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istory of Korea


The Los Angeles Riots

  1. Korean

로스앤젤레스 폭동

1980년대 흑인 지역의 상권을 장악한 한인 상인들에 대한 반감이 고조되면서 소위 한•흑 갈등이 심화되었다. 문화적 차이와 몰이해는 한인 상인과 흑인 고객 간의 갈들을 증폭시켰고, 상호간의 불신으로 야기된 긴장은 1992년 4월 29일, 로스앤젤레스 폭동으로 폭발하였다. 수많은 건물들이 방화되고 귀중한 생명을 앗아간 인종 폭동이었다. 이 폭동으로 2,280개의 한인 업소가 전소되거나 일부 파괴되었고, 약 4억 달러의 재산 피해를 입었다. 이것은 당시 총 재산 피해약 10억 달러의 40%를 차지하는 엄청난 재난이었다.

1992년 로스앤젤레스 폭동을 재미 한인들은 ‘사이구(4•29)’로 부르고 있다. ‘4•29’는 재미 한인 100년사에서 가장 중대한 사건의 하나로, 한인들의 자각을 일깨워 준 전환점이 되었다. 재미 한인 사회의 방향을 뒤바꾼 역사적 사건이 된 4•29는 재미 한인 사회가 안고 있는 부실한 지도력, 정치력 부재, 세대 간의 갈등, 그리고 타 민족과의 융화 부족 등 여러 문제점을 노출시키는 한편, 미래에 대한 대화 및 토론을 펼치고 새로운 도약을 꿈꾸는 계기가 되었다.

한인 사회는 4•29 폭동을 경험하면서 많은 교훈을 얻었다. 첫째, 한인 사회는 단순히 4•29 폭동의 희생양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신속한 대처를 했다. 4•29 폭동 직후 30,000명 이상이 모인 대규모 평화 집회를 주도하면서 미 주류 사회를 놀라게 했으며, 극찬도 받았다.

이 평화 집회는 150년 아시아 이민사 중에서 가장 짧은 시간에 많은 인파가 모인 역사적 집회였다. 한인 1.5세와 2세들 중심으로 순식간에 평화 집회를 열자는 의견이 수렴되었고, 여기에 많은 한인들이 동참한 것이다. 이것을 계기로 1.5세와 2세등은 부모 세대가 겪고 있는 인종 차별 및 문제점들을 직접 목격하게 되었고, 그동안 미 주류 사회로의 동화를 추구하던 2세들도 코리안 아메리칸 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면서 새로운 정체성을 확립하는 계기가 되었다. 4•29 폭동 이후 재미 한인들은 스스로를 코리안 아메리칸으로 부르기 시작했는데, 특히 김영옥 대령은 자신을 100% 코리안, 그리고 100% 아메리칸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그것은 한국계 미국인을 의미하면서 이중 언어, 그리고 이중 문화권의 새로운 자아 의식을 의미한다. 코리안 아메리칸은 미국 사회에서도 적응하며 두각을 나타낼 뿐만 아니라, 모국인 한국의 발전에도 기여하는 바람직한 해외동포상이라고 일컬을 수 있을 것이다.

재미 한인들은 4•29 폭동을 경험하면서 우리는 누구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기 시작하였다. 다인종 다민족 사회인 미국에서 재미 한인 사회의 위치는 과연 어디에 있는가에 대한 의미를 찾기 시작했던 것이다. 재미 한인들은 단일 민족의 우수성만을 강조해 온 폐쇠주의적 민족주의에서 과감히 탈피하여 타인종, 타민족과 어울려 더불어 살아가는 진솔한 모습을 배우기 시작하였다. 미국의 발전에 기여하는 한편, 모국인 한국의 발전에도 기여하며, 타민족, 타인종들과 더불어 다민족 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가는 새로운 교훈을 얻은 것이다.

  1. English

The proliferation of Korean-owned businesses in the African American neighborhoods during the 1980’s exacerbated conflicts between Korean American businessmen and African-American customers. Cultural misunderstandings and culture clash fueled antagonism between Korean immigrant merchants and African American residents. Volatile relations between Korean American and African American communities in Los Angeles exploded into mass destruction of property and loss of the life on April 29, 1992. The eruption of violence in Los Angeles destroyed approximately 2,280 Korean-owned businesses and caused $400 million in damage.

The Los Angeles riots of 1992 are commonly known as Sa-ee-gu (April 29) in the Korean American Community. Many consider Sa-ee-gu as the most important historical event, a “turning point,” “watershed event,” or “wake-up call” during one hundred years of Korean American history. Sa-ee-gu profoundly altered the Korean American discourse, igniting debates and dialogues in search of new directions which continue today.

Sa-ee-gu also exposed many problems and challenges for the Korean American community: a lack of leadership and political power, generation split, and lack of contact with other communities. Korean Americans have learned many valuable lessons from the 1992 Los Angeles civil unrest. First, the Korean American community did not passively accept this event. Within a matter of days, more than 30,000 Korean Americans in Los Angeles came together for a “Peace March.”

This historic event is said to be one of the largest gatherings in all of Asian American history. Also, the 1.5 and 2nd Generations played a critical role in the community during and after the civil unrest. It was the younger generation that articulated Korean American voices to the society at-large by getting involved in politics and the media. For 1.5 and second generation Korean Americans, the civil unrest gave them a new sense of belonging and ethnic pride as they participated in relief efforts and peace marches.

Korean immigrants have painfully learned the lessons of what it means to be Korean American in a multicultural and multiracial context. They have realized the importance of breaking out of ethnic isolation and actively reaching out to other communities to forge working and harmonious relations. In so doing, Korean Americans have begun to embrace a new role in proactively participating in an inclusive, multiracial and multiethnic Americ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