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istory of Korea

Foreign Policies of the Joseon

 

  1. Korean

조선의 대외 정책

명나라와 가깝게 지내다

조선을 건국 초부터 명과 가까운 관계를 유지하는 정책을 썼다. 국가의 중요한 일을 결정할 때는 명에게 알려 인정을 받았다. 매년 몇 차례 정기적인 사신을 파견하였으며, 명에 특별한 일이 있을 때는 별도로 사신을 파견하였다.

이러한 정책은 국경을 맞닥뜨리고 있는 강대국인 명을 배경으로 정치적 기반을 다지고 평화를 유지하려는 데 목적이 있었다. 실제로 이러한 정책을 바탕으로 건국 후 약 200년간 별다른 전쟁을 겪지 않을 수 있었다.

이와 같은 정책은 경제적문화적 측면에서도 필요하였다. 사절단은 중국 왕에게 일정한 선물을 바치고 그 답례품을 받아서 돌아왔다. 이 과정에서 한국과 중국 사이에 여러 가지 물품의 교류가 이루어졌다. 이를 통해 중국의 문화 용품이나 고급 생활 용품, 약재 들이 조선에 들어왔다. 이러한 물품들은 조선의 문화를 높이고 지배층의 생활을 풍요롭게 하는 데 기여하였다. 한편, 인삼이나 비단과 같은 조선 물품도 중국인들이 매우 좋아하였다.

국경을 넓히다

고구려가 패망한 후, 고려는 북진 정책을 펴서 북쪽으로 고구려의 영토를 회복하려 고 노력하였다. 조선 왕조 역시 건국 초 적극적으로 북쪽 영토를 넓히려는 정책을 추진 하였다. 남쪽의 주민들이 평안도와 함경도 등 국경 지역으로 옮겨 살게 해서 이 지역을 개발하였다. 세종 때에는 김종서로 하여금 압록강과 두만강 유역에서 생활하던 여진 족을 북쪽으로 몰아내고 우리 영토로 확보하였다. 압록강 유역에는 4군을, 두만강 유역에는 6진을 설치하여 주민을 안전하게 살게 하고, 군사적으로 방어를 철저히 하였다. 그 결과, 압록강과 두만강을 경계로 하는 오늘날의 영토가 확보되었다.

적극적인 영토 확장 정책과 함께 이 일대에서 생활하던 여진족에 대해서 회유와 교류를 통해 평화적인 관계를 유지하도록 힘썼다. 식량이나 농기구, 생활 용품과 같이 여진족이 필요한 물건을 제공하고, 말, 모피, 은과 같이 그쪽 지역에서 나는 물건을 가져오는 등 교류도 이루어졌다. 귀순하는 여진족에 대해서는 생활 터전을 마련해 주거나,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일 경우에는 벼슬을 내려주기도 하였다. 이로써 조선 초기에는 전반적으로 여진족과 원만한 관계가 유지되었다.

왜구 소굴 쓰시마를 토벌하다

고려 말, 조선 초 계속되는 왜구의 활동으로 조선은 어려움을 겪었다. 이에 대한 대책으로 세종이 즉위한 후, 곧 이종무로 하여금 왜구의 근거지인 쓰시마 섬을 토벌하게 하였다. 그리하여 왜구가 더 이상 조선의 땅을 침범하지 못하도록 제압하였다. 그러나 쓰시마 섬에서 자급자족이 어려운 그들은 조선과의 교류를 허락해 달라고 애원하였다. 그리하여 조선 정부는 왜에 대해 일정한 범위의 제한적 교류를 허용하였다. 이를 위해 부산 일대에 3개 포구에서만 교류를 허용하였다. 식량, 의복, 서적과 같은 생할 용품을 일본에 수출하는 대신, 구리, 황, 향료와 같은 원료품이나 상류층의 생활에 필요한 물품이 일본에서 들어왔다.

일본 상인이 조선과 교역을 하기 위해서는 쓰시마 도주의 승인이 필요하였으며, 1년에 왕래할 수 있는 배의 수도 제한하고, 교역의 양도 제한하였다. 조선 정부는 일년에 쌀과 콩 200석을 왜에 제공하는 선심도 썼다. 그러나 일본 사신은 서울에 들어오지 못하고, 동래의 왜관에 머물러야 했다. 이러한 제한 정책에 불만을 품은 일본인은 3포 일대에서 종종 폭동을 일으켰다. 폭동이 일어나면 조선 정부는 교역의 범위를 더욱 제한하거나, 3포에서의 교역을 폐쇄하기도 하였다. 얼마간의 기간이 지나 조용해지면 다시 3포의 교류를 허용하여, 조선 전기에 일본과의 교류는 지속될 수 있었다.

  1. English


Joseon Maintains Close Relations with Ming China

These policies were aimed at solidifying the political foundation of Joseon with the backing of the Ming, a powerful nation, as well as maintaining peace in the nation. Based on these policies, Joseon did not engage in any wars for 200 years following its establishment.

Such policies were required from economic and cultural perspectives as well. The envoys made tributes to the Chinese king and came back with courtesy gifts. During these processes, economic exchanges were made between the two countries. Cultural products, highly sophisticated daily products, herbal medicine, etc. were introduced to Korea, which contributed to enhancing the cultural level of Joseon and making the lives of the ruling class more affluent. In return, products of Joseon, such as ginseng and silk, were exported to China, which the Chinese admired greatly.

Expanding the Borders

Following the collapse of Goguryeo, Goryeo engaged in a northern expansion policy and exerted efforts to regain the ancient territory of Goguryeo. The Joseon Dynasty, for its part, also engaged in a policy of actively expanding the northern territories at the early stages of its establishment. Joseon had the residents in the south relocate near the borders of Pyeongan province and Hamgyong province for the development of these regions. King Sejong set Kin Jong-seo to the task of driving back the Jurchen, who were establishing themselves along the Tumen River to the north and incorporating the territory. Four outposts were established along the Yalu, while six garrison forts were established along the Tumen River boundary to ensure the safety of the residents as a result, the territory that marked modern Korea’s northern boundary along the Yalu and Tumen Rivers was established.

Along with engaging in an active expansion policy of the territories, Joseon exerted efforts in maintaining peaceful relations with the Jurchen, who were living in the area through reconciliation and exchanges. Joseon provided food, agricultural tools and living commodities needed by the Jurchen, who, in return, bartered horses, fur and silver indigenous to that region. Their immigration into Joseon was encouraged, and those who pledged alliance to Joseon were given houses, while government posts were given to the high-ranking Jurchen. During the early Joseon period, friendly relations were maintained with the Jurchen in general.

Joseon Drives the Japanese from Tshushima

Throughout the end of Goryeo to early Joseon, the nation underwent hardship due to continuing incidents of pillaging by the Japanese marauders. To counter them, King Sejong sent Yi Jong-mu to attack Tsushima, the bases from which these Japanese marauders mounted their attacks. As a result, Japanese marauders were wiped out from the Joseon territory. The Japanese marauders, unable to produce enough food to provide for themselves on their mountainous island of Tsushima, pleaded for permission to make exchanges with Joseon. As a result, Joseon granted the Japanese limited trading privileges. Three ports were opened to them along Busan. Joseon exported products such as food, clothing and books while the Japanese brought in raw materials such as copper, sulfur, spices or products that were favored by the upper class.

A Japanese merchant desiring trade with Joseon needed the authorization from the lord of Tsushima. The number of trading ships that could travel in a year was restricted and the volume of goods was limited. The Joseon government granted the Japanese 200sok (enough to feed perhaps 100 people) of rice and beans a year as a special allowance. However, the Japanese envoy were banned from entering Seoul. Disgruntled by such restrictive policies of Joseon, the Japanese often created disturbances near the three ports. Once theses raids took place, Joseon further restricted the scope of trading and even closed down trade in the three ports. When things became calm after some time had passed, trading in the three ports was once again permitted, and exchanges with Japan continued during the early Joseon perio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