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istory of Korea

The Joseon Society

 

  1. Korean

조선의 사회 모습

joseon

양반이 사회를 다스리다

조선 시대에 사람들의 신분은 크게 양반, 중인, 평민, 천민으로 구분되었다. 양반, 중인, 평민은 세금을 내고 군대에 가야 하는 등 국가에 여러 가지 의무를 졌다. 그 대가로 과거 시험을 통해 벼슬에 오르거나 학교에서 교육을 받을 수 있는 등 사회 생할에 별다른 제약을 받지 않았다. 천인은 노비, 백정 등 제일 낮은 신분층이었다. 국가에 대한 의무도 없었으며, 신분상 대우도 받지 못했다.

실제 사회를 지배하는 것은 네 신분 중에서 가장 높은 양반이었다. 양반은 원래 문반과 무반 벼슬을 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양반의 지위는 자손에게 물려 주는(세습) 상류층 신분이 되었다.

양반은 벼슬에 따른 녹봉이나 국가로부터 받은 토지 수입으로 풍족한 생활을 할 수 있었다. 이들은 직접 생산 활동을 하지 않음으로써 남는 시간을 학업에 열중하여 과거 시험에서 합격하여 벼슬을 할 수 있었다. 벼슬을 하지 않더라도 지역 사회에서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그리하여 사회는 양반에게 이롭게 조직되었고, 양반 중심으로 운영되었다.

생산업은 상민의 몫이었다. 

상민(평민)의 대부분은 농민이었고, 일부가 공인과 상인이었다. 조선 초 정부는 어느 정도 농민을 보호하는 정책을 폈다. 억울하게 노비가 된 사람을 양민으로 풀어 주고 지나치게 많은 소작료나 세를 받는 것을 금하였다. 조선 정부의 이러한 정책은 농민의 지지를 받았다. 그러나 이러한 정책이 농민의 생활 자체를 넉넉하게 만들어 준 것은 아니었다.

농민은 국가에 대해 여러 가지 의무를 졌다. 먼저, 농사를 지으면 수확량의1/10을 세금으로 냈다. 성인 남자의 경우 16세부터 60세까지 병역의 의무를 져야 했다. 때로는 나라에서 수행하는 건설•토목 공사에 동원되기도 하였다.

농기구 등을 생산하는 사람이 공인이며, 물건을 거래하는 사람이 상인이다. 농업은 예부터 천하의 가장 기본이 되는 업이라 하여 중시하였다. 그리하여 농민은 공인이나 상인보다 우대받았다. 이들 세 신분층이 나라의 대부분 생산과 경제 활동을 주도하였다.

원칙적으로 농민들이 공부를 하여 과거 시험에 합격하면 벼슬길에 오를 수 있었다. 그러나 어려운 농사일로 공부하기는 힘들었다. 그 결과, 실제로 과거 시험에 합격하여 양반이 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웠다.

가장 어려운 일을 하는 천민

천민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노비였다. 관청에 소속되거나 양반이 거느렸다. 일부 노비는 독립된 생할도 하였으나 (외거 노비), 많은 수가 관청이나 양반의 집에 거주하며 (솔거 노비) 노동일을 맡아 하였다. 노비는 세습되었으나 다른 사람에게 양도할 수도 있었다. 결혼을 하여 가정을 구성할 수도 있었으며, 독립 생활을 하는 노비는 재산을 모을 수 있는 경제권도 있었다.

그 밖에 일반 사람들이 하기를 꺼리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 천민이었다. 짐승을 잡는 사람, 신발을 만드는 사람, 광대나 무당, 망나니(죄인의 목을 베는 사람) 등이 천민에 속하였다. 백정이란, 원래 고려 사회에서 일반 농민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그러나 조선 시대에 들어와 천한 일을 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었다. 천민들이 하는 일은 사회에서 없앨 수 없는 일들이었다. 그들은 신분적 제약 속에서도 가장 어려운 일을 도맡아 하는 계층이었다.

유교 윤리 사회를 만들다

조선 정부는 성리학의 이념에 의해 사회를 통치 하였다. 먼저, 유교의 예법에 따라 나라의 각종 행사를 진행하였다. 나라를 지켜 준다는 신이나 조상들에 대한 제사, 장례, 혼례, 군사 업무나 행사에 관한 일, 외교 사절을 맞는 절차 등 중요한 행사의 절차와 방법이 이에 맞추어졌다.

사람들이 지켜야 할 유교 윤리로 ‘충’과 ‘효’가 강조되었다. 특히 효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지켜야 할 덕목으로 중시되었다. 이러한 유교 윤리는 삼강오륜으로 정리되었고, 이를 홍보하는 책들도 많이 보급되었다.

  1. English


The Society Ruled by the Yangban Class

Yangban and commoners had various obligations to the government such as paying taxes and serving in the military. In return, they did not have restraints in society and were allowed to join government office through the civil service examination and receive education at schools. The most significant component for the lowborn class was the slaves and baekjeong, the ‘outcasts’ who hereditarily worked at such occupations butchering and wickerwork. They had no obiligation to the nation and had absolutely no status in society.

The ones that actually ruled the society were the yangban, the highest of the four class. The title of yangban was originally given to those involved in civil and military affairs, but later, the term referred to the hereditary upper class reak that could be passed down to descendents. Members of the yangban class were able to lead affluent lives with their government salary or the income from land allotted by the government. As they were not involved in the direct productive activities, they could devote their energies to academic studies, take the civil service examination and serve in government office. The society of Joseon was structured to the advantage of the yangban and was operated with the focus on them.

Sangmin, the Commoners, Were Responsible for Production

Most of Sangmin, the commoners, were farmers, while some were engaged in the production of handicrafts and some in trade. At the beginning of the Joseon period, the government initiated a policy of protecting the farmers to some degree. Those who had wrongfully become slaves were freed into the yangin status and excessive farm rents were banned. Such policy of the Joseon government won the support of the peasants. However, these policies were not enough to make the lives of the peasants much better. Peasants had various obligations to the state. Those involved in farming had to contribute one tenth of the harvest as taxes. Adult men from ages 16 to 60 had the obligation to serve in the military. Sometimes, they were mobilized in state implemented construction and civil engineering works. Artisans handled the production of agricultural tools, while merchants were involved in trade. Since agriculture was long valued and the industry that was the basis for everything, the peasants were deemed higher than the artisans or the merchants. These three classes led most of the productive and economic activities of Joeseon. In principle, the peasants could also serve in government once they passed the civil service examination. But this was not feasible due to the toilsome life of farming. It was therefore virtually impossible for farmers to join the ranks of the yangban class by passing the civil service examination.

Cheonmin, the Lowborn Class Handled the Most Toilsome Tasks

The most significant component of the lowborn class was the slave population. There were public slaves owned by the government and private slaves belonging to the yangban. Some were out-resident slaves (oegeo nobi) who formed independent households, but most were solgeo nobi, slaves of government offices or yangban who performed miscellaneous duties. Salve status was hereditary and their ownership could be transferred to others. They were allowed to get married and raise families. Those who formed independent households were allowed to have financial power and hold assets.

The cheonmin generally performed such work as butchering, making shoes, gwangdae (traveling troupe of entertainers), shamans of executioners (beheading the condemned). Baekjeong originally referred to peasant farmers in general during the Goryeo period. However, the term was used to refer to the people who performed the lowly duties in the Joeeon period. Cheonmin were thus the class that handled the most difficult tasks of all.

A Society Built on Confucian Beliefs

The society of Joseon was governed by the doctrines of Neo-Confucianism. Various state events and functions were conducted in line with Confucian manners and mores. Religious rituals dedicated to the guardian deities or ancestors, funeral rituals, marriages, events related to military ceremonies, procedures of welcoming foreign diplomatic missions and other import procedures followed the rules of Confucianism. 
As part of the Confucian ethics to be observed by the people, loyalty and filial piety were emphasized. In particular, filial piety was considered to be the most important virtue to be observed by all. Confucian ethics were summarized into the Samgangoryun, the Three Fundamental Principles and Five Relationships. Books publicizing these doctrines were widely dissemina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