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궁화

  1. 유달영의 무궁화

무궁화

유달영(柳撻永)

나라마다 나라꽃이 있다. 미국은 주마다 주의 꽃이 정해져 있다. 우리 나라에서는 법으로 정한 일도 없이, 자연스럽게 무궁화가 국화(國花)로 굳어졌고, 또 국민들은 이 꽃을 사랑해 왔다. 일제 강점기에는 무궁화를 뜰에 심는 것조차 일인(日人) 관리들이 몹시 단속(團束) 했고, 무궁화로 한반도 지도를 수놓아 벽에 거는 것은 거의 반역죄(反逆罪)을 범한 것처럼 다루었다. 일제 강점기에 우리가 노예와 다름없는 생활을 해 오는 동안에도, 무궁화에 대한 애틋한 사랑은 많은 사람들의 가슴 속에 뿌리 깊이 자랐다. 남궁 억(남궁억) 선생은 강원도 홍천 보리울에서 청소년들에게 한국 역사를 가르치기도 하고, 무궁화 묘목을 다량으로 길러 널리 나누어 주기도 하면서, 민족을 사랑하는 정신과 용기를 길러 주었다.

한때, 무궁화가 국화로서 시비(是非)의 대상에 오르내린 일도 있었다. 무궁화가 북부의 추운 지방서는 얼어 죽어 한반도 전지역에서 재배할 수가 없을 뿐 아니라, 꽃도 시원스럽지 못하다고 하여, 새로 국화를 제정해 보자는 것이었다. 무궁화는 나무의 모양이 꾀죄죄하여 때를 벗지 못하였다는 둥, 잎도 보잘것이 없고, 봄철에 싹이 너무 늦게 튼다는 둥, 벌레가 많이 꾄다는 둥, 꽃이 겨우 하루밖에 못 간다는 둥 불평을 눌어놓는 사람들이 없지 않다.

그러나 일제 강점기에 우리 민족이 나라의 상징으로 무궁화를 깊이 사랑해 온 역사적 사실을 굳이 상기(想起)하지 않더라도, 무궁화는 가꾸어 볼수록 특유의 아름다움을 깊이 느끼게 하는 정원수(庭園樹)라고 원예가들은 말한다.

1956년 나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뉴욕 식물원을 방문한 일이 있다. 그 식물원은 규모의 방대함은 물론, 내용의 충실함에서도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식물원이었다. 그 식물원의 본관 앞뜰에는 여러 그루의 무궁화나무가 있었는데, 꽃이 흐드러지게 핀 아름다운 광경은 내 기억에서 한평생 지울 수 없는 인상 깊은 것이었다. 나를 안내해 주던 식물원 직원 한 사람이, 자기는 이 무궁화를 가장 좋아하며, 본관 앞 일대의 무궁화나무를 식물원의 큰 자랑거리로 생각하고 있다고 말하였다. 더구나 꽃잎 바탕 깊숙한 화심에 짙은 보랏빛 심문이 야무지게 자리잡은 단심 무궁화는 어느 꽃보다도 아름다웠다. 푸른 숲을 배경으로 우단을 깔아 놓은 듯 곱게 다듬은 잔디밭 위에, 잘 가꾸어진 여러 그루의 무궁화가 아침 나절 밝은 햇볕에 만발한 모습은 한국 사람인 나에게 잊기 어려운 깊은 인상을 주었다.

나는 식물원 간부에게 이 꽃이 바로 우리 한국의 국화라고 버젓하게 자랑할 수가 있었다. 그는, 당신 나라는 참으로 좋은 꽃을 국화로 정하였다고 칭찬하면서, 식물원 심장부에 화려하게 핀 무궁화의 꽃숲을 자랑스럽다는 듯이 바라보았다. 나도 그 찬란한 무궁화 숲이 마치 우리 나라의 환상인 양 도취되어 바라다 보았다. 참으로 흐뭇한 심정이었다.

오늘날엔 무궁화의 품종도 80여 종으로 다양하게 육종(育種) 되었다. 나는 여러 종류의 무궁화 중에서 가장 한국적인 아름다움을 지닌 것은 백색 단심 무궁화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 깨끗하고 흰 꽃잎의 화심 깊숙하게 또렷이 자리잡은 짙은 보랏빛 심문은, 일편단심(一片丹心)을 상징하는 듯 야무지게 선명하다. 그리고 눈같이 흰 백색 홑 무궁화도 높은 기품을 느끼게 한다. 그러나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불그데데하고 광택이없는 무궁화는 헤식어 보인다. 무궁화가 아름답지 않다고 하는 사람들은 대개 이런 무궁화만을 보아 온 사람들일 것이다. 근래에 육종(育種)된 겹꽃과 반겹꽃 무궁화는 현대미를 느끼게 하는 멋진 꽃들이다.

서울에서 수원으로 가는 길 양편에는 무궁화나무들이 심어져서, 초여름부터 가을까지 제법 호화롭게 꽃이 핀다. 내가 교편을 잡고 있는 대학에 교환 교수로 와 있던 한 외국인 교수는, 바로 이 무궁화가 자기를 무한히 즐겁게 해 준다고 여러 번 말한 일이 있다. 아침에 통근 버스를 타고, 이슬을 담뿍 머금은 단심 무궁화를 차창(車窓)으로 바라보면, 어지러운 세상사에 시달린 우리들의 가슴에도 꽃무늬가 아롱지는 듯 저절로 즐거워진다.

우리 본래의 무궁화는 홑꽃인데, 날마다 새로 피고 그 날로 지고 만다. 그러므로 아침에 보는 꽃은 몇만 송이가 피든지 모두 그 날 새벽에 새로 핀 꽃들이다. 기나긴 개화 기간 동안 아침마다 새 꽃이 피고, 저녁에는 시들어서 떨어진다. 피고 지고, 지고 핌은 초여름에서 가을까지 지치지도 않고 계속된다. 이름 그대로 무궁화다.

사람의 70평생도 보기에 따라서는 하루살이와 다를 것이 없다. 그러나 아무리 짧은 일생이라 하더라도, 무슨 형태로든지 인간의 역사에 자신의 지혜와 착한 생각을 나름대로 꽃피워 이어 간다. 유구한 인류의 역사도 따지고 보면 짧은 인생의 연속(連續) 으로 이루어 진다. 날마다 피고 지는 한 송이 한 송이의 무궁화를 덧없이 짧은 인간의 생명에 비긴다면, 초여름부터 가을까지 꾸준하게 계속되는 긴 화기(花期)는 줄기차게 이어져 융성하는 인류의 역사를 상징하는 듯하다. 어떤 이는 줄기차고 억센 자강불식 (自强不息)의 사나이 기상을 피고 지고 또 피는 무궁화에서 찾아볼 수 있다고 말한다.

이른 새벽에 활짝 피고 저녁에 봉오리처럼 도로 오므라져 조촐하게 떨어지는 무궁화는, 다른 꽃들처럼 그 뒤가 어지럽지 않다. 이것도 무궁화의 큰 특색의 하나이다. 무궁화는 아침 태양과 함께 피어나서 저녁 태양과 함께 운명을 같이한다. 저녁에는 태양이 서산으로 지지만, 이튿날 아침에는 장엄한 새 태양으로 동녘 하늘에 솟아오른다. 무궁화는 이러한 태양과 일맥상통하는 특유한 꽃이다.

무궁화를 중국 고전에서는 순(舜)이라고 했다. 공자(孔子)가 편집했다고 하는 시경(詩經)에 ‘안여순화(顔如舜華)’하는 말이 있다. 얼굴이 어찌 예쁜지 마치 무궁화 같다는 뜻이다. 옛날 사람들이 무궁화를 얼마나 아름답게 보았는지는 이것만으로도 짐작할 수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중국의 고전인 산해경(山海經)에는 “군자의 나라에 목근화(무궁화)가 많다.”라는 말이 있다. 예로부터 우리 나라를 근역(槿域)이라고 일컬어 왔고, 근래에는 무궁화 삼천리 금수강산(錦繡江山)이라고 일컫는다. 무궁화는 이처럼 역사적으로 유서(由緖)가 깊은 꽃이다.

무궁화는 씨나 꺾꽂이로도, 또 포기나누기로도 쉽게 번식시킬 수 있다. 그리고 나무의 크기가 정원수로 알맞은 중형이어서 어느 곳에 심어도 보기 좋고, 또 토양 선택이 까다롭지 않아서 어디서나 잘 자란다. 참으로 민중(民衆)과 친근한 꽃이라고 하겠다.

꽃과 씨와 껍질과 뿌리는 모두 소중한 의약재(醫藥材)로 쓰이며, 꽃과 잎은 차로, 그리고 껍질의 섬유는 고급 종이의 재료로 쓰인다. 무궁화는 백방으로 실속있는 꽃나무라 하겠다.

무궁화에 대한 국화로서의 시비보다는 무궁화를 아끼고 더욱 아름답게 가꾸려는 마음씨가 소중할 것 같다. 무궁화가 벌레가 많다고 하지만, 벌레는 구제하면 될 것이고, 꽃도 오늘날 발달되어 가는 최신의 육종 기술로 더욱 다채롭게 개량해 가면 될 것이다.

무궁화가 만일 전통을 소중히 여기는 영국이나 프랑스의 국화였더라면, 국화 시비론(國花 是非論) 따위는 나올 여지도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무수한 품종이 육성되어, 오늘의 장미처럼 온 세계로 널리 퍼져 재배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우리가 항상 역사적인 제 것을 소중히 여기고 간직하면서 끊임없이 새 것을 찾아 소화해 나가는, 보수성(保守性)과 진취성(進就性)의 양면을 다 함께 지니지 않고서는 앞서 가는 문화 민족이 될 수 없다. 국민 각자가 좋은 품종의 무궁화를 곳곳에 심어서 무궁화 동산을 만들어 간다면, 우리 나라가 얼마나 아름다울 것이며, 또 우리 국민들의 마음은 얼마나 깨끗하게 순화될 것인가 여러 모로 생각해 본다.