운 수도에서 새롭게 나라 살림을 함으로써 민심을 얻으려는 목적도 있었다.

여러 곳의 후보지 중에서 한양이 새로운 도읍지로 결정 되었다. 한강이 있어서 교통이 편리하고, 넓은 들을 끼고 있어서 식량믈 구하는 데도 적당했으며, 산과 강이 한양을 감싸고 있어 적을 방어하기에 좋기 때문이었다. 또, 한양이 길지(좋은 땅)라는 풍수지리설도 영향을 주었다.

도읍지가 결정되자 태조는 한양으로 도읍을 옮겼다(1394). 그리고 경복궁을 비롯한 궁궐과 관청, 성곽과 사람들이 거주하는 집을 지음으로써 도읍지으 모습을 갖추어 나갔다. 이후 한양은 오늘날까지 600여 년 동안 한국의 수도로서 세계적 도시로 발전하였다.

왕권 다툼으로 정치가 혼란해지다

건국 초기 조선은 유교를 국가 통치 원리로 삼고 민생의 안정에 힘썼다. 그러나 지배층 내부에서는 국왕의 권력을 강화하려는 세력과 이를 반대하는 세력 간에 대립이 생기고, 왕자 간에도 왕권을 둘러싼 대립이 있었다(왕자의 난).

태조 이성계의 다섯째 아들인 이방원은 두 차례나 군사를 동원하여 반대파를 숙청하고 왕권을 장악하였으며, 태종이 된 후에는 왕권을 강화하는 데 노력하였다.
5대 임금인 문종이 병으로 일찍 죽자, 그 아들인 단종이 12살의 어린 나이로 왕의 자리에 올랐다. 왕의 힘이 약해지자, 여러 사람들이 권력 다툼을 하였다. 이 중에서 세종의 둘째 아들이자 단종의 숙부인 수양 대군이 정변을 일으켜 권력을 잡았고 (세조), 세조는 단종을 다시 왕으로 받들려는 반대파를 숙청하고, 단종마저 제거하였다. 세조는 왕권 강화를 위해 친위군을 늘리고, 중요한 행정 업무를 직접 다스리는 등 정치 조직을 국왕 중심으로 바꾸었다. 이에 맞추어 지방 행정 조직도 바꾸었다. 
조선 초기 왕권 다툼으로 정치적•도적적 갈등이 있었으나, 이를 계기로 왕권이 강화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통치 체제를 정비하고 자주 문화를 이루다

태종은 혼란했던 정치 분위기를 왕권 강화를 통해 안정시키고, 세종 대에는 왕권이 안정된 속에서 국가가 발전하기를 바랐다. 그리하여 세종은 안정된 정치 속에서 학문 활동을 장려하는 한편, 학덕이 높은 신하들을 등용하고, 이들의 의견을 존중하여 나라를 다스렸다. 농업을 장려하여 새로운 농사 기술을 보급하였으며, 조세 제도를 바꾸어 흉년이 들면 세금을 줄이는 것을 제도화하는 등 백성의 생활을 안정시키는 데에 크게 힘썼다.

한편, 세종은 백성들이 문자를 몰라 어렵게 생할하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였다. 한자는 배우고 사용하기에는 너무 어렵다는 점을 깨닫고, 배우기 쉽고 우리말과 어울리는 훈민정음(한글)을 새로이 연구하여 반포하였다. 이리하여 백성들의 생활을 개선하고 자주적인 민족 문화를 일으키는 역사적인 과업을 이루었다.

성종 대에는 나라는 다스리는 규정을 모은『경국대전』이라는 법전을 만들었는데, 이것은 조선 시대의 기본 법전이 되었다. 그리고 과거제를 넓히고, 학교를 키우는 등 성리학을 바탕으로 나라를 다스리는 데 더욱 확고히 하였다. 이로써 조선은 제도를 정비하였으며, 나라를 다스리는 기반을 확고히 하였다.

백성을 위한 글 – 훈민정음

hunmin한글의 원래 이름은 ‘훈민정음(訓民正音)’이다. 이는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라는 뜻이다. 세종 대왕은 백성들이 한자가 너무 어려워 배우고 사용하는 데 고생하는 것을 안타깝게 여기고, 우리말과 어울려 일상생활에 편하게 사용할 수 있는 우리 글자를 만들고자 하였다. 한문에 익숙하고 중국 문화만을 최고라고 생각한 많은 신하들은 이를 반대하였다. 그러나 세종 대왕은 많은 반대를 무릅쓰고 훈민정음을 만들었다. 그리고 『용비어천가』등 시나 불경을 훈민정음으로 지어 보급에 힘썼다.

훈민정음은 한동안 양반들 사이에서 무시되었으며, 훈민정음을 사용하여 조정을 비난하는 글이 써졌다는 이유로 사용이 금지되기도 하였다. 조선 말기 양반 사회가 붕괴되고 서양식 근대 교육이 이루어지면서 한글의 대중화가 이루어졌다. 일제 시대에는 민족의 문자인 한글을 지키기 위한 노력이 있었으며, 그 결과 오늘날과 같이 세계적인 문자로 발전하게 되었다. 본래 훈민정음의 자모음은 모두 28자였으나, 지금은 자음 14자, 모음 10자만 사용되고 있다. 한글은 세계에서 가장 배우기 쉽고 발음하기 쉬운 과학적인 문자로 인정받고 있다.

훈민정음은 UNESCO가 인정한 세계기록유산 입니다. 

  1. English

Joseon Moves Its Capital to Hanyang

Among several candidates, Hanyang was chosen as the new capital. It had easy transportation access, was appropriate to grow food as it was surrounded by expansive fields, and was suitable to defend against the enemy with surrounding mountains and rivers. The geomantic theory that Hanyang was in a excellent setting also influenced the relocation plan of the capital.

As soon as Hanyang was determined as the new capital, King Taejo made the move (1394). Royal palaces including Gyeongbok Palace, government buildings, fortresses and houses were built, and Hanyang soon had the setting of a capital. Serving as the capital of Korea for over 600 years, Hanyang has since developed into a world-class metropolis.

Political Disturbances Resulting from the Struggle for the Throne

At the beginning of Joseon, Confucian was established as the doctrine of the state, and efforts were exerted toward the stabilization of the people’s livelihood. Within the ruling power, however, there emerged a conflict between those who aimed to strengthen the royal authority and those who were opposed to such a move. Conflicts also arose among the princes over the succession to the throne (Revolt of the Princes). 
Yi Bang-won, the fifth son of King Taejo, twice mobilized the military to oust the opposition factions and seized the throne. After he came to the throne, King Taejong exerted great effort to reinforce the kingly authority.

When King Munjong, the fifth monarch of Joseon, died early from an illness his son, King Danjong ascended to the throne at the age of 12. As the boy-king was weak in power, many struggled to seize the throne. Prince Suyang, the second son of King Sejong, who was King Danjong’s uncle, organized a revolt and came to the throne (King Sejo). King Sejo had those who attempted to put King Danjong back on the expanded his army of bodyguards, conducted major administrative affairs himself, and transformed the political structure to be centered only on the king.

There was political and ethical conflict at the beginning of the Joseon dynasty resulting from the fierce battles for the throne, but this resulted in strengthened royal authority.

The Ruling System is Restructured and the Independent Culture Is Cultivated

By strengthening his authority, King Taejong restored peace in the chaotic political environment. King Sejong hoped to further develop the state under a stabilized regime. King Sejong thus encouraged academic activities, placed men of high learning and virtue in office, and applied their opinions in governing the state. He encouraged agriculture by introducing new farming technologies, revamped the tax system institutionalized the reduction of taxed during years of bad harvest. He thus exerted tremendous efforts in stabilizing the livelihood of the populace.

Meanwhile, King Sejong became concerned that many of his people were illiterate and thus faced difficulties in their lives. He became aware that the Chinese characters were too difficult to learn and use. He thus devised and promulgated Hunminjeongeum (hangul), and indigenous alphabet for the Korean people, which made it possible for anyone to readily learn and use it. He made the historic achievement of improving the lives of the people and promoting and independent national culture.

During the reign of King Seongjong, “Gyeongukdaejeon’, a code of laws governing the state, was established, which became the basic code for the Joseon kingdom. The civil service examination was expanded, schools were fostered and governance based on Neo-Confucianism was solidified. As seen here, Joseon restructured its systems and strengthened the framework for governance.

Hunminjeongeum (Hunmin Chongem), the Alphabet for the Korean people

hunmin chongemThe original name of Hangul, the Korean alphabet, was Hunminjeongeum. It means ‘proper sounds to instruct the people’. King Sejong became concerned that his people faced many difficulties in learning and using the Chinese characters as they were too difficult. He thus devised an alphabet for the Korean people whose learning was based on Chinese characters and who thought that Chinese culture was paramount. King Sejong, however, devised Hunminjeongeum despite the fierce opposition. He then exerted efforts in the dissemination of the Korean alphabet through the writing of poetry or Buddhist scriptures in use were banned for some time due to the fact that writings criticizing the state was written in Hangul. After the collapse of the yangban society at the end of the Joseon period, Hangul became popular following the introduction of modern western-style education. Efforts were made to maintain Hangul under the Japanese colonial rule, which led to the development of Hangul as the world-class characters that they are today. Hangul originally had 28 vowels and consonants but today, only 14 consonants and 10 vowels are in use. Hangul is recognized as the easiest to learn, easiest to pronounce and the most scientific letter system in the world.

Read more about Hunmin Chongem, an UNESCO Memory of the World Docu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