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istory of Korea

Reinforcing National Strength

  1. Korean

민족의 힘을 기르다

theindepenent한글 신문이 나오다

19세기 조선은 주변 강대 세력의 침략 야욕으로 매우 위험스러웠다. 일본은 청을 물리친 후, 북에서 내려오는 러시아와 대립하게 되었다. 일본이 명성 황후까지 살해하며 친일 정부를 세우자, 위험을 느낀 고종 임금이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하는 사태가 발생하였다(아관 파천, 1896). 왕이 피신해 있는 사이에 열강들은 철도 부설권, 광산 채굴권, 삼림 벌채권 등 나라의 여러 가지 이권을 빼앗아 갔다. 국가가 나약하고 왕이 권위를 잃자, 이러한 사태가 일어나도 국가로서는 어찌할 수 없었다.

이러한 어려움이 있을 때, 미국에 망명하였던 서재필이 귀국하여 조선인의 독립 정신과 민족의 힘을 기르는 사업을 계획하였다. 먼저, 여러 가지 사회 소식을 알리기 위하여 한글과 영어로 된 ‘독립신문’(The Independence)을 창간하였다. 신문은 국내와 세계의 움직임을 전하여, 정부나 사회의 잘못된 점도 지적하고, 국민을 계몽하였다. 독립신문은 당시 세상 움직임에 어둡던 국민들을 위하여 한글로 간행하였다. 한글 확산은 물론 교육 역할도 하였고, 국민의 애국심과 단결을 강화하는 등 국가를 건지기 위한 노력을 하였다.

 

seojaepil외국에 의지하지 말자 – 독립문 건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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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필은 우리나라가 국력이 약할 뿐만 아니라, 외국 세력에 의존하는 현실을 보고 매우 안타깝게 생각하였다. 그리하여 ‘독립 협회’라는 단체를 조직하여, 정부에서 할 일을 주장하고, 국민을 계몽하여 국가의 자주 독립을 주장하였다. 그 활동의 하나로, 고종이 조선 왕궁으로 돌아오도록 하였고, 빼앗긴 나라의 이권도 되찾으려고 노력하였다. 독립신문 간행도 독립 협회에서 추진한 일이었다.

서재필은 지금까지 조선이 중국에 지나치게 의존해 오던 정신을 버리고, 우리의 힘으로 독립을 지킬 수 있는 힘을 기르자는 뜻으로, 그동안 중국 사신을 맞아들이던 문을 헐고, 대신 ‘독립문’을 현대식으로 세웠다. 독립 국가라는 의미를 강조하는 문이었다. 이때 많은 국민들이 돈을 모아 도왔다.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자유롭게 참여하는 ‘만민 공동회’라는 모임을 가졌다. 그리하여 연설회, 토론회를 통해 정부가 해야 할일을 주장하고, 국민을 계몽시켰다.

‘대한 제국’을 선포하다.

아관 파천 1년 여 만에 러시아 공사관에서 돌아온 고종 임금은 국민의 자주 독립 외침을 듣고, 국가의 명예를 높이기 위한 조치를 하였다. 나라 이름을 ‘대한 제국’이라고 고치고, 국왕의 칭호를 ‘황제’로 하였다(1897). 연호를 ‘광무’라 하여 우리의 독자적인 연호를 사용하였다. 그리고 중국과도 새로운 조약을 맺어 동등한 관계를 수립하였고, 주변 국가와도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되었다.

한편, 그동안 외세에 의존한 개혁만을 하다가 우리 정부 스스로 개혁을 추진하였다.(광무개혁). 그러나 국력이 약한 상태에서 강력한 외세의 침투를 막아 내기는 힘들었다.

서울에도 전차가 달리다

그동안 국내에서는 정치적 혼란이 계속되는 가운데에도 서양 선진 문물이 들어와 처음 보는 것들이 주변에 많이 등장하였다. 미국 에디슨이 발명한 전등이 서울에도 들어와 사용되어 궁중을 환히 밝혔다. 또한, 궁중에서 미국의 자동차를 들여와 임금이 처음 사용하게 되어 세상의 변화를 실감하였다. 뿐만 아니라, 한양에 전차가 건설되어 그동안 걸어다니던 시민들이 편하게 되었다.

고종 황제는 이러한 외국의 선진 문물이 들어와 생활이 편리해지자, 국내의 여러 가지 시설들을 근대화하는 데 노력하였다. 공장 설립, 근대 학교 설립, 유학생 파견, 교통 통신 개혁, 병원 설립 등의 일을 하였다. 특히, 교육의 중요성이 강조되면서 학교가 많이 설립되어 근대 교육을 할 수 있게 되었다.

  1. English

theindepenentThe Inauguration of a Newspaper Printed in Hangul

As the nation was in great difficulty, Seo Jae-pil, who had exiled himself to America, returned to Korea. He intended to pursue a project of fostering the spirit of independence among the Joseon people and reinforcing the national strength. He published the forst issue of The Independent, published in hangul and English. The newspaper delivered news on local and global events, pointed out misguided acts of the government or in society to enlighten the public. The Independent was put out in hangul without the use of any Chinese characters to advance the awareness of the general public. The newspaper served as a vehicle for expanding the usage of hangul, strengthening the patriotic spirit of the people and reinforcing their solidarity.

 

The Establishment of Independence Gate (Dongnipmun)seojaepilindepencegate

Seo Jae-pil deplored the fact that Korea was weak in national strength and relied upon foreign forces. He thus organized the Independence Club, pointed out the tasks that should be taken up by the government and urged for independence through the enlightenment of the people. As part of these efforts, the Independence Club sought to bring King Gojong back to the royal palace of Joseon and to recover the economic concessions granted to foreigners. The publication of The Independence was also promoted by the Independence Club.

He carried out the project of erecting Independence Gate in modern style by demolishing the existing gate through which envoys from China had been escorted. This was intended to promote the people to discard the sprit of excessive reliance on China, and to foster their own strength so that Joseon could maintain sovereignty with its own strength. This was a gate emphasizing the significance of an independent state. Siezeable contributions came from the populace for the building of this gate. The Independence Club also organized the ‘Convocation of All Kings of People’ of which membership was completely open. Through debating forums and discussions, it urged the state as to what should be done, while at the same time enlightening the people.

Inauguration of the ‘Great Han Empire’

King Gojong, who returned from the Russian lagation after one year, heard the cries of the people for national independence, and took measures to enhance the dignity of the state. The name of the nation was changed to the ‘Great Han Empire’ and the title for the king was changed to ‘emperor’(1897). The king also took up the reign name of ‘Gwangmy’ and signed a new treaty with China, establishing equal relations with the nation. Joseon thus stood shoulder to shoulder with its surrounding nations.

Meanwhile, the Joseon government, which relied on reforms pursued by foreign forces, implemented its own reforms (Gwangmu Reforms). However, as the nation was weakened, it was difficult to block the advancement of the powerful foreign forces.

Streetcars in Seoul

As political disturbances continued in the nation, the advanced civilization of the western world was introduced to Joseon. Things seen for the first time appeared in Korea, electric lights invented by America’s Thomas Edison were lit in Seoul, brightening the royal palace. The royal house also brought automobiles from the United States, first used by the king. Streetcars were also established in Hnayang, making the lives of the citizens who used to walk everywhere much more convenient.

As the lives of the people became more convenient with the introduction of the advancements of foreign nations, Emperor Gojong strived to modernize diverse facilities in the nation. These projects included the establishment of factories, modern school, sending students to study abroad, initiating reforms in the transportation and communications sectors, and building of hospitals. In particular, placing emphasis on the importance of education, many schools were established, which paved the way for modern educ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